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호 2013년 2월] 문화 꽁트
헛 발 질


맵고 아린 소금바람이 살갗을 훌친다. 바람살을 등지고 돌아서자 눈앞이 빙글 돈다. 한때 여물게, 잘 짜깁기됐던 일상의 질서와 소중하게 갈무리했던 모든 가치가 일시에 나를 배반하고 돌아선 때문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세상과 집의 경계인 현관문을 탕 닫고 나서던 순간의 느낌은 참담했다. 금방 들어가서 없었던 일로 지워버릴 수 있는 시간의 막간이 내 발등을 넘나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문턱의 내부가 아닌 밖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갑자기 막막한 낭패감이 나를 휘감는다. 출항을 알리는 제주행 페리호의 무적소리가 나를 재촉했지만 왠지 저 배를 타는 순간 나의 일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에 휩싸인다. 불안하다는 느낌은 내 위치에 대한 흔들림인지도 모른다. 내 사전에서 오래전에 발라내 버린 그놈의 불안이라는 단어가 지금 이 상황에 툭 불거져 나올게 무엇이람.
짧은 패딩 점퍼 아래 허벅지와 종아리에 시린 냉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섬에 갈 계획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출행이다. 연말이어서 제주행 저가 항공권까지 매진 된 상태였다. 모처럼 KTX를 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목포까지 내려온 길이다. 절로 발걸음이 서울역으로 달려 간 건 내 무의식 속에 내장된 어떤 빌미 같은 건지도 모른다. 정작 태어난 곳은 서울인데도 나를 임신했을 당시 어머니가 서귀포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귀나 눈은 늘 그곳에 잠시 머물곤 했을 것이다.
갯바람이 실어내는 차가운 기류가 영하의 서울 기온보다 더 시리고 아리다. 한파 주의보라던 기상 캐스터의 되바라진 목소리가 귀청에 감겼다. 주방으로 나가던 아내가 슬그머니 다가와 채널을 돌렸다. 같은 내용의 기상예보를 하는데도 아내가 보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나 태도가 맑고 단아하긴 했다.
`아무데나 마찬가지 아닌가?'하는 내말을 받아 아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기상캐스터라면 정확한 발음이나 나긋하고 낭랑한 목소리 아닌가요? 저 기상캐스터는 정말 못 들어 준다니까요.”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그녀의 생략된 어법에 길들여 있으면서도 나는 내가 선호하는 채널을 고수했다.
아내의 신경 줄은 잘게, 머리카락보다 가늘어졌다. 시간의 모서리가 닳아지는 것과 반비례로 그녀의 감성은 더 섬세하게 날을 세운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식은 커피처럼 밍밍해진, 무관심이라는 무딘 온기로 서로를 아우르고 서로를 지탱해 왔던 날들이 살얼음을 딛듯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느슨하고 헐겁게 대처하는 나의 성격이 승진에 걸림돌이 됐을 거라는 그녀의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금융계에 청춘을 내다 버리고 어정쩡한 나이에 퇴직한 이후부터 어쩐지 그녀의 눈길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찮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워 그녀의 신념이랄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을 휘저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내가 청소할 땐 비켜달란 말이에요.” 그놈의 진공청소기가 내 발등에 물려 자발거렸다. “지금 신문 읽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녀가 맞받았다. “지금 청소하는 거 안 봬요?” “그놈의 청소는 왜 만날 극성이야?” 입안에서 우물거리다가 기어이 내 입에서 “청소 말고 할 일이 그렇게 없어?” 목소리가 툭툭 부러졌다. 그녀의 동작이 일시에 정지하면서 날 선 시선이 내 대머리에 날아와 꽂혔다.
별로 나부대거나 대거리에 능한 여자는 아니다. 말과 웃음을 아끼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난 체하거나 자발스럽게 치맛바람을 날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왠지 그 서투름이 못마땅하다. 딱히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그냥 조금 지겨웠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결혼 5년부터다. 파마할 돈이 아깝다며 뻣뻣한 말총머리를 묶고 다니는 그녀가 한심했고 겉늙어 보였고 상한 우유처럼 느끼한 구토증을 밀어 올렸다. 한 계절에 한가지 옷만 걸치고 주방에 서서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보면 왠지 목구멍에서 쉰내가 치밀었다. 내가 가장 곤혹스러웠던 건, 일 년에 두어 번 부부동반 모임에 그녀가 걸치고 나가는 노티 풀풀 나는 풍성한 코트나 스웨터 자락이었다. 내 눈에는 질박한 삶의 모습으로 보이기 이전에 추레하고 초라하게 보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에도 그녀는 환기를 구실로 망창까지 열고 이불과 욕조 매트까지 탈탈 턴다. “춥잖아. 빨리 닫아” 하면 `노인 냄새가 집에 배면 안 된다'는 그녀의 넉살이다. “노인 냄새? 나한테서 노인 냄새가 난단 말이지?” 들고 있던 신문지를 휙 집어 던지자 부챗살 모양으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치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소리나게 문을 닫는다. 가장에 대한 최소한도의 존중을 몰수한 행동이 겨우 버팅기고 있는 나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이제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내 허술한 위치가 만들어낸 자격지심일까? 불시에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결핍이 분노로 덧쌓이고 분노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빌미”라고 했다. 적절한 말이다. 퇴직 후 한동안 집구석에 칩거한 채 좋은 기억보다 불쾌한 기억들로 늘 가슴은 술렁거렸다. 식욕도 없고 잠 못 자는 나날이 보태지면서 목구멍 가득 뜨거움이 가득해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욱 치받치곤 했다. 그 붉은 과녁이 나이 들수록 자신의 자리를 확실하게 고수하는 아내라는 존재인지, 명퇴라는 번드르르한 말로 내 등을 밀어낸 후배 녀석인지 따지고 싶지는 않다.
