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호 2004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2004년, 그 해 여름은 끔찍했네
장마철 굵은 빗줄기가 내리치던 7월 17일 오후. 경찰팀 선배와 함께 후배 결혼식을 찾았다가 선배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됐고, 다음날 서울지방경찰청의 공식 브리핑이 있으니 늦지 않게 출근하라는 것이다.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이라면 지난해 9월부터 두 달간 서울 강남과 강북의 네 집에서 80대 할머니 등 8명이 둔기에 맞아 숨진 엽기적인 사건. 경찰도 단순히 동일범으로만 추정하고 있을 뿐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선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들을 전했다. 『그 용의자가 죽인 사람이 모두 스무 명이 넘는다는데…』 언뜻 사상 최악의 연쇄살인 용의자라는 직감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접할 끔찍한 사건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는
지 아니면 사건기자로서 한번 겪어봄 직한 「大魚」와 마주쳤다는 직업 의식 탓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음날 아침 연합뉴스 경찰팀 전원이 역할을 나눠 세기의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부유층 노인들 외에 11명의 출장마사지 여성들이 잔혹하게 토막살해돼 암매장됐다는 경찰 브리핑을 시점으로 각 언론사 사건기자들은 수사본부가 차려진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 진을 치고 열띤 취재 경쟁에 들어갔다. 현장검증과 유의 거주지, 유가 졸업한 학교, 피해자 가족 등 취재 가능한 모든 대상에 대해 전 언론사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경찰이 유의 신병을 꼭꼭 숨겨두고 조사 현장을 철저히 통제하는 바람에 각 언론사는 피해자 주변 인물 등 외곽 취재에 의존해야 했고 그럴수록 기사는 경찰과 유의 입만 좇는 형국이 돼 버렸다. 그런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한동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팩트(事實·fact)로만 승부해야될 기사인데, 그 기사를 쓰는 필자 자신이 기사의 내용을 쉽게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장마사지 여성을 불러내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잘게 토막내는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10여 차례나 계속한 엽기적인 사건이 대한민국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의 시나리오라면 모를까. 유영철이 1주일 넘게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된 뒤에야 사건기자들은 한숨 덜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기자들의 여름은 유씨 사건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8월 1일 밤, 이번에는 폭행용의자를 쫓는 경찰관 2명이 용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공권력이 무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경관살해범 이학만은 사건 현장을 빠져나와 1주일간 도주 행각을 벌였다. 경찰은 동료를 잃은 슬픔을 달래며 이학만 검거에 전력을 다했고 기자들도 경찰의 수사 진행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서울의 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찜통더위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이학만은 1주일만에 검거됐고 유영철 만큼의 후폭풍은 없었다. 자연히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져 갔다. 열대야는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고 낮 최고 기온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올 여름 「10년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떨쳤지만 잇단 강력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영철 사건이 처음 공개된 날도, 이학만이 경관을 찌르고 달아난 날도, 경찰에 붙잡힌 날도 공교롭게 모두 일요일이었다. 경찰과 사건기자들은 일요일도 방심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을까. 어째 이 글을 쓰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일요일이기 때문일까. 간혹 유영철 사건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곤 한다. 경찰 브리핑에는 유영철이 범행에 사용했던 5kg이 넘는 휴대용 해머가 공개됐다. 유영철이 경찰행세를 하며 사용한 위조 신분증과 수갑 등과 함께 공개된 증거물이었는데 그 해머 손잡이에 적힌 문구가 아직도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Shockless Noiseless Reboundless」 모쪼록 우리 사회에 유영철·이학만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아무 충격 없이, 조용히, 별다른 반향 없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 아니면 사건기자로서 한번 겪어봄 직한 「大魚」와 마주쳤다는 직업 의식 탓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음날 아침 연합뉴스 경찰팀 전원이 역할을 나눠 세기의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부유층 노인들 외에 11명의 출장마사지 여성들이 잔혹하게 토막살해돼 암매장됐다는 경찰 브리핑을 시점으로 각 언론사 사건기자들은 수사본부가 차려진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 진을 치고 열띤 취재 경쟁에 들어갔다. 현장검증과 유의 거주지, 유가 졸업한 학교, 피해자 가족 등 취재 가능한 모든 대상에 대해 전 언론사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경찰이 유의 신병을 꼭꼭 숨겨두고 조사 현장을 철저히 통제하는 바람에 각 언론사는 피해자 주변 인물 등 외곽 취재에 의존해야 했고 그럴수록 기사는 경찰과 유의 입만 좇는 형국이 돼 버렸다. 그런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한동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팩트(事實·fact)로만 승부해야될 기사인데, 그 기사를 쓰는 필자 자신이 기사의 내용을 쉽게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장마사지 여성을 불러내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잘게 토막내는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10여 차례나 계속한 엽기적인 사건이 대한민국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의 시나리오라면 모를까. 유영철이 1주일 넘게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된 뒤에야 사건기자들은 한숨 덜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기자들의 여름은 유씨 사건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8월 1일 밤, 이번에는 폭행용의자를 쫓는 경찰관 2명이 용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공권력이 무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경관살해범 이학만은 사건 현장을 빠져나와 1주일간 도주 행각을 벌였다. 경찰은 동료를 잃은 슬픔을 달래며 이학만 검거에 전력을 다했고 기자들도 경찰의 수사 진행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서울의 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찜통더위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이학만은 1주일만에 검거됐고 유영철 만큼의 후폭풍은 없었다. 자연히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져 갔다. 열대야는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고 낮 최고 기온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올 여름 「10년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떨쳤지만 잇단 강력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영철 사건이 처음 공개된 날도, 이학만이 경관을 찌르고 달아난 날도, 경찰에 붙잡힌 날도 공교롭게 모두 일요일이었다. 경찰과 사건기자들은 일요일도 방심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을까. 어째 이 글을 쓰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일요일이기 때문일까. 간혹 유영철 사건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곤 한다. 경찰 브리핑에는 유영철이 범행에 사용했던 5kg이 넘는 휴대용 해머가 공개됐다. 유영철이 경찰행세를 하며 사용한 위조 신분증과 수갑 등과 함께 공개된 증거물이었는데 그 해머 손잡이에 적힌 문구가 아직도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Shockless Noiseless Reboundless」 모쪼록 우리 사회에 유영철·이학만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아무 충격 없이, 조용히, 별다른 반향 없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