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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2012년 10월] 문화 꽁트

金 二 求(국문78 - 82)소설가




 아버님 아니 존경하는 황덕수 의원님, 아버님이 공천 헌금 오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저는 충격과 함께 벅차오르는 심정을 억누를 길 없어 이렇게 몇 자 아버님께 아뢰옵고자 합니다. 아버님의 이번 사건은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아버님이 자식과 가정과 나라를 위해 옥살이까지도 불사하며 몸을 던져왔음을 증명하는 뜻깊은 것입니다. 아버님의 삼십여 년 정치 역정에 아버님이 철없는 불초자식을 위해 어떤 고뇌와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는지 아버님은 몸소 저희에게 일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집권 여당을 겨눈 이번 수사는 이 어리석은 불초자식에게 아버님의 하해와 같은 사랑을 일깨워주는 죽비와 같은 따가운 내리침이었습니다.

 검찰의 칼끝이 야당에게는 서릿발처럼 가혹하고 집권 여당에게는 면봉처럼 가늘고 무디기만 하다는 비판이 난무하던 차에,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때려잡는 이즈음의 회오리바람 칼춤을 아버님은 끝내 비켜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칼끝이 정말 엄정하고 호된 司正의 검이 될는지 아니면 용두사미로, 심심풀이 먼지떨이나 면죄부 수사로 마감할는지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집권 여당의 태양처럼 빛나는 대권 후보의 강력한 오른팔이신 아버님이 일금 오천만원을 챙겼다는 것은 그 커다란 총선 선거판을 뒤흔들었던 아버님의 위세로서는 면목이 전혀 안 서는 일입지요. 야당의 저 아랫자리 찬조인사격인 여인네가 공천 영향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아 수십억원씩이나 받아 챙긴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더구나 납득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는 어쩌면 우연한 제보에 의존하는 검찰의 어처구니없는 미약한 수사력 탓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심오한 어떤 정치공학적 암산이 뒷받침된 정교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 아닌지 불초자식은 감히 아버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아버님, 아버님은 물려받은 것 별로 없는 저희 집안의 빈한한 살림살이를 일으켜 수십년간 가정을 튼튼하게 건사하시느라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삼십여 년 정객 생활 동안 아버님도 대권의 큰 뜻을 품고 4선의 경력을 쌓으며 이 나라를 이끌어오는 데 큰 몫을 하셨습니다. 예닐곱번에 걸쳐 뛰어들었던 선거판에 들어간 무지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셨는지 그것은 감히 뱁새인 제가 황새의 큰 걸음을 짐작할 리 없고, 다만 이 불민한 자식을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 월 기백만원대의 과외를 아낌없이 시켜주시고 제 여자친구의 유학비까지 지원해 캐나다로 함께 유학을 보내주신 크나큰 은덕을 어찌 제가 모르거나 망각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부평의 지린내 풀풀 풍기는 전세방에서 강남의 사십평 아파트로 수직적인 계급상승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의상학과의 재원으로 중소기업에 진출해 커리어우먼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성실 충직한 어머님의 봉급만으로 가능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버님의 어떤 신묘한 요술이 그 험난한 정치판을 헤쳐오면서 거꾸러지지 않고 가정을 건사해냈고 비록 이제 대권의 꿈은 쪼그라들었으나 여전히 막강한 여권의 실세로서 세상을 쥐고 흔들게 하는지 감히 저는 알려고 하고 싶지 않고 알 수 있는 지혜와 슬기도 미처 깨치지 못했습니다.

 아버님은 박 회장이 담배상자에 담아 보낸 빳빳한 현금 오천만원을 받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불초자식은 아버님을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박 회장의 회사 간부가 아버님의 측근인 김 실장에게 돈을 주었다고 운전기사가 증언한다 하니 그것은 사실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명민하신 아버님의 거래라면 한층 더 거대하고 품위있고 기묘하고 절묘하리라 저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오백억이나 오십억도 아닌 일금 오천만원이라니요. 지나가던 개가 걸음도 늦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말 일입니다. 헐.

