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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2012년 10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安 輝 濬이사장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임명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우선 모교 동창회보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데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두 가지의 이유로 이사장직을 고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첫째 이 자리가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에 비해 단시일 내에 업적을 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었고 또 개인적으로 해오던 저술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나라일이고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맡게 됐습니다. 이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문화재 환수가 많이 이뤄지겠구나'라고 기대할텐데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제 곧 문화재들이 속속 환수되겠군요'라고 얘기하는데 그때마다 아주 난감하게 느껴집니다. 일례로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도서의 경우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프랑스와 협상을 진행했지만 끝내 정식 환수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명백한 약탈문화재로 당연히 환수 받아야 하는 문화재의 경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경위가 불분명한 문화재의 경우에는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 그렇다면 재단이 우선 진행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요.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된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약탈 등 불법적이고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나간 경우, 둘째 외교관계 및 통상 등 우호적인 입장에서 선물로 주어지거나 상품으로 거래된 정상적이며 합법적인 경우입니다. 셋째 절대 다수의 문화재처럼 유출 경위가 불분명한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에든 국외문화재의 유출 경위를 밝히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약탈문화재가 확실한 것은 강력하게 환수를 추진하고, 우호적인 방법으로 유출된 것은 이미 그 나라의 소유가 된 상태이므로 그곳에서 최대한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는데 활용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출 경위가 어떠하든 환수를 위한 노력과 함께 현재 소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우리 문화재를 사장시키지 않고 박물관 및 공공기관을 통해 한국문화를 자국민들에게 알리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외소재의 우리 문화재는 15만점 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나라별, 분야별, 시대별 등 문화재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과 함께 국보 및 보물에 해당하는 뛰어난 작품에 대한 구분도 필요합니다. 그에 따른 대처 방법 역시 다르게 마련될 것입니다.”

 - 문화재 관련 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교 시절 담임의 권유로 상과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모교 문리과대학에 고고인류학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입시 3개월을 앞두고 진로를 바꾸게 됐습니다.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해 三佛 金元龍선생과 藜堂 金載元선생과의 인연을 맺게 됐지요.

 군대를 다녀온 직후 金載元선생께서 `우리나라 미술사가 굉장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통으로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하시며 고고학보다 미술사쪽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간곡히 말씀하셔서 金元龍선생과도 상의한 후 하버드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스승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사학자입니다. 모교에 입학해 훌륭한 교수님들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金元龍선생이 고고학과를 고고미술사학과로 개편했던 것은 우리나라 미술사 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모교 이후 각 대학에도 고고미술사학과가 생겼고, 이것이 미술사학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 분의 학자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 그동안 많은 책을 출판하셨는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과 1백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국내 최초로 쓰여진 것들이어서 읽어 볼 때마다 그 의미가 새롭게 새겨집니다. 특히 한국 회화사 분야에서는 개척자적 역할을 했다고 외람되지만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 1980년에 출판한 `한국 회화사'는 우리나라 회화의 특성과 흐름을 체계적으로 살펴본 대표적 개설서로서 지금까지 총 20쇄가 발행됐습니다. 2000년에 논문집으로 발행된 `한국 회화사 연구' 역시 회화사 관련 논문집으로는 처음이며 제일 방대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뤘기 때문인지 논문집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판매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에 나온 `미술사로 본 한국의 현대미술'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른 책들은 대부분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을 다뤘지만 이 책은 현대의 우리 미술에 대한 저만의 생각과 주장이 담겨 있어서 후배들이 安輝濬의 미술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가장 유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청출어람의 한국미술'도 우리나라 고미술의 재평가에 참고가 될 것으로 봅니다.”

 - 개인적 철학이라든지 좌우명은.

 “주어진 일을 함에 있어서나 공부를 함에 있어서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특히 공무를 수행할 때는 공명정대·공평무사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가장 합리적인 길을 찾아서 하자는 생각을 늘 합니다.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항상 객관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가 문화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은 물론 우리 민족의 지혜와 창의성, 기호와 미의식, 철학과 사상, 생활과 종교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화재를 온전하게 보전하고 후대에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오늘날의 인문학자들이 인접 분야와 미개척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학문적 시야를 보다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예술은 인간의 미적 창의성과 감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담아낸 분야여서 인문학의 모든 분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다뤄야 하는데 예술을 통한 인문학의 발전을 꾀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예술을 배제한 인문학의 패러다임은 인문학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학, 역사, 철학을 통칭하는 `文史哲'이란 말 대신 예술을 포함한 `藝史哲', 혹은 `文史哲藝'로 인문학의 패러다임을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미술은 우리 민족의 지혜와 창의성을 실물로, 시각적으로 증거처럼 보여주는 사실상 유일한 장르입니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작품을 남기고 있는 유일한 예술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사는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더욱 관심을 갖고 키워야 할 인문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 安興燮편집장·정리 = 林香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