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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호 2012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SM엔터테인먼트 李 秀 滿회장




 -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0월 20일 `자랑스러운 경복인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어린 아이들이 뭔가 잘하려고 하는 것은 부모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것 아니겠어요. 가족과 같은 고등학교에서 칭찬해주는 것은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연예인들이 요즘 해외에서 활동하며 사랑받고 있는데 국민들이 칭찬해 준다면 그들이 더 기운을 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가수로 시작해 M C, 기획사 운영자로 계속 변신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대학시절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요. 언론 통폐합으로 TBC(동양방송)가 없어지는 일이 일어나 주저하지 않고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었어요. 당시 미국에 가보니 많은 것이 우리와 달랐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인지 문화를 즐길 줄 알고 문화예술을 보는 눈이 우리와 굉장히 다르더군요. 우리나라도 잘살게 되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크게 발달하겠구나 싶었습니다. IT산업 진출을 목표로 유학생활을 시작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1985년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1989년 SM기획을 설립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 한류 얘기를 하자면 보아(BoA)씨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데뷔하고 일본에 진출해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처럼 어린 나이의 가수를 키울 생각을 하셨나요.

 “보아 이전에 H.O.T.가 중국에서 상당히 큰 성과를 올렸어요. 그 때 `일본에도 한 번 도전해보자'라는 용기가 생겼죠. 그래서 전략적으로 S.E.S.라는 그룹을 결성했는데 일본에서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이유를 살펴보니 당시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어요. 게다가 일본 젊은층의 음악은 `1315', `1618'이란 하나의 공식이 성립돼 있었습니다.”

 - `1315', `1618' 공식은 뭔가요.

 “13∼15세에 데뷔시켜 16∼18세면 스타로 만드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그걸 알고 저도 가능성 있는 인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보아를 발굴한 것이지요. 당시 보아는 만 10살이었어요. 3년간 트레이닝하는 동안 일본어 공부를 위해 일본 현지 아나운서 집에 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4세에 국내에서 먼저 데뷔한 후 15세에 일본으로 진출, 결국 17세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지요. 보아의 노래가 일본 가요계에서 1등을 한 후 일본 내에서 보아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각됐습니다. 그러자 재일교포 등 현지 한국인들이 보아 덕에 자녀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며 저에게 고맙다고 해 뿌듯했습니다. H.O.T.와 보아 이후 최근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등의 가수들이 한류 확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 보아에 앞서 H.O.T.가 중국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말씀하셨는데요.

 “2000년 2월 H.O.T.가 중국에서 공연할 때의 반응은 1970년대에 클리프 리차드가 내한했을 때 같았어요. 관객들의 반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중국 주요 신문들이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관련 기사를 실을 정도였어요. 저절로 된 것은 아니고 중국 진출에 앞서 4년 동안 홍보에 집중하며 H.O.T.라는 그룹을 중국에 알린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시도였는데.

 “미국 유학 시절에 보니 우리나라 음악을 비롯한 아시아의 음악은 너무 뒤처져 있었어요. 새로운 댄스 음악이 필요하다 여겼죠. 또 많은 사람들이 해외 팝스타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해외로 진출하는 가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끝에 결성한 것이 H.O.T.입니다. 다만 일본은 일찍이 경제대국으로 성장, 우리보다 문화가 앞서 있어 중국을 타깃으로 했지요. 경험이 없어 라디오와 한인방송에 음악을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는데 차츰 인지도를 쌓아 현지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아무도 예상 못했던 공연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것이 가요 한류의 시초죠.”

 - 지난 6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S M 타운의 공연을 연장해 달라는 플래시몹이 열려 화제가 됐는데.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파리 시민들이 한국 가수의 공연을 보여달라고 대규모 플래시몹, 일종의 시위를 한다는 사실에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설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국민적으로 엄청난 자긍심을 갖게 된 큰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프랑스에서의 공연 계획은 없었어요. 비용이 워낙 많이 들거든요. 파리 공연이 커진 것은 당시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崔畯晧원장(現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노력 덕입니다. 당초 1∼2팀의 공연만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崔원장께서 현지 팬들 사이에 `SM타운팀이 와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계속 요청하셨어요. 그 열성에 감복해 SM타운 공연을 열었는데, 1회 공연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면서 2회로 늘려달라는 팬들의 요구가 결국 대규모 플래시몹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 미국, 유럽 등 더 많은 나라로 진출하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

 “프로듀싱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봅니다. 조만간 중국에 동양의 할리우드가 생길 것이라 본다면 그곳의 바탕을 우리나라 회사와 프로듀싱 능력으로 상당 부분 채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처럼 콘텐츠를 만드는 힘을 저는 CT(Culture Technology)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할리우드가 만들어졌을 때 프랑스의 자본과 영국의 프로듀서가 투입된 것처럼 우리도 서둘러 중국 시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 우리나라 가수가 한국어로 노래를 하는 지금의 시스템만 고집해서도 안 되고요. 지금의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되 CT를 통해 다른 나라 가수들이 노래하고 작품을 만들어 유명해지도록 해 우리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 빨리 프로듀서 및 프로듀싱 시스템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SM엔터테인먼트가 그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 본인의 노래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뭔가요.

 “최근 제가 출연한 모 증권사 광고에 등장하는 `행복'이 가장 좋습니다. 직접 만든 곡인데다 가사도 좋아 애착이 갑니다.”

 -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자녀를 둔 동문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우리 시대가 먹고사는 데 급급한 시대였다면 이제는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직업을 택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인생의 척도 역시 자기가 배운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즐기고 있느냐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어떤 일을 정말 좋아하는 건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건 결국 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지요. 노래를 하고 싶다고 하거든 우리 같은 기획사에 먼저 보내세요. 테스트를 받아보면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조건 막지 마시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사진 = 朴짳載기자·정리 = 林香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