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14호 2012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존경하는 해리 애먼 교수님!




 참 오랜만에 교수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1988년 제가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식 못 올렸으니 24년 만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

 교수님, 올해 100세가 되셨지요? 어쩌면 말씀하며 추억에 잠기던 사랑하는 어머님 곁에 계신지요?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1985년 가을 학기였습니다. 따져보니 만 27년 세월이 흘렀군요.

 교수님께선 南일리노이대에서 1950년부터 미국역사를 가르치고, 오스트리아와 버지니아대에서도 1968∼1969년 교환교수를 하셨지요.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서양사학과에서 두 학기 강의를 하셨을 때 교수님께 `미국사 특강' 등을 수강했지요. 잘 들리지 않는 영어에 매주 쏟아지는 리포트 제출하느라 조금 고생했지만 이후 제게 큰 도움이 된 것,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역작 `제임스 먼로 생애와 미국 정체성 연구'를 제게 주시며 써주신 글을 오늘 아침 다시 읽어봅니다.

 “For Sang-ki, My friend and student with many wishes for the future study of history. Harry Ammon.”

 교수님께서 머물던 당시 한국사회는, 특히 대학사회는 민주화 요구 시위와 최루탄 가스가 연일 하늘을 뒤덮었지요. 매운 최루가스로 괴로워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쿠바 출신 우고씨와 함께 신반포아파트에서 출퇴근하던 교수님은 제게 한국의 정치상황과 학생운동 등에 대해 자주 묻곤 하셨죠. 짧은 영어로 제 눈높이 정도의 설명밖에 못 드렸지만, 교수님께선 “한국이 민주화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학생들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교수님이 한국을 떠나신 꼭 1년 뒤, 그러니까 1987년 6월 마침내 이 땅에 민주주의의 서광이 비쳤습니다. 교수님의 예언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그 후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면에서 세계가 주목할 만큼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은 교수님께 자랑해도 되겠지요?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은 한국에 계셨을 때와 비교하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요.

 올림픽, 월드컵, G20정상회의 등 국제행사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교수님께서 늘 걱정하시던 남북한 관계도 지금은 정체된 상태이긴 하지만, 정상들이 두 차례 회담을 가졌지요. 행정부는 20년째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이끌며 완전한 문민통치가 이뤄졌고요. 당시 서양사학과에서 러시아사를 가르치신 李仁浩교수님께선 여성 최초로 駐핀란드 대사와 러시아 대사를 역임하셨지요.

 60대 후반의 교수님께서 1년간 열정을 바치신 서울대도 학문이나 인적자원 등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시 캠퍼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외국유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은 또 어떻고요. 존경하는 애먼 교수님. 이 가을, 교수님과 27년 만에 다시 서울대 교정을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