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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2004년 9월] 기고 감상평

읽을거리 많아지고 지면 변화 느껴져

 언제부턴가 동창회보의 면모가 일신된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읽을거리가 많아졌다. 각계각처에서 종사하는 동문들이 쓴 글들이 다양하고 재미가 있어 받아들면 거의 다 읽게 된다. 317호의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칼럼이나 인터뷰 기사는 좋았다. 바쁘신 중에도 좋은 글을 올려준 동문들에게 감사한다. 감사한 마음에 글을 하나 부친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 천재가 태어났다고 떠들썩하다.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인데 영어도 척척이고 일본말, 중국어도 초보는 넘는다고 한다.  네 살 때 어느 날 벽에 붙여놓은 천자문을 보고 할머니가 한 20여 자를 읽어주었는데 다음날 혼자서 대충 읽더란다. 이후 엄마는 직장도 그만두고 오직 아이에게만 매달렸다. 영재학원에도 보내고 일본어, 중국어 테이프를 사다가 종일 틀어주고 있다.
정서함양을 위해 잠잘 때도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의 음악을 틀어놓는다. 머리가 좋을수록 건강해야 된다고 수영도 배운다. 넉넉한 집안도 아닌데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남편 혼자 벌어서는 살림 꾸려가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런데도 부인은 머지않아 조기유학을 보낸다고 말한다.  어느 날 그 집에 대판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참다못한 남편이 반기를 든 것이었다. 「잘하건 못하건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정규학교를 꼬박꼬박 다니며 과정을 다 마쳐야 한다. 따라서 조기유학이다 검정시험이다 하여 정규과정을 건너뛰는 것은 안 된다. 학교과정을 제대로 다 거쳐야 올바른 인성으로 자란다」 대충 이런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날부터 남편은 아이 머리맡에 서울대 사진과 교표를 붙여 놓았다.  만약 그 아이 아버지가 내게 상담을 해온다면 주장을 굽히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정해진 과정을 제대로 거치면 일의 처리에서 합법이었다는 안도감을 주고, 인생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면 안온하고 편안해진다. 자기 또래들이 늘 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대 사진은 떼라고 할 것이다. 다 큰 뒤에 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들어갈 만한 친구들이 같이 모였을 때 보람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모교를 생각하며 행복감에 잠기는 것도 나이 들어 생각하니 같은 과에 한 날 한 시에 입학했던 친구들 때문이다. 이건 명예도 출세도 돈과도 상관이 없다. 그저 같이 할 만한 또래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에 갔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에 들어갔다. 같은 나이의 친구보다 3년이 빠른 셈이었다. 서울대에 입학했다 하여 온 면이 발칵 뒤집혔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 초등학교 교장, 면장, 파출소장, 우체국장까지 모아놓고 잔치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간 지 넉 달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적응이 안 된 탓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성장이 늦어 그때 아직 사춘기에도 이르지 않았다. 또 요새 같이 젊은 영재에 대한 대책이나 배려도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입학시험이라는 것이 수학능력을 제대로 측정했다고 볼 수도 없다. 아무튼 그 후 우리 고향에는 그가 대전 어디서 소매치기 두목이 되어 있더라는 소문이 돌았고, 오늘날까지 마치 전설처럼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