섬으로 가는 겨울 여행이다. 왠지 홀가분했다. 잠시 막간을 두는 것도 좋을 듯 했다.
지하철을 탄 다음에야 카드를 두고 나왔다는 걸 알았다. 호주머니 속에는 겨우 기만원이 전부였다. 빌어먹을, 거센 바람살을 받으며 배의 후미에 설치된 고정벤치에 앉았다. 손발이 시리다. 늘 그녀가 챙기던 말이 생각났다. “당신 저체온이라 장갑을 꼭 끼고 다녀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장갑을 꺼내려는 순간 무언가 딸려 나오다가 바람살에 쓸려 저만치 미끄러진다. 엉거주춤, 내가 줍기도 전에 사나운 물바람에 휩쓸려 간 그것이 퍼런 이랑 위에서 자맥질을 친다. 주민증과 지하철 우대권과 기만원이 든 작고 가벼운 비닐 홑겹 지갑이다. 휴대폰도 안 가지고 나왔다. 갑자기 눈앞에 흑임자 같은 작은 알갱이들이 난무했다. 아차, 오늘 안과에 예약한 날이었다. 거대한 컨벤션벨트가 갑자기 작동을 멈춘 듯 세상이 일시에 정지한다. 암담하고 조금 슬프다.
제주항에 입항하자마자 집에 전화를 넣었다. 그녀의 휴대폰은 전원을 꺼뒀는지 배터리가 다 됐는지 신호음이 울리지 않는다. 낭패감이 나를 휘몰았다. 호주머니를 털었지만 서귀포행 리무진 티켓을 끊기에는 모자란다. 많은 생각들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에서 아우성쳤다.
걸었다. 방향도 목적도 없이 걷다가 다시 집에 전화를 넣었다. 신호음이 떨어지자 나는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말했다. “카드를 두고 왔어.” 등기로 부쳐달라는 말과 함께 “여기 중문리 H호텔이야” 했더니 그녀가 뜬금없다는 목소리로 “거긴 왜요?” 했다. 팩한 소리가 나오려 했지만 나는 날름거리려는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카드는 등기로 부치고 만약을 위해서 송금도 좀 해 주라.” 객실 요금에 여분의 돈을 얹어 송금해 주면 내가 찾는 방법이다. 그럭저럭 잠자고 먹는 일은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쥐꼬리만큼 받는 연금을 관광지의 호텔 숙박비로 내다 버릴 수는 없다. 그것보다 나를 비틀리게 하는 건 세상과 단절된 무료함이다.
일상적인 스케줄이 어긋나 버린 것에 대해 또 역정이 난다. 아침 식사 후 그 자리에 앉아 두 개의 신문을 낱낱이 읽는 일이었다. ○○일보의 S교수 칼럼이나 시가 있는 아침, 삶의 향기와 같은 읽을거리, 그리고 내가 애독하는 J신문의 사설과 A23면의 다양한 기사는 이 세상에서 나를 견디게 만드는 노년의 비타민이다. 신문은 어디에도 있다. 그러나 내 집, 그 식탁 내 걸상에서 읽었던 신문하고는 시간의 질감이 다르다. 무디고 텁텁하고 살랑거리지 않았지만 그 펑퍼짐했던 깔개가 다시없는 실크 카펫처럼 여겨지는 건 다만 신문 읽기에 국한된 건 아니다.
낭만적인 겨울여행이 외로운 떠돌이로 전락하자 그토록 그리던 서귀포 바다나 호텔 커피숍이 돌연 무채색으로 변했다. 바라보는 사물이 변한 게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어긋난 눈길이 사시(斜視)였음을 문득 자각하는 순간이다.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예기치 못했던 생의 균열이 느껴졌다. 쩍 갈라진 틈새로 선홍빛 실핏줄이 밴다. 틈새가 너무 많이 벌어진 건 아닐까. 고무줄처럼 신축성 있고 유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시간이 요지부동한 철근처럼 구부러지지도 휘어지지도 않는다. 칼 끝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바심이 일었다.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세상의 이면이 돌연 복병이 돼 출몰했다. 하찮게, 성가시게, 살의 익숙함에 진저리쳤던 그런 것들이 소소한 일상의 덕목이었고 실체감이었음이 자명해진 순간 내 어깨에 힘살이 스르르 빠졌다.
주민증이라는 게 사람의 행동반경을 사슬처럼 묶었다. 등기로 날아온 카드를 받았지만, 이미 분실신고가 돼 있어 출금이 안 됐고 송금된 돈은 은행에서 찾을 수 없었다. 주민증이 관건이었다. 또 전화를 넣었다. “어떻게 좀 해봐.”
그녀가 말을 잘랐다. “우리 동네 동회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해 뒀어요. 그러니까 제주시 시청에 가서 우리 동회장하고 연결을 부탁해 보라고요.”
“미련퉁이가 머리 한 번 잘 굴렸네” 속내말로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게 아닌가. 헛발질에 길들여진 발부리가 왠지 간질거렸다.
“여보, 나 8시에 김포에 도착해.” 여보라는 호칭은 미안함에 대한 곰삭은 익숙함일까. 헛, 헛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공중전화 부스를 가득 메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