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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2012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安重根의사 다시 알기




 지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의 일정으로 그동안 한 번 가보려고 생각했던 중국의 大連 여행을 했다. 사실 그 많은 지역 중에 대련을 고른 것은 지금은 대련시에 편입된 旅順을 가보고 싶어 그곳을 결정해서 다녀왔다. 대련과 여순은 동북3성의 제일 남쪽이 되는 요동반도에 자리 잡고 있다. 대련은 중국 제2의 무역항구이며, 동북지방(만주)의 창문이다. 또 여순은 安重根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대련과 여순을 합쳐서 한 때 旅大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냥 대련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바로 나의 여행 목적지인 旅順으로 가보고자 한다.

 여순 감옥과 安重根의사 : 한국의병 참모중장 安重根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해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安重根의사의 조선의 독립과 아시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애국주의적 정신 즉, 大我를 위해 小我를 버린 정신은 영원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安重根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거사한 즉시 체포돼 일본 하얼빈(哈爾濱)총영사관을 거쳐 여순 감옥으로 오셨다. 安重根의사가 지내시던 독방과 고문당하시던 방, 그리고 書道를 하신 물건들도 그대로 보존돼 있고 또 1910년 3월 26일 사형(교수형)이 집행됐는데 그 장소도 너무나 잘 보존돼 있다. 한 가지 특기할 일은 安의사 모친께서 직접 가져온 수의를 입고 교수형이 집행됐다고 해 모친의 사랑 어린 처사를 듣고 감명 받았다. 또 중국 당국의 호의로 安重根의사가 약 5개월 동안 쉬지 않고 쓰신 많은 이름 있는 글씨가 한 방에 전시돼 있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됐다. 사실 安重根의사의 거사는 중국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孫 文선생도 높이 평가해 좋은 글을 써서 보내주었는데 그 글도 지금까지 여순 감옥에 잘 보관돼 있다.

 安重根의사의 서예 작품 : 安重根의사의 명필 서예는 59품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잘 전시돼 있다. 그 중에서 安의사의 좌우명이라고 알고 있는 `見利思義 見危授命(이로운 일을 볼 때에는 의리를 생각하고 위급한 일을 볼 때에는 생명을 바치다)'과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도 독서를 안 하면 입 속에 가시가 생긴다)'이란 글은 安의사의 높은 교양수준을 나타낸 작품이다. 이와 같이 무수한 명필이 전시돼 있어 우리가 여순 감옥에 간 중요한 이유가 됐다. 安의사가 쓰신 글 중에서 제일 마지막 사형 집행 직전에 쓰신 글은 `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인데 이 글은 의사님을 모신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千葉 十七)가 마음에 들어 써주신 글이라고 알고 있다. 일본인 간수는 이 글을 일본에 가지고 가서 평생 동북지방의 절에다 모셨다고 한다. 그 당시 여순 감옥의 난방도 안 된 추운 감방에서 사형을 목전에 두고 어떻게 그런 명필의 작품을 쓰셨는지 安의사의 심리적 안정감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요동반도 여행에서 느낀 점

 1)安重根의사의 고결하고 忠正에 넘치는 애국심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약 1백년 전 홀로 막강한 일본,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인물 伊藤博文을 사살하고 약 5개월간의 생명을 초월한 감방생활을 하신 것을 보니 위대한 선열의 호국정신 앞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내가 지금까지 安重根의사를 숭배인물로 삼은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2)나라가 약하고 국가로 존재하지 않았던 (外交上으로) 일은 참으로 비극이다. 우리나라가 1905년부터 완전히 일본의 통치를 받아온 것,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가 외교권도 없고 해서 국제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표시할 수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 요동반도에도 옛 고구려의 卑沙城(660m 고지)이 大連郊外에 있어 멀리서만 보고 왔다. 우리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일은 국권이 없을 때 청나라가 현재 심양에서 나라를 세우는 바람에 滿洲땅에 있었던 많은 고구려의 땅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3)나는 이번 여행으로 1백년 전에 요동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고 온 것이다. 여순 감옥이 그 주 목적지였다.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 가나 주로 골프관광이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다. 우리를 위하고 나라를 구하려는 거룩한 뜻으로 목숨을 바친 安重根의사와 그가 머물러 계셨던 여순 감옥은 거리도 얼마 멀지 않으니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교육장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