 아버님은 제게 그런 위세를 내보이지 않았지만 불초자식은 대권을 향한 아버님의 원대무비한 꿈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이 진심으로 슬프기만 합니다. 아버님은 정치판에 휘둘려 특히 자식 일이나 아내를 따뜻하게 챙겨주지 못한 것을 마음으로 늘 무척 미안해하고 계셨지요. 이 아둔한 자식도 그 십분지 일 정도는 능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결코 꿈을 접지 마십시오. 이번 일로 비록 날개가 꺾인 듯하나 아버님의 장엄한 분골쇄신이 어찌 아버님 일신만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설사 아버님의 혐의가 벗겨지지 못하고 이년이나 삼년쯤 저 어둠침침한 감방에서 고초를 겪게 된다해도 아버님의 그 고초는 저에게는 너무나 눈물겹고 값진 은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년이나 삼년간 감옥살이보다 더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해서 이 21세기 대한민국 경제에서 어느 누가 쉽사리 오천만원의 목돈을 손에 여툴 수가 있겠습니까. 아아, 아버님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제가 이런 어법을 쓰다니 모순이라고요. 아버님, 다만 저는 세인들의 입길에 오른 오천만원을 예로 들었을 뿐, 어찌 오천만원에 한정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님의 장엄한 분골쇄신을 집권 여당의 저 유력한 대권 후보께서는 결코 망각하거나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판에는 의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리부존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저 유력한 대권 후보가 꿈을 이루든 좌절하든 아버님의 분골쇄신은 철저하게 보상을 받을 것이며 잊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버님의 대권 후보가 승리한다해서 아버님의 처지가 유리할 것이라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한 육개월쯤 일찍 사면으로 풀려나실 수는 있겠지요. 아버님의 대권 후보가 요동치는 대선판에서 거꾸러진다해서 아버님의 처지가 불리하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의리는 다만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아버님의 대권 후보를 위협할 새롭게 부상하는 후보에게 결정적 한방을 날리기 위해 아버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이미 카드를 마련하셨습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아버님의 그 극진무궁한 공력은 예술가의 자세와 빗댈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아버님께는 오로지 의리가 있는 경우만이 허용돼야 합니다. 한 마리 희생양으로 감방 구석에서 잡범들과 함께 쓸쓸히 잊혀가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용납돼서도 안 됩니다.

 이 불초자식은 아버님의 부활을 믿고 아버님을 뜨겁게 응원하며 존경할 따름입니다. 아버님의 그 지극정성이 아버님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초자식의 모호한 인생과 가족의 안녕을 지켜주기 위해 선택된 것임을 저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저 무지막지한 언론사 카메라에 잡힌 아버님의 그 견고한 표정, 그 안쪽에 흐르는 인간적인 정리의 간절함을 어찌 아버님의 피를 받은 불초자식이 모를 수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아버님 아니 원망스러운 민윤기 회장님, 놀라셨지요. 웬 잘못 날아든 편지인가 하고요.

 이 못난 자식은 구속되는 황덕수 의원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아, 저분이 나의 아버지였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훌륭하신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실꾸리에서 실 풀려나오듯 술술 풀려나왔습니다. 거창하게 `회장님'이시지만 아버님은 시민단체의 같잖은 감투를 스스로 쓰시고 머슴처럼 분주하게 낮밤없이 싸돌아다니고 계십니다. 이날 입때껏 어머니가 허리가 휘어지도록 조그만 인테리어 가게를 열어 밤낮없는 노가다로 남매를 가르치고 심지어는 아버지 용돈까지 챙겨드렸으니 딱히 가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버지로서는 여지없이 부끄러워하실 일이지요. 불초자식은 어릴 때는 아버지가 그저 많이 바쁘신 분이구나 알았을 뿐이지 우리 가정의 빈한함에 그토록 책임이 있는 원흉인 줄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서민 살림살이를 걱정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시든 안 하시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버님의 자유이고 선택이지만, 불초자식이 중학교 시절 사달라던 값싼 기타조차 간단히 물리치시고, 그 흔한 영어학원 한 번 보내지 않고, 대학 4년을 제가 학비벌이 아르바이트와 방황으로 8년 동안이나 다니게 한 데 대해서 전혀 괘념치 않는 태도를 보이셔서는 안 됩니다. 아버님, 황덕수 의원님을 본받으십시오. 불의든 정의든 그 수단과 방법은 아버님이 알아서 하실 일, 아버님이 주장하시는 노동복지를 우선 당신의 아내에게부터 실현해 주십시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저 역시 아버님이 지지하는 대권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엄혹한 청년 실업의 계절이 쉽사리 끝날 것이라고 낭만적으로 믿지는 못하겠습니다. 아버님, 청년 실업의 종식을 주장하는 대권 후보를 따라가기 전에 먼저 이 불초자식의 실업을 끝내는 데 발벗고 나서 주십시오. 삼년 만에 만난 미국 유학 중에 들어온 친구가 제게 그러더군요. “야, 너 왜 이렇게 늙었냐?” 그렇습니다. 이 아들은 겉늙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