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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418호 2013년 1월] 문화 꽁트

回 遊, 趙 英 雄(수의학63 - 67)





 지난해 6월 초 J박사는 평소 呼兄呼弟하는 상주의 H기자로부터 경상북도와 월간중앙 초청 `팸투어'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3대 일간지로 꼽히는 조·중·동에 속하는 신문사의 월간지 정기구독자와 1천5백만 이상의 조회를 기록한 블로거를 포함한 블로그 기자단과 사보협회의 몇 기자들로 구성된 홍보전문가들과 동행 취재다. 대상지와 취재의 초점은 경북지역 특히 문경, 상주, 영주 및 봉화를 위주로 아직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匠人들과의 만남과 실제로 그분들을 일반인들과 교류시키는 일 등을 르포 형식의 글로 블로그와 매체 등에 실어 줄 것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근자에 `팸투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아마도 Familiarization에서 Fam(팸)과 Tour(투어)를 약식으로 `팸투어'라고 하는 것 아닐까. 뜻은 가족처럼 친밀하게 되기 위한 길라잡이의 목적 여행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J박사는 선진국의 문화와 외래어가 온라인과 수많은 매체를 통해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고 있는 세상과 반면 韓流가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와 SNS, Twitter, Facebook 등을 통해 발랄한 연기자, 운동선수, 가수, 예술가 등이 전 세계를 향해 썰물처럼 영향력을 전파하는 곳에서 함께 살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전통과 외래문명과의 공존전략은 무엇일까? 누군가 얘기했듯이 우리의 전통적인 것이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J박사는 생각한다.

 J박사는 근래에 싸이라는 가수가 말춤으로 빌보드에 2위까지 오르는 대박행진을 보면서 글로벌시대에 우리가 가질 패러다임의 변천과 `주거니 받거니'란 말이 실감이 났다. 공교롭게도 한국마사회(KRA)의 馬舍가 비춰지면서 말춤이 신나게 선보인다. 말산업육성법이 제정된 지도 1년이 됐다.

 J박사는 30여 년 전인 1980년 대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이 났다. 그들의 앞선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와 GVMQCP(동물용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 시스템을 우리의 당시 국립보건원 현재 식약청과 가축위생연구소(최근 수의과학검역원에서 농림수산식품검역검사본부로 확대 개편)에 참고용 기본 자료로 쓰도록 제공하면서 도왔다. 지금은 일반화된 GMP 시스템이 J박사가 일했던 회사 주무부서의 전문가(당시 품질관리담당부장이었던 이X범과 노X래 약사)를 통한 자료제공으로 국내에 정착하게 됐다. 그때 동료들은 우리 국민들의 보건에 조금이나마 공헌했다는 자긍심도 가졌다. 앞선 시설과 운영시스템을 거래처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홍보활동에 큰 기여를 한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 때의 마케팅전략의 하나로서, 소위 말하는 선진국형 다국적기업의 앞선 최신식의 공장견학을 통한 홍보 전략을 실행했다. 적절히 예산을 세우고 열심히 고객을 모셨던 생각이 났다. 공장 내에 있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우정을 쌓기도 했다. 그들은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와 캡을 쓰고서 위생적인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일했다. J박사는 `정갈한 자세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하던 약사들과 근로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상념에 잡혔다.

