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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 2013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광속으로 달리다 잃어버린 것



 어느 휴일 오전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다 미국 NBC의 `Minute to win it'을 봤다. 1분 안에 주어진 과제를 해내면 상금이 올라가고, 다음 단계에 도전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3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쌍둥이 형제가 교대로 격려해가며 과제를 풀었다.

 그 형제도 게임에서 몇 번 실패했다. 그러나 찡그리지 않았다. 억울해하지도, 남을 탓하지도 않았다. 인터뷰에서도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그런 환경을 만든 사회를 원망하지 않았다.

 동생은 인터뷰에서 “돈이 없어 아직 장가를 못 갔다”고 했다. 상금을 받으면 10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지극히 착해 보였다. 저런 사람이 왜 가난하고 결혼을 못했을까? 시청하던 필자가 오히려 `미국 사회도 고르지 않구나' 생각했다.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데 나는 어떠했나. 길을 가다 다른 차가 끼어들기만 해도 짜증을 내지는 않았나. 내가 한 말을 얼른 못 알아듣는 가족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증오'가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생활환경은 많이 좋아졌는데 마음은 훨씬 각박해졌다. 무엇에 쫓기는지 초조하고, 눈만 돌리면 금방 낭패를 볼 것처럼 불안해한다. 이런 불안의 속도감은 사이버 세상에서 특히 심하다. 나는 트위터를 잘 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놓칠까 걱정해 가끔 들여다볼 뿐이다. 그때마다 실망하고 나오게 된다. 이슈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칼질을 해대는지.

 댓글은 단문이다. 단칼에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댓글의 홍수 속에선 과장하고 딱지 붙이고 알록달록 칠을 해야 겨우 눈에 띈다. 문법을 지키다가는 손님을 다 놓친다. `증오'라는 양념을 듬뿍 치면 조회 수가 팍팍 올라간다. 여유와 사색과 인내, 예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무엇이 먼저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모든 책임을 사이버 세상에 떠넘길 수도 없다. 하지만 온라인의 속도가 오프라인마저 오염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인은 표를 구하는데 이용하고, 지식인은 논쟁 상대를 공격하는데 끌어들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미사 강론은 신자가 아닌 내 가슴에도 울렸다. “우리의 삶을 더럽히는 증오와 시기와 자만이라는 `파괴의 조짐'들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