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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2013년 3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金 道 然 前국가과학기술위원장





 - 2011년 3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가 대통령 직속 행정위원회로 개편되면서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당시 동창회보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선진 과학기술국가로 도약해 국가의 격을 높이고 국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2년간의 봉직을 통해 얻은 성과와 보람에 관해 한 말씀 해주세요.

 “정확히 1년 11개월이죠. 성과를 얘기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만, 독립부처로서의 과학기술부가 교과부와 통합돼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없어진 상황에서 국과위가 출범했죠. 여건이 좋진 않았지만 2012년 16조, 2013년 17조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30개 부처·청에 배분하면서 효율적으로 쓰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 과학기술 R&D예산 집행은 특히 아끼고 효율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가능한 많은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 과학기술 행정의 개방을 위해 애썼고 특히 21세기 새로운 시장과 지식을 창출하는 융합과학기술을 위한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 국과위 시스템의 효율성에 관해 일본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요청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국과위 출범 후 재난재해특별위원회를 발족하셨는데, 성과는 어떠신지요.

 “지구온난화, 도시화 등 지구환경과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재난 재해가 잦고 피해가 대형화되는 양상입니다. 그런데 재난재해를 방지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R&D는 미미하며, 그마저도 14개 부처에 분산돼 있습니다. 국과위는 방재연구원 등을 통한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구제역, 사이버테러, 백두산 화산폭발 등에 대한 연구지원, 재난재해 R&D 5개년 투자전략(2013∼2017) 마련 등을 추진해 왔습니다. 국민 행복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이죠. 앞으로 과학기술도 국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연구하는 마인드를 체질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과학기술 행정부처는 1967년 경제기획원에서 독립, 집행 기능이 빠진 처(處)로 출발해 DJ 정권 시절인 1998년 부로 승격됐고, 참여정부 들어 부총리급으로 격상됐다가 M B정부에선 교육인적자원부에 흡수돼 교육과학기술부로 축소되고 보완책으로 국과위가 신설됐습니다. 과학기술 행정부처가 정권에 따라 격상과 축소, 심지어 소멸되는 악순환을 해온 셈인데요.

 “1967년 과학기술처 발족 후 40년간 독립부처로 자리매김해 왔죠. 2008년 MB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통합했는데, 누구도 교육부가 없어졌다고는 말하지 않는 반면 많은 이가 과학기술부는 폐지됐다고 합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침 제가 MB정부 초대 내각에서 교과부 장관을 지냈는데, 그 후에도 과학기술 분야를 홀대하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상황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부처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직변화로 인한 낭비와 비효율이 심각하거든요. 정부조직, 특히 과학기술 부처의 지속가능성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고 봅니다.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조직 구성원들의 문화와 관습을 바꿔가며 능률을 더 높여야지, 조직을 자꾸 뜯어고치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새 정부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됐습니다만, 담당 업무와 관련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리 낙관적이지 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칫 IT 위주, 당장의 먹거리 산업의 정책 위주로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기술과 관련해 꼭 챙길 업무를 말씀해 주시고, 앞으로 이 부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조언해 주신다면.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아요. 한 개 부처가, 그리고 한 사람의 장관이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과학기술은 경제 발전의 절대 필수 요건이지만, 이를 경제 성장 및 일자리 등과 직접 연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과학기술 발전은 국내총생산(GDP)처럼 계량화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신설된 미래부에 주문한다면 5년 내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긴 호흡으로 정책을 펴라는 겁니다.”



 - M B정부 초대 교과부 장관을 지내셨는데, 그 당시와 비교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했다고 보시는지요.

 “지난 5년간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과학기술 R&D 투자가 지속적으로 큰 폭의 증가를 보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도 대단한 일입니다. 세계 1위인 중국의 연평균 R&D 증가율이 23%인데, 우리나라가 9.5%로 2위를 차지했어요. 민간과 정부를 합한 GDP 대비 R&D 투자액도 우리가 이스라엘(4.3%)에 이어 2위(4%)입니다. 특히 다행인 건 산업체가 리드하는 제조 기술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왔고, 뿌리에 해당하는 기초과학도 많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지난해 기초과학연구원이 발족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진전이죠. 이제 바야흐로 든든한 기초 과학 위에 기술이 꽃을 피울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죠.

