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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2013년 4월] 문화 꽁트

어느 겨울의 삽화 




 누구에게나 나름의 사연과 함께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가령 아주 오래 전에, 지금은 얼굴도 아련하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어느 한때의 애인한테서 받은 생일카드를 책갈피에 끼워둔 채 이따금 꺼내어 보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반 때 몇몇 친구와 영원한 우정을 기약하며 낙엽 지는 교정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빛바랜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옛 벗들의 기억을 새삼 되새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망가진 만년필 한 자루, 녹슨 열쇠고리 하나, 겉장이 뜯겨져 나간 젊은 날의 애독서 한 권도 사람에 따라서는 거기에 얽힌 사연과 더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나더러 당신에게도 그런 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행히 그렇다고 대답하리라. 내가 그토록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 그것은 조그만 그림 한 점이다. 나는 이 그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곤 한다. 바로 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직접 공들여 만든 액자에 담긴 채 내 서재 한구석에 걸려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적잖은 곤혹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곤혹감을 느끼는 데에는 물론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이 그림을 보고는, 호기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한 마디쯤 내뱉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도대체 저게 뭐지? 무엇을 그린 그림이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대답할 말이 없다.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림이라고 말은 했지만, 우편엽서 열 장 크기의 화폭에 그려진 것이라고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하얀색 물감이 덕지덕지 덧칠된 터치만이 약간의 음영을 띠고 있을 뿐, 거기엔 우리가 흔히 구도라든가 형상이라든가 색조라든가 하는 용어로 부르는 그림의 요소들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것이다. 아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얀색으로 온통 덧칠되고 덧발라진 겉그림 속에는, 그 하얀색 덧칠로 말미암아 지워져버린 애초의 밑그림이 아련한 기미로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구도, 어떤 형상, 어떤 색채를 가졌었는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 그림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은, 죄송한 말이지만 절도의 결과다. 바꿔 말하면 이 그림은 장물이라는 얘기다.

 그게 언제였던가. 벌써 40년 가까이 지난 어느 해 가을이었다. 그때 내가 다니던 대학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었고, 그 캠퍼스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학림다방에서는 몇몇 미대생들의 동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내가 이제껏 간직하고 있는 그림도 그때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삐걱거리는 나무층계를 올라간 입구부터 시작해 벽에 내걸린 크고 작은 액자들 속에서 이 그림은 화장실로 통하는 문 옆, 베토벤의 검은 데스마스크가 내려다보는 바로 아래 걸려 있었다.

 그날 화장실에 가다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하얀색 물감만 덕지덕지 덧칠된 화폭. 나는 그것을 그림이라고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뭔가를 그리다 만 것 같은, 아니 뭔가를 그리기 위해 바탕에 하얀색만 잔뜩 칠해놓는 듯한 그 화폭 앞에서, 나는 작가가 그 그림을 통해 기존의 틀을 경멸 또는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일색으로 온통 뭉개버린 화폭, 그것은 젊음의 권리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 다방에 다시 들렀다가 그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왠지 모를 불쾌감이 위벽을 긁으며 돋아 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담아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림 앞에서 나는 연거푸 고개를 갸웃거리고 혀를 차면서 괜히 조바심을 태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 화가는 그림 뒤에 숨어서, 그 그림 앞에서 안달하는 관객들은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는 실제로 다방 안 어느 자리에 뒷짐 지고 앉아 있으면서, 자기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어 허우적거리는 먹이들을 날름날름 즐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복수를 결심했다. 처음엔 그림에다 먹물이나 확 뿌려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하룻밤을 꼬박 궁리한 끝에 나는 그 그림을 훔쳐내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가의 얼굴에 당혹과 낭패의 그림자를 씌워주고 싶었다. 이 같은 심리는 그 당시(암울하기 이를데 없는 유신 초기) 우리 또래가 엇비슷하게 겪었던 치기·분노·절망·열정 따위의 감정들과 뒤섞이면서 마치 운명적인 욕망처럼 내 속을 긁어댔다.

 결과만을 털어놓자면 나의 절도행위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 짧은 글에서 자초지종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성공한 뒤 나를 도와준 친구와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하여 내 손에 들어온 이 그림은, 그 후 하숙이라도 옮길 때면 가장 먼저 챙기는 재산목록 제1호가 됐고, 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아내가 마치 내 분신이라도 되는 양 보살폈으며, 장물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는 도덕률을 가진 몇몇 친구들의 숱한 도발과 노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 무사히 내 곁에 머물러 있다.

 그림 한쪽 귀퉁이에는 이름 하나가 조그맣게 적혀 있다. 박향선. 지금은 눈을 들이대야 간신히 판독할 수 있을 만큼 희미하게 퇴색해버렸지만, 그 이름 석 자마저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화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어쩌면 그림을 훔친 행위마저 망각의 깊은 늪 속에 내던져버렸을지 모른다. 그 이름이 남아 있기에 이 그림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었고, 내 것이 아니기에 이 그림은 내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추억과 함께 언제나 소중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전혀 모른다. 나는 다만 그림 한 귀퉁이에 서명된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뿐 얼굴조차 본 적이 없고, 그 이름을 다른 데서 읽거나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진눈깨비가 폭설로 변해 쏟아지던 저녁이었다. 몇몇 글 쓰는 친구와 서울 인사동의 한 술집에 갔다가 그림 그리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 좌중에는 시골에서 오랜만에 올라왔다는 낯선 사내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끼어 앉아 묵묵히 술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얼큰한 술과 잡다한 대화가 몇 순배 돌고 난 뒤 그 사내는 아무래도 밤차를 타야겠다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검정 가방 하나 달랑 걸머진 그의 모습이 술집 문밖으로 사라지자 내 맞은편에 앉은 화가 친구가 마치 먼 과거를 길어 올리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 별난 친구지. 뭐랄까, 스스로 자신을 저주해버린 천재라고나 할까….”

 나는 친구의 표현이 제법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학교에 다닐 적만 해도 우리 동기 중에서 제일 뛰어났었지. 1학년 때 벌써 국전에서 특선으로 뽑힐 정도였으니 말이야.”

 그렇게 재능이 남달랐던 그가 하루아침에 그림을 버렸다는 것이다.

 “74년이었던가, 우리 몇이서 동인전을 연 적이 있었어. 김형도 보았을지 몰라. 학림다방에서 있었으니까.”

 나는 귀가 솔깃했다. 나는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앞자리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내가 절도행각을 벌인 전시회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참으로 파격적인 작품을 내놓았지. 화폭에 온통 하얀 물감만 덧칠된 그림이었는데….”

 아아, 나는 하마터면 큰 소리로 신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림 자체가 걸작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얽힌 사연이 한결 충격적이지. 원래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어. 그런데 거기에다 마음속의 주름살 하나까지 다 표현해내느라 손질을 더하고 붓칠을 더하고 그러다 보니, 마지막에는 그렇게 하얀 바탕만 남게 되더라는 거야. 그뿐이 아니야. 그는 이런 말도 했었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이해하려면 겉그림 속의 밑그림까지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아마 신이나 가능할 일이라고. 우린 그의 천재성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단순히 장난기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는 우리 앞에서 공언을 하기까지 했어. 만약에 그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런 사람이라면 그림을 훔쳐가고 말 것이라면서) 자기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노라고. 그랬는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전시회가 끝나던 날 밤에 그 그림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거야. 처음엔 누군가가 그를 골려주려고 장난이라도 친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그 그림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거든.”

 나는 술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둠으로 뒤덮인 도시에 하얀 눈만이 하염없이 쏟아져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