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호 2013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카르페 디엠’의 사회

`카르페 디엠(carpe diem)'. 라틴어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공화정 당시의 시인인 호라티우스는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각하라. 오늘을 붙잡으라”며 바로 이 순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지금 이 시점이 미래로 연결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은 언제나 새겨들을 만하다. 현실을 포기한다면 미래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오늘에만 탐닉하는 종말론적인 처신도 바람직한 태도는 못된다. 내일 아침에는 또다시 새로운 태양이 뜨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일이 있다고 믿지 말라”던 호라티우스의 싯귀를 떠올리게 된다. 미래의 청사진은 불확실해지고 있는데도 서로 자기 몫을 내놓으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인과 공직자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설령 내일은 어떻게 될망정 눈앞의 밥그릇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거대 담론도 수명이 기껏 5년에 불과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권력이 넘어가고 정부가 바뀌면서 부처 조직이나 정책 기조도 바뀌기 마련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어딘지 탐탁지 않다. 그러한 소모적인 논란 속에 정부에 대한 신뢰성은 떨어지고 국민들의 심사는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지금은 복지정책이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른 마당이다. 국민행복 지수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흠잡자는 게 아니다. 노령연금이나 유아들의 보육료 지원 방안은 마땅하다. 그동안 고도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빈부 양극화에 대한 처방도 절실하다. 그러나 적절한 재원조달 방안도 없이 이뤄지는 정책과정을 지켜보자면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
반값 등록금 정책도 젊은 세대를 육성한다는 취지보다는 분배 위주의 발상에서 시작된 측면이 다분하다. 결국 그 부담은 한창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 세대와 앞으로 태어날 세대에까지 전가될 것이 뻔하다. 기성세대의 발등에 떨어진 불길을 잡으려고 미래세대에 빚을 져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현재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듯이 언젠가는 문제가 연속적으로 터져 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러고도 이런 `폭탄 돌리기' 정책에 책임지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 고스란히 뒷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다. 이 시대의 누구나 비슷한 공모자라고 한다면 지나친 얘길까.
세상은 오늘로 끝나는 게 아니다. 50년, 100년 뒤에도 세상은 이어질 것이다. `카르페 디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