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호 2012년 9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전통예찬

나는 북촌한옥마을에 산다.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한옥에 살고 있으니 최첨단 컴퓨터 엔터 치는 소리와 `삐∼이걱' 대문 여는 소리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어떻게 두 소리를 듣고 사는가? 2004년 내 남편은 갔다. 연하의 남자, 펄펄한 남편 가고 나니 그 충격으로 바닥을 헤맨다. 젖은 짚단 태우던 나날. “나교수, 전통을 해 보세요.” 서울대 미대 은사님이신 梁承椿교수님께서 권고하신다. 이 말씀 한마디는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우윳값도 없었던 이혼녀 조앤 롤링이 “내려갈 데까지 내려가니 이제 올라갈 일만 있었다”고 말하더니 아,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있겠구나. 전통이 끌고 가겠구나! 소목, 대목, 소반, 옻칠, 황칠, 장석을 배우러 다녔다. 배우기만 하면 뭐하나? 뜻을 펴야지. 배우고 익히고 즐기는 체험장을 마련하자. 한옥을 2채(봉산재, 서로재) 마련했다. 전통문화최고위과정 4기, 나성숙옻칠학교 11기를 배출했다. 언제 연분홍치마 휘날리는지 마른 잎 구르는지 모르게 살았다.
처음 한옥 사러 다닐 때는 쥐덫 걸려 있던 철물점도 있었고 연탄재도 나와 있어 30년전 영화세트장 같던 북촌이 연 22만명 관광객 몰려오고 공방도 30여 개. 게스트하우스도 50여 곳으로 변했다. `쨍'하고 해 뜰 날이다. 물론 한옥도 많이 올랐다. 모두들 재테크 잘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이미 가져갈 것도 아니니까.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전통을 알았다는 것, 죽기 전까지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양냄새 물씬 나고 뉴욕에 어울리는 여자가 우리 전통과 행복하게 살아왔고 또한 살아갈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마음이 평안하다. 동양사상은 조화와 상생의 논리다. 서양은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라 했지만, 동양은 인간이 자연 일부일 뿐이다. 태어나고 죽고 또다시 태어남이 자연 일부분이고 함께 살고 나누고 베풀다 간다. 마음이 평안하다.
둘째, 웰빙. 5천년 동안 살아남은 전통은 이미 검증돼 인체에 유익하다. 김치가 그렇고 한옥이 그렇다. `6H'인 한옥, 한복, 한식, 한지, 한글, 한국음악은 `우리 것은 참 좋은 것이야'를 외치고 있다. 아니 외칠 필요도 없다. 겪어보면 다 아니까.
셋째, 미래지향적이다. 전 세계 하드웨어는 결국 모두 같아진다. 자동차, 컴퓨터는 공통이 될 것이다. 차별화는 전통뿐이다. 내용이 있다. 인쇄술과 석탄의 1차 산업시대, 전기와 석유의 2차 산업시대, 이제 3차 시대는 무엇이 오겠는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낮에는 벅적대던 길거리 집 봉산재, 한밤에 조용히 앉아 옻칠한다. 단순 노동의 시간. 간디의 물레질이다. 옻칠로 소반 하나 만들려면 20단계 과정을 넘는다. 초 칠하기, 귀잡이, 사포 치기, 골회 바르기, 나전 붙이기, 인두 지지기, 중 칠하기, 사포 치기, 흑 칠하기, 나전 깎기, 상 칠하기, 광내기 등을 반복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략해도 20단계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며 얼마나 정이 들겠는가? 대부분의 전통은 기계화가 안 되니 손으로 한다. 그 손길은 다시 인간에게 작용한다. 관계를 순화시키고 깊이를 준다. 우리 집에는 공부하러 온 학생들, 천연 옻칠 웰빙으로 만들어 주변에 선물한다고 만들었다가 정작 완성되면 “주기 아까워요. 못 주겠어요.”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퍼붓고 나니 주기 싫은 것이다. 나는 읽는다. 그들의 마음을…. 내가 소유한 추억, 투자한 시간, 흘렀던 공간의 흐름은 내 것이다. 내가 네 이름 불러주어 드디어 꽃이 됐다는 시 한 소절, 나와의 인연은 내 몸의 한 부분이 됐고 살아 움직인다. 대체와 이전이 불가능하다. 전통이다.
겨우 사는 인생 길어봤자 1백년, All we are is a dust in the wind! 무엇이 남겠는가? 마음이 평안해지고 인체에 유익하고 앞으로 경쟁력으로 남을 것은 전통뿐이다. 내 손길 간 정은 더욱더 깊게 파고든다. 오늘도 옻칠하고 있는데 `삐∼이걱' 대문 소리가 들린다. 복이 들어오는구나. 여러분도 복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