 “지난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혁신 역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0개국 중 9위를 차지하며 2009년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부지표별로 보면 아직도 연구원 1인당 SCI 논문수 및 인용도, 지식재산권 보호 정도 등 질적 지표들이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 질적 지표 취약과 관련해선 국내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모교로서도 고민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여전합니다. 자연계 수험생들이 지방의대까지 다 지원한 후에야 모교 공대를 지원하는 슬픈 현상까지 나오고 있어요. 모교 공대 학장도 지내셨는데, 현재 공대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엘리트 엔지니어 교육은 국가의 미래입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죠. 문제의 핵심은 이공계 기피가 아닌 이공계 우수인력의 부족입니다. 사실 다른 분야가 확실한 블루 오션이 아닌데도 그쪽으로의 쏠림 현상 때문에 우수 인력이 공대로 잘 오지 않는 건 먼 훗날을 생각하면 개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단견이고 불행이죠. 국가 차원에서, 또 대학 차원에서 공대인들의 자긍심을 높여 주고 도전 의식을 길러 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빠져서 안 될 것이 바로 인문학 등의 폭넓은 인성 교육입니다. 저는 국과위 위원장을 하면서도 이공계 대학원생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닌 맑은 눈빛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 모교도 마찬가지지만 KAIST나 포스텍, 그리고 KIST 등에 개발도상국 출신 유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국이 이공계 분야에서 좋은 유학대상국인 셈인데, 외국 고급 인력을 포용해서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외국 인력을 불러다가 우리하고 같이 일해서 그 사람들이 그 나라의 발전을 통해 상생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계속 투자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수한 외국 인력을 불러들여서 우리의 발전을 꾀하겠다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냉정하게 봤을 때 좋은 인력이 우리 사회에 와서 일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아직 세계 정상급은 아니거든요. 고급 인력의 경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가서 활동하고 그 다음에 우리나라에 오는 현실입니다. 우리 이공계는 아직까지는 우리의 인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과학기술계가 다시 한 번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 새 정부도 “과학 중심의 창조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새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체득한 지도자라는 점과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을 떠받치는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에 보다 큰 관심과 열정을 쏟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히려 이제 공은 과학기술자들에게로 넘어 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사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국가가 과학기술인들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과학기술인이 국가에 무엇으로 봉사할까를 생각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 임기 중 전국의 연구소와 산업체, 특히 중소기업을 많이 방문 하셨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느끼신 소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제점은 오히려 너무 빠른 발전에 기인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조바심이 나고 참을성이 없어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별로 문제가 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세대 간의 갈등, 전공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등 모두 거기서 기인하는 거죠. 과학기술 분야에도 배려하는 정신, 협력하는 정신이 절실하다고 느꼈습니다.”

 - 과학기술의 발전을 말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산·학·연 협력 발전'이지요. 연구, 행정, 교육을 모두 경험하신 입장에서 각자의 역할에 대해 견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사회의 폐쇄성이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죠.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국과위의 주요 정책이 바로 산·학·연의 일체화였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그거죠.”




 - 모교는 최근 총동창회의 지원으로 온라인 강의를 신설, 확충키로 했습니다. MIT, 스탠퍼드대 등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해 온 프로그램인데요. 이와 관련해 평가를 해주신다면.

 “총동창회가 그동안 많은 좋은 일들을 해오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시간대 총장을 지낸 제임스 듀더스탯 박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9세기 의사가 오늘날의 외과병동에 온다면 그는 아무 일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교수가 오늘의 대학 강의실에 나타난다면 강의실, 연단, 칠판 학생 등 모든 것이 익숙할 것이다. 대학교육은 큰 변화가 필요하다.' 강의의 온라인 공개는 2000년 MIT가 최초로 Open Course Ware를 출범시켜 지금은 하버드대, 예일대 등 유수 대학이 모두 시행하고 있습니다. `면 대 면 강의를 해야 진정한 교육이다'라고 하는데 이제 그런 인식은 바뀌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교에서 온라인 심리학 강의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 강의를 보겠습니까? 모교가 온라인 공개 강의를 하는 것은 최고급 강의 콘텐츠를 사회와 공유하는 나눔인 동시에 책무이기도 합니다. 교수들 강의 수준도 자연히 높일 수 있고요. 세계 10대 대학을 지향하는 모교로서는 온라인 강의에서도 당연히 톱에 진입해야 합니다.”

 -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울산대 총장으로 일하면서 2009년 국내 최초로 인터넷 강의 공개를 시도했습니다. 첫 학기에는 아무리 교수님들을 독려해도 잘 안돼서 저까지 직접 나서서 겨우 다섯 강좌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 학기에 20개 과목씩 진행해 3∼4년 동안 1백개 이상의 과목이 올라와 있습니다. 울산대의 경우 강의를 듣는 사람이 3∼4만명이 되며, 금년 봄에는 iTunes U에도 처음으로 올라가 세계에 공개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 단계 더 나아가 온라인 강의 수강자에게 싼값으로 학점도 주고 학위수여도 합니다. 반값 등록금이 요즘 화두죠. 인터넷 강의를 활성화하면, 특히 모교가 적극 나서면 반값 등록금 문제도 반드시 해결됩니다.” 〈BOX기사 참조〉

 -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평소 특별한 철학이라든지 가치관이 있다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상대방의 장점은 높이 평가해 주고, 단점은 눈감아 주라(貴其所長 忘其所短)'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죠.”

 - 위원장을 마치시고 앞으로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우셨는지요.

 “대학 32년, 정부에서 2년 반을 지냈으니 저는 천생 학교체질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젊은 학생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학생들과 같이 부대끼며 생활하면서 토론도 하는 게 가장 큰 행복 아닙니까·”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젊었을 때는 모교 조정부 대표선수였지요. 그때 저축한 체력을 지금 빼 먹고 사는 느낌입니다. 이제 다시 저축을 해야겠어요. 그래야 체력이 달리지 않고 제자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죠.”

 - 동창회 및 동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우리 동문 모두는 대한민국 각계의 리더입니다. 따라서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기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동시에 남의 그릇도 함께 채워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 그동안 연구하시랴, 과학기술 행정 하시랴 동창회엔 좀 소홀하셨던 것 같은데요.

 “이제부턴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결국 모교 동문의 힘이 대한민국의 힘이니까요.”

〈사진 = 朴짳載기자·정리 = 林香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