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호 2012년 10월] 기고 감상평
金 泰 煥(영문60 - 65)E-Mini Haven CEO의 성공 스토리


1974년 3월 9일 32살 생일날 서울 김포공항에서 NWA 비행기를 타고 무작정 미국행을 감행했다. 날짜 변경선 덕분에 생일날 생의 제1기를 한국에서 끝을 맺고, 같은 날 미국에서 제2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 잡은 첫 번째 정상적인 업무는 뉴욕시의 다운타운 처치 스트리트에 있는 출판사에서 전공을 살려서(?) Yellow Pages에 나오는 문안을 교정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잡은 첫 직장 일이 영자지에서 배운 교정이어서 일하는 데는 별로 어려운 점이 없었으나, 급료가 적은 것이 문제였다.
미군 입대 … 대학 강의 수강
그러던 어느 날 집사람이 `친구 남편이 미군에 입대했는데, 복무 중이나 제대한 다음에 혜택이 좋다는데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내 의사를 타진했다. 그리하여 1976년 4월 20일 뉴저지주 남부에 있는 Fort Dix 신병 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마치고, 늦여름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포트 브래그의 2nd Support라는 행정 지원 부대에 배속을 받았다.
신고를 하는 내게 중대장(대위)이 “어떻게 미국 군대에 입대하게 됐냐”고 물었다.
“군에서는 월급을 주면서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해 입대했으며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목표”라고 대답하자 중대장은 “아, 그래, 참 좋은 목표를 가졌구먼. 우리 부대 안에 시스템 분석가들이(Systems Analysts) 모여서 일하는 데가 있어. 그곳에 배치해 줄 테니 가서 일하도록 하게”하면서 책임자에게 전화해 나를 그곳에서 일하게 해줬다.
부대에는 포트 브래그 안에 몇 개의 대학이 분교를 설치해 수업하고 있었다. 군인이 현역으로 근무하면서 대학 강의를 들으면 정부가 수업료의 4분의 3을 보조해 준다고 해서 한 번 시도하기로 작정하고 처음 한 과목만을 들었고, 그 다음에는 두 과목, 세 과목 등 차츰 늘려 나갔다.
근무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부대 안에 있는 Fayetteville State University의 분교로 가서 강의를 들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에는 분교에서 저녁 6시에서 10시까지, 그리고 토요일에는 Fayetteville 시내에 있는 본교로 가서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제대하기 전에 졸업장을 따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학생 수가 많지 않아 고학년(Junior, Senior) 과목을 분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낮에 본교로 가야만 Upper Level Courses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근무를 저녁이나 밤에 해야만 했다. 그 당시 나는 14th Data Processing Unit에서 컴퓨터 오퍼레이터로 근무 중이었는데 3교대 상황에서 나만 계속 저녁이나 밤 당번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허용해줄 리도 만무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 문제가 쉽게 풀렸다. 어느 날 중대 게시판을 보니 SP(Security Police) Volunteer를 뽑는다는 공고가 붙어 있었는데, 근무 조건이 저녁번과 밤번을 교대로 경내를 순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근무가 끝나면 Fayetteville 본교로 가서 Upper Level Courses를 듣고 졸업에 필요한 전 과목을 이수해 GI Bill 혜택은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제2의 대학 졸업장을 군대에 근무하면서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2년6개월만에 우등 졸업
군 복무 3년 가운데 기본 훈련(Basic Training), 교육(Computer Operator Course at Army Administration School in Indianapolis), 야외 훈련, 집안 어르신 장례 참석차 한국 방문 등 약 6개월을 뺀 2년6개월 동안 90학점을 이수하고 GPA 3.8로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미국에서는 한 학기에 12학점을 이수하면 Full Time Student로 인정해주는데, 나는 현역으로 군에 복무하면서 한 학기에 27학점까지 수강하기도 했다. 시골 학교였기 때문에 좋은 회사들이 리크루팅(Recruiting)하러 오지는 않았으나 다행히 정부 기관에서 선발하러 오는 곳에 신청해 Bank Audit Agency, IRS와 Defense Audit Agency 등 세 곳에 선발이 됐고, 그 중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위치한 Bank Audit Agency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워싱턴으로 이사갈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고 있던 중 Fayetteville에서 `Job Fair'가 열린다고 해서 알아보니 여러 대형 회사에서 봄에 군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나가는 ROTC 장교들을 주 대상으로 리크루팅을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그 중 GM(General Motors)도 금융 계통 인력을 모집한다고 해서 그 쪽에 응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곳은 그야말로 지망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지망생들이 이력서만 가져가 리크루터(Recruiter)에게 보여주었는데 나는 한 가지를 더 가져갔다. 내가 Bud Murphy씨에게 보여준 것은 Managerial Accounting의 채점된 답안지였다. 그곳에는 담당 교수가 시험지 여백에다 `Teddy, You have no problem to become an Accountant. If you want, I can help you.'라는 글뿐만 아니라 큼직하게 A+ 점수까지 표시돼 있었다. 그는 내게 다음 날 오후 5시 30분까지 Slot에 오라고 시간을 내줬다.
