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13호 2012년 8월] 문화 꽁트

오마르   



 몇 년 전에 나는 석 달가량 프랑스 파리에 머문 적이 있었다. 파리의 만국 기숙사촌이라는 곳의 영국관에 방을 하나 얻게 됐는데,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에 마침내 내 방에 혼자 남게 됐을 때, 갑작스레 막막함이 밀려들었다.

 그날 밤 꽤 늦은 시각에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하고 물었다.

 “알로?”

 그러나 한동안 응답이 없었고, 내가 다시 “여보세요?” 하고 묻자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오마르?”

 여자는 오마르라는 남자를 찾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는 이곳에 없고, 오늘부터 내가 이 방에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깊은 울림이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낮고 조용하게 다시 울렸다.

 “오마르?”

 내가 같은 말을 반복하자 다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여자는 내게 오마르와 통화할 수 없냐고 물었다. 내가 세 번째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자, 그녀는 그럼 오마르는 어디로 갔느냐고 되물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프랑스어 발음이었다.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는지 곧 뚜뚜 하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선뜻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너무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어서 오히려 슬픔이나 절망의 기이한 여운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시구를 읊조리듯 `오마르?'하고 물어올 듯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구내식당에서 유학생으로 보이는 한 한국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식당 한쪽 구석에 앉아 초조해하는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사십대 중반의 한 프랑스 남자가 바싹 붙어 앉아 뭐라고 말을 붙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젊은 한국인 유학생은 반가운 기색을 보였고, 반면에 그 옆의 프랑스 남자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곧 셋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 유학생이 아직 프랑스어가 미숙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프랑스 남자가 선의를 가지고 그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프랑스 남자는 어딘가 미심쩍었다. 내가 짧은 프랑스어 실력으로나마 그에게 신분이 뭐냐고 캐묻자, 그는 불쾌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는 벌떡 일어나 식당을 나가버렸다. 나는 유학생과 함께 식사하고서, 낯선 외국 남자의 호의를 순진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를 한 뒤 그와 헤어졌다.

 그날 밤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끼 에 라?”

 내가 누구냐고 묻자 문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울렸다.

 “오마르?”

 낮게 울리는, 한밤중에 들려오는 노래의 한 소절과도 같은 그 소리에 나는 한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잠시 후 문을 열자 히잡으로 머리를 가린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다시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마르를 찾는다고 말했다. 비로소 나는 오마르가 아랍계 이름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로서는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오마르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고, 나는 오마르를 만난 적도 없다고 네 번째로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힐끔거렸고,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서 안을 볼 수 있게 해줬다. 그녀는 고개를 한 번 길게 뽑았다가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는 눈 주위에 다크 서클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 나서 고맙다는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천천히 복도를 따라 내게서 멀어져 갔다.

 며칠 후, 나는 같은 동에 사는 한국인 화가와 현관에서 마주쳤다. 그는 사십대 후반의 나이였는데, 기숙사촌에서 지내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일주일에 서너 번 밤 외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번은 그와 식당에서 함께 식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자신의 특별한 취미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밤 열 시쯤에 포르트 도를레앙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밤거리를 산책할 겸해 그곳까지 걸어가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때로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지만 그 점은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술에 취한 서구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게 자신의 작품 활동에 적잖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어느 날 한국인들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그 화가의 밤 산책이 화제에 올랐을 때,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그 자리가 끝난 뒤에야 나는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안식년 휴가를 받아서 파리에 나와 있는 한국인 교수 한 사람이 화가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실 화가는 밤에 여자를 낚으러 가는 것이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가리지 않고, 술에 취한 모든 여자가 그의 사냥감이었다. 그는 특히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여자들을 자기 방으로 데려오곤 했는데, 한 번은 여자가 아침에 깨어나 그에게 공격을 가해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다. 또 한 번은 동침한 여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성행위를 문제 삼는 바람에 파출소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내기도 했다. 한국인 교수는 다소 진부하게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마쳤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랑보다 섹스가 더 절실한가 봅니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화가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연한 초록색 상의에 베이지색 셔츠를 걸치고 있었는데, 깔끔하고 정갈한 인상을 연출한 기색이 역력했다.

 화가가 악수를 한 뒤 나를 지나치려 할 때, 내가 물었다.

 “혹시 오늘 나도 데려가 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화가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는 큰길로 나가서 나란히 걸으며 내 귀에 대고 은밀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남들이 자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나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호젓이 밤 외출을 하고 적절한 자리에서 사람들과 교제를 하고 기회가 되면 사랑도 할 뿐, 무리하게 뭔가를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때로 오해가 생기고 갈등도 벌어지지만, 그건 이미 밤 외출을 나설 때 감수해야 하는 사항들일 뿐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포르트 도를레앙에 있는 한 카페의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았다. 내가 포도주를 시키자 얼마 후에 웨이터는 포도주 한 잔과 함께 붉은색 칵테일을 가져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술을 마시느냐며 놀라는 시늉을 하자, 그는 그냥 보기 좋아하라고 챙기는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간간이 여자들만 있는 자리를 골라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에 두어 팀은 그에게 그저 다정한 답례를 보냈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마침내 세 여자가 우리와 합석했다. 화가가 그들을 위해 백포도주 한 병을 주문했는데, 그때 이미 나는 온몸이 술기운으로 축 처져 있었다. 화가가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자, 내 옆자리의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술 취한 눈동자 위에 술 취한 내 모습이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때 한 낯익은 젊은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내가 기숙사 구내식당에서 동성애자의 마수로부터 구해 낸 바로 그 젊은 유학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뒤로 그때의 그 프랑스인 동성애자가 바싹 붙어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한 채 구석 자리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프랑스 사내가 술을 주문하고는 유학생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그는 주위를 살피며 멋쩍은 미소를 슬쩍 지어 보였다.

 내 맞은편에서는 화가가 반쯤 부서진 프랑스어로 열을 올려 말하면서 갑자기 현란한 제스처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취기가 솟구쳐 올라서 눈앞이 어지러웠다.

 문득 식당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청색 타일, 그 위에 그려진 아라베스크 문양이 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프랑스 남자와 잔을 부딪치는 젊은 유학생을 바라보다가 화가 쪽으로 눈을 돌린다. 나는 이 세상의 이토록 다양한 사랑의 삽화들 앞에서 다시 눈앞이 가물가물해진다. 나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빙글빙글 돌아가며 아라베스크 문양을 이룬다.

 내 옆의 여자가 내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뛰 따뻴르 꼬멍?”

 나는 가급적 깊은 울림을 일으키기 위해 애쓰며 대답한다.

 “오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