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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2013년 3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자연과학 공개강좌 20주년의 회고



 모교 교수로 부임한 70년대 초 대학원 입시의 영어시간 감독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마침 ecosystem을 주어로 하는 문장을 번역하라는 지문이 나왔는데, 당시 수험생들이 이 단어를 몰라 많은 수험자들이 `공명체계'라는 엉뚱한 말로 번역한 것을 보고 실소한 적이 있다. 생태계라는 말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용어였으며 인문,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위한 과학의 대중화는 매우 절실한 일이었다.

 모교 자연과학대학이 주관해 매년 문화관에서 개최되는 `자연과학 공개강좌'가 금년에 20주년을 맞게 됐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강좌가 캠퍼스 내에서 이렇게 오래 지속돼 매년 1천명이 넘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이 강좌가 지닌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 강좌를 기획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돌이켜보면 1989년 내가 전국 기초과학연구소연합회장을 맡으며 당시 과기부와 교육부의 기초과학연구비를 대폭 증액시키기 위해 먼저 교수연구업적을 평가하는 잣대로 소위 SCI(Science Citation Index :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등재 논문을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해 오늘에 이르렀고, 이후 자연대 학장을 역임하면서 학과의 벽을 허무는 소위 학부제를 도입해 대학교육의 기본 틀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 공과에 대한 칭찬과 욕을 계속 한 몸에 짊어지고 있다. 교수의 연구업적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서 연구역량을 제고하는 일은 열악한 기초과학 연구비의 획기적인 증액을 요구하기 위한 자기 성찰의 일환으로 제시한 것이었고, 학부제는 세분된 학과에서 4년 동안 전공만 공부한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전공 학문과는 상관없는 직업인으로 진출하는 것을 확인했다. 적어도 대학원 교육을 표방하는 자연과학대학의 경우 학과의 벽은 허물고 보다 폭넓은 학문 분야를 섭렵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연과학 공개강좌의 기획은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또 하나의 생각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1994년 2월에 첫 강좌를 시작할 때는 5년 뒤에 맞게 될 21세기 자연과학의 흐름을 폭넓고 쉽게 소개해 이 분야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었다. 언론사와 제휴해 전국 중·고등학교에 초청장을 보내어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게 했는데, 문화관 강당이 넘치도록 성황을 이뤄 우리를 감격하게 했다.

 이 공개강좌가 지난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된 것은 후임 학장들의 의지와 노고, 그리고 전국 학생, 학부모와 교사들의 관심과 응원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공개강좌 후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자연대 교수들이 모여 집필한 책이 `21세기와 자연과학'(1995), `21세기 과학의 포커스'(1996) 두 권으로 그친 점이다. 이 공개강좌 내용들이 계속해서 책으로 남겨졌다면 그 자체가 우리의 지적 자산이고 역사의 증거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