다음날 지정된 시간에 인터뷰 장소에 갔더니 Murphy씨는 어제 보여준 시험지에 감명을 받았는지 전공이나 업무에 관한 질문은 한 가지도 하지 않고 30분 동안 가벼운 주변 정담만 나눴다. 나는 일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제일 큰 GM에 취직이 안 되더라도 면접만 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겠다”고 얘기했더니, 그는 “본사에 가서 면접 일정을 주선해서 연락해주겠다”고 흔쾌히 응해줬다.
Memorial Day 다음 화요일에 GM의 Buick Division에서 면접을 보고 비행장으로 가는 길에 나를 배웅해준 Brad Rogers부장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환대에 감사하며 세계에서 제일 큰 회사에 와서 인터뷰한 것만 해도 저로서는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미 직장이 정해져 있으므로 GM에 되든 안 되든 개의치 않으니까 결과만 빨리 알았으면 좋겠다”고 답하자, 그는 “Will tomorrow be soon enough?”라고 했다. 그의 대답에 깜짝 놀랐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기뻐 “Sure enough. Thanks.”라고 짧게 대답했다.
Fort Bragg부대 가까운 곳에 있는 Spring Lake, NC 집에 돌아와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GM이 나를 뽑았다는 통보가 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Teddy Kim의 취업 문제에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데 대해 놀랄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것은 Recruiter인 Murphy씨가 내가 보여준 시험 답안지에 담당 교수가 적은 메모를 보고 깊이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무작정 미국에 온 지 5년 만에 세계 최대 기업에 근무하게 되어 기분이 참 좋았다. 일을 시작한 지 약 2주가 지나서 내 인생에 일대 전기를 가져다준 큰 사건이 일어났다. 2주가 지난 어느 날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갈색머리의 미녀가 사무실에 천사처럼 나타나 자기 소개를 했다.
“Hi, My name is Corrine Walijarvi and a Harvard MBA. Just graduated earlier this month. I started to work here as a General Supervisor. Please help me when I may come to ask for your help.”
`하버드대 MBA'코스 밟아
나는 그녀의 당찬 자기 소개에 한마디로 깜짝 놀랐다.
첫째, 나이 30도 안 되는 여자가 General Supervisor로 일한다는 것은 파격적이었으며, 둘째로는 하버드 MBA 출신을 여기서 만났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어떤 계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틈만나면 Corrine을 찾아가 하버드 MBA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나는 Corrine의 설명을 듣고 하버드 MBA 프로그램에 도전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그곳은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졸업하기는 더 힘들기 때문에 확실한 자신이 있을 때에만 도전해야 한다고 판단을 내려 자체 점검부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Fixed Factors와 Variable Factors가 있기 마련이다.
우선 하버드 MBA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위한 Fixed Factors를 살펴보니 GMAT 점수와 이력서를 잘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변동 요인이었다. GMAT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시중에 나와 있는 GMAT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다 놓고 매일 연습하고 주말에는 실제 시험을 치르듯이 모의 테스트를 했다. 아무리 해도 우리의 읽는 속도가 미국 학생보다 뒤쳐지기 때문에 문제 유형을 익혀서 방향을 잃지 않고 바로 문제 풀이로 들어가도록 했다.
남들은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군데에 원서를 제출하지만, 나는 준비를 잘 했고, GMAT, GPA 등 모두 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해서 하버드 한 곳에만 지망하기로 작정하고 원서를 제1차 마감일에 맞춰 Thanksgiving Day 무렵에 보냈더니 1981년 1월에 합격 통지서가 왔다.
이상으로 내가 아무런 계획 없이 `기회의 나라'라는 말만 믿고 미국에 와서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큰 GM에서 근무하게 됐고, 남들이 동경하는 Harvard MBA Course에 합격했는지를 대충 설명해 드렸다.
현재 EMiniHaven.com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원유(Crude Oil)와 금(Gold)등의 선물을 소액 단위(E-Mini)로 거래하는 방법을 실시간으로 지도하고 있다. 2008년에 닥친 불황 때 실직했거나 사업이 어려워서 손을 놓고도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분들이 아침 시간에 약 한 시간 정도 거래를 해서, 하루에 1백50∼2백달러 정도씩 벌도록 도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