 예의 지정된 날이다. J일보와 호암아트홀이 있는 길가에 대구소재의 번호판이 달린 리무진버스가 도착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고, 서로를 소개하면서 인사들을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J박사의 장거리 버스를 타는 전략은 가급적 앞자리에 앉아서 간다는 것이다. 그는 앞좌석이 롤링(Rolling)이 비교적 덜 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올산 장X덕, 오X재, 김X구, 강X춘, 김X니, 강X환님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를 접어든다 싶더니 벌써 영동고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중간에는 도로확장공사로 아스팔트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한국인이야말로 어디로인가 달려나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진취적인 성미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토록 빨리 경제대국에 진입하지 않았는가. 여주휴게소에서 15분간의 휴식을 가졌다. 좁은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면 심장·혈관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각종 바람직하지 못한 후유증이 야기된다고 하지 않던가. 누구나 할 것 없이 달려가는 곳마다 만원이다. 원만한 신진대사가 이뤄진다는 증거 아니겠나. 전 국민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경쟁하면서 뒤도 돌아볼 줄 모르는 삶을 살아온 것이 벌써 몇 십 년인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갖게 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략마케팅 TF 팀장의 명함을 받아보니 `손X호 PhD.'라고 돼 있다.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뀐 것이다. 실무자들이 관련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전문가로서 업무에 투입되다니. 자치단체가 살아갈 길을 위해 동분서주는 물론 수익원을 개발하고 창출해야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적극적이고 아마도 공격적이라는 지방행정이란 말이 적합할 것 같다. J박사는 `지방자치제도가 불러온 순기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J박사는 S전무라는 후배와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더 나아가 몸이 부자연스런 K사장이라는 선배와도 휴대폰으로 건강에 관한 관심사를 의논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 재활치료를 받는 선배에게 水治療를 권유하고 있다. 화장실까지 걷는 것이 성공한 단계까지 왔고 사업 재개에 관심을 쏟고 있는 대학선배다. K선배는 직장상사로서 J박사에게 박사학위를 밟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고마운 상사였다. 언젠가 그가 몇 년 전 신년 첫날에 J박사에게 전화했다. P호텔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고, 가까운 지인들만 모인 곳에서 자신의 어려웠던 송사를 마무리한 것을 이야기해줬다. 그날 오찬모임에서 재회한 이후 지금까지 교류를 지속하는 사이다. 사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人間事 萬事라는 교훈을 주는 것인가. 건강이 좋지 않아 쓰러진 즈음에 특히 그 선배의 한 대학동기가 송사를 벌여 K사장이 일구어 놓은 회사를 마치 예의 대학동기가 관계인 같이 온갖 어려움을 줬다는 내용은 J박사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큰 어려움을 주는 존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버스는 어느덧 원주 쪽에서 중앙고속도로 접어들었다. 6월의 초순은 여름의 시작으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신록을 머금고 있는 회춘의 젊은 숲을 보여준다. 버스는 영주시를 지난다. J박사는 1960년대 초에 사라호 태풍으로 강둑이 무너져 도시가 쓸려간 적이 있었던 기억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지금의 영주시는 전형적인 시골도시의 정취를 품고 있었다. J박사와 같은 대학의 K선배가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과 시장 등을 지냈다. 아마 `고향사랑의 애틋한 마음으로 정성껏 대민 봉사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J박사는 동시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동물병원을 개원하고 있을 때 일이 떠올랐다. 영주시가 고향인 L이라는 화교출신 E여대 국문학과 입학생이 단골 고객이었다. 별도로 출입하는 셋집에서 서너 마리의 애완개를 기르면서 같은 화교출신 약대 재학생과 가사 돌봄이 처녀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아주 심성이 착하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당시 J의 남매를 화교 유치원에 보내라고 권유했다. 앞으로 중국어를 배워두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리고 J가 주일학교 고등부 2학년 때에는 타교 동급생인 K가 서울 아현동에 있던 경기공업고등학교에 유학 중에 집이 사라호 태풍으로 재난을 당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생각났다. 인연의 고리가 영주와 닿았다고나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는 동안 일행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봉화의 솔봉이 식당이었다. 송이 돌솥밥으로 산골의 풋풋한 맛을 보여주었으며 한 잔의 술을 곁들어 J박사의 `얼씨구!' 선창으로 참가자 전원의 `좋∼다!'로 화답하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며 즐거운 오찬이 됐다.

 봉화가 자랑하는 김선익 鍮器匠의 유기공방을 돌아보니 구리와 주석의 이상적인 배합비가 78 대 22란다. 안성유기란 말은 익히 들어왔고 봉화는 생소했지만 지역의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장인과 대를 잇는 자손들의 힘찬 풀무질이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현대인들의 패스트푸드 사랑에 대가 끊길 것 같던 유기제품이 슬로우푸드의 등장과 함께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J박사가 보기에는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의 개발이 승부수가 될 것 같았다. 대학과의 연계가 잘 이뤄지길 빌었다.

 영주에서 김영희 청실홍실폐백 대표의 8도의 班家·名家 내림음식 시범상은 옛 것의 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줬으며 전통의 고장에서 내린 인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한 목련가든에서는 버섯전골을 내놓았으며 경상도식의 전골은 푸짐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팸투어의 백미라 한다면 숙소와 음식이 빠질 수 없는데 문경관광호텔이 숙소로 정해졌다. 도시인이 객지에서 숙식을 잘못할 경우 팸투어의 정취가 망가지기도 하는데 다행한 일이라고나 할까. 이튿날 조식은 호텔의 한식으로 가볍게 마칠 수 있었다. 아침 산책을 하니 싱그러운 전원의 미풍이 다가 온다. 문경에서 竹林堂이라는 전승공예대전 서재석 입선자의 烏竹茶匙 공방을 들러 보았다. 그는 동국대를 졸업한 분으로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각고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심오한 불교의 향취가 나는 茶匙들을 선보였다. 일본에서 우리의 옛 조상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재현한 것으로 느꼈다. 전통도자금박 기능전승자인 성민 이구원님의 高麗天目窯에서는 산화철을 고온으로 소성해 제작하는 기법으로 고려천목을 재현한 각종 찻사발, 정병, 광구병과 찻물항아리 등의 작품을 살필 수 있었다. 그 분들을 보자 J박사는 내면에 조상들의 유전인자가 우리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고 강렬하게 느꼈다.

 문경의 동막골에서 영양돌솥밥으로 오찬을 즐기고 난 뒤 무형문화재 벽토 정학봉님의 尙州甕器를 찾아 흙과의 교감으로 이뤄진 작품을 접하며 전통이 세계화와 통한다는 진리를 일깨울 수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명문가와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교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용모와 카리스마에서 조상의 얼과 재능을 내리받이로 챙겨 신들린 듯한 흔쾌함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조상과 교감할 수 있다는 증좌가 그들의 손끝과 눈매에서 나오는 靈彩를 통해 교감할 수 있어 색다른 투어였다.

 J박사는 자신이 오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겪었던 萬가지 일들이 휘몰아 돌아오는 것을 `팸투어'를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체득했다. 출발선상에 다시 서서 새로운 21세기를 마주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을 갖는다. 마치 연어가 알에서 깨어난 곳으로 온갖 간난을 헤치고 회유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