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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2013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모교 서양화과 尹 明 老명예교수



 추상표현주의, 즉 액션 페인팅은 1940∼1950년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 회화 운동이다. `그려진 결과'보다는 습관적인 기법이나 고정관념의 영향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그리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미술사조로서, 잭슨 폴록을 대표적인 선구자로 꼽을 수 있다.

 모교 서양화과 尹明老(회화56 - 60)명예교수는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비정형·서정적 추상회화)' 경향의 연작을 발표한 이래 50여 년 동안 독창적 표현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추상회화의 영역을 개척해낸 거장이다.

 그는 사르트르의 소설 `벽'을 모티프로 한 `벽B'로 195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했으나, 예술에 서열을 매기는 부조리에 반기를 들고 `60년 미술가협회'를 창설해 反국전을 선언하는 등 한발 앞선 시대정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처럼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운동을 선도한 尹동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윤명로 : 정신의 흔적' 회고전을 지난 3월 26일부터 개최하고 있다.

 尹동문의 이번 전시회는 195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보였던 그의 시대별 대표작을 비롯해 2012년 작업한 대형 신작 등 6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들은 연대별 섹션으로 구분돼 있으며, 전시장 내 동선을 따라가다 들어서게 되는 세 곳의 방에서 평론가 인터뷰, 화백 본인의 회고 등이 담긴 3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돼 작품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돕는다.

 “제 그림을 두고 스스로 `랜덤하다'는 말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랜덤이라는 말은 종잡을 수 없이 형성되는 무질서나 혼돈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홀로 오랜 사유를 거듭해야만 나타나는 내면적 세계 또는 정신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붙이게 된 것이죠.”

 尹동문은 자신의 예술적 고뇌와 사유를 끊임없이 발화시키며 변모를 거듭해 왔다. 그의 작품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정의 증거이자 의지의 산물로써, 화백 스스로를 위한 것임과 동시에 대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림이 반드시 언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회화의 본질은 결국 추상으로 귀결됩니다. 주제를 떠나 공간과 색채와 형태의 호흡을 다룰 때 훨씬 자유로울 수 있으며, 스스로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미술계 등단 이후 1990년대까지 尹동문의 작품들은 격정적이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에너지를 표출해 왔다. 또 그가 2000년대에 선보인 `겸재 예찬' 연작은 진경산수화풍을 창안한 조선 후기의 화가 謙齋 鄭 敾을 예찬하는 동시에,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세상을 관조하는 명상과 여유의 美를 유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의 고향인 프로방스를 찾아 그가 80여 점이나 그림으로 남긴 생트 빅투아르 바위산을 봤는데, 그 순간 겸재의 인왕제색도가 생각나더군요. 그리곤 겸재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세계화를 부르짖기 이전에 우리가 가진 그런 훌륭한 문화유산을 더 소중히 여기자는 마음에서 겸재 예찬이라는 화두를 던지게 된 겁니다.”

 1972년부터 2002년까지 30년 동안 모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던 尹동문은 인터뷰 말미에 모교와 후배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예술가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교수 시절 제자들에게 늘 자기 정체성 확립과 발상의 전환, 그리고 한 가지 현상에 묶여있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지금의 모교는 좋은 커리큘럼과 미술관을 갖추고 있는 만큼,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에도 힘을 쓰며 정진한다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를 많이 배출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