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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2012년 7월] 문화 꽁트

孫 廷 模(대학원83 - 85)




 해상을 뒤덮으며 쉴 새 없이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벌써 3시간째다. 이어도 암초 위에 세운 과학기지도 괴물 형상으로 변했다. 이어도 남서 해상 50km 부근에는 중국 군함들이 깔려 있다. 초계정 2척과 구축함 5척이 벌써 사흘째 버티고 있다.

 제주시의 해변 부근의 지하 실험실에서다. 33살의 동갑이며 같은 선임 연구원인 두 청년들이 얘기를 나눈다. 그들은 수시로 긴급하다면서 방송되는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근육질로 가다듬어진 탄탄한 몸매의 석호(姜碩浩)가 먼저 입을 연다.

“지금 이어도 남서쪽을 주시해 봐. 7척의 배가 사흘째 요지부동이라니 대단해. 아무래도 저러다가는 그들이 먼저 유도탄을 제주도로 발사하겠는걸.”

얼굴이 갸름하고 키가 더 큰 종수(張宗秀)가 곧바로 응답한다.

“왜 국가에서 해군기지를 제주에 설치하려 했는지 알 거야. 해군에서는 이번에 일체 무대응 자세로 나오니까 제주도민들이 난리잖아? 위기가 닥쳤는데도 해군에서는 도대체 뭘 하느냐고? 어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제주도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인 줄 누가 모르겠어? 중국 군함들이 포문을 열고 벌려 섰는데도 왜 무방비 상태냐고?”

둘은 이내 거대한 덩치의 탄성파 발진기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이어도의 경우에는 해수면으로부터 15km 아래까지의 지역이 지각(地殼)이다. 그 아래 영역은 맨틀이라 불린다. 이어도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이면서 지하 10∼30km 지역. 여기를 탄성파로 암석들을 녹여 암장(巖漿 : magma)으로 만들려고 한다. 암장이 생기면 압력이 얕은 곳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 수중에서는 이미 준설 작업을 마쳤다. 이어도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의 수중에 시추공(試錐孔)을 뚫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극비리에 진행된 작업이었다. 무려 3개월에 걸쳐 해저에서 1km에 달하는 깊이를 뚫은 거였다. 한반도를 지나는 위성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은 터다. 그들이 사진 촬영을 했다 치더라도 정보가 노출되지 않을 정도다. 이어도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의 지하. 여기에 암장이 생기기만 하면 곧바로 분출되게 마련이다.

 시추공은 신소재인 내열성 플라스틱으로 벽면을 에워싼 상태다. 무려 1km 깊이까지 충실히 잘 이뤄진 터다. 해군에서는 이 지역만을 원거리에서 감시하는 정도다. 절대로 중국 쪽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중국이 터무니없는 도발의 핑계를 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막을 모르는 정치인들과 학자들 및 일반인들이 인터넷에서 분노를 내뿜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무엇하느냐고? 해군이 망설이면 공군이나 특전사도 있을 텐데 왜 대책이 없느냐고?

석호가 종수를 바라보며 작업을 확인한다. 지하 40km까지의 암석 구조를 선명하게 알려주는 지하 탐지기. 수시로 섬광을 발하며 지하의 암반 구조를 높이별로 찾아 보여준다. 시추공 하부 지각 2km 두께의 암석이 용융한 상태다. 용융이란 고체가 열을 받아 액체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둘은 눈빛으로 서로 확인한다. 발진기로 고주파 탄성파를 연거푸 쏘아 충격파를 만들어야 한다. 충격파가 만들어져야만 목적한 깊이에서 암석들을 용융시킬 수 있다. 둘은 정신을 집중시켜 부단히 충격파를 해저 암석으로 내보낸다.

폭설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이어도 앞 바다를 하얗게 뒤덮는다. 중국 7개 군함들로부터 한국어 방송이 터져 나온다. 아마도 조선족 여인을 시켜 방송을 하는 듯하다.

“한국 정부는 대답하라. 3일째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밝혀라. 3시간의 여유를 주겠다. 그러고도 응답이 없으면 불법 건축물인 과학기지를 폭파시키겠다. 거듭 한국 정부에게 통보한다. 한국은 성의 있는 자세로 응답해 주기 바란다. 그러고도 반응이 없다면 모든 책임은 한국 정부에게 있음을 통보한다.”

작업을 하는 틈틈이 뉴스 화면을 석호와 종수가 바라본다.

바로 이때다. 지하 실험실로 해군 대령과 소장이 들어선다. 대령과 소장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다부지게 생긴 대령이 곧바로 입을 연다.

“연구원님들, 바깥 사정이 어떻다는 것은 아실 텐데 왜 조용하죠? 잠시 후면 과학기지가 불바다가 될 텐데도 늑장을 부려요? 너무 무관심한…”

 석호가 격분해 말을 잘라 버리고 말한다.

 “말이면 다 말인 줄 알아요? 우리한테 자신이 있으니까 만사를 다 맡기라 했잖아요? 같은 국록을 먹는 처지에 말 좀 가려서 합시다.”

자칫하면 둘이 엉겨 붙어 드잡이까지 치를 형세다. 종수가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소장을 향해 차분하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화를 내는 건 다 같은 이유잖아요? 누가 국가를 위해 더 책임지는 행동을 하느냐가 아니겠어요? 상황을 설명드릴게요.”

영사막에 비친 해저 15km 지점을 루비 전등으로 조명하며 설명한다. 암장의 두께가 3km에 이르렀다고 들려준다. 잠시 후면 암장이 치솟아 오르면서 불기둥을 내뿜을 거라고 일러준다. 종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원탁을 후려치는 소리가 두 차례나 크게 들린다. 그러면서 대령과 소장이 일어나 치를 떨며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석호와 종수가 뉴스 화면을 흘깃 바라볼 때다. 마침내 중국 군함에서 발포를 시작했다. 간단히 미사일 두 방으로 과학기지 건물이 수장돼 버린다.

대령이 치를 떨며 석호를 향해 고함을 내지른다.

“대체 뭐하는 게 연구원이야? 지금 과학기지가 박살난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어? 그러고도 과학자야?”

석호도 화가 치밀어 올라 냅다 고함을 쳐댄다.

 “애국자 아닌 놈이 누가 있어? 꼭 티를 내려는 놈들이 있다니까? 나도 특전사 장교 출신이야. 상황 판단을 좀 하란 말이다!”

 석호가 주먹을 쥐며 눈을 치뜨자 순식간에 살기(殺氣)마저 감돈다. 실험실 공간에 피바람을 몰 듯한 섬뜩한 냉기가 드리워진다. 종수가 석호를 달랜다. 왜 같이 덩달아 화를 내느냐고. 제발 좀 참으라고 말린다.

바로 이때다. 화를 내던 석호가 느닷없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이야앗! 마침내 터졌어. 터졌다구!”

 일행이 일제히 탐지기에 연결된 대형 영사막을 바라본다. 지하 15km 지점에서부터 상층부로 마침내 암장이 분출되고 있다. 3개월간 시추공을 뚫은 지점을 향해서였다. 벌건 암장이 돌출하자마자 이내 이어도와 제주도를 향해 퍼져 나간다. 종수뿐만 아니라 대령과 소장도 일제히 놀란 표정으로 영사막을 지켜본다. 바닷물조차 암장 근처에서는 순식간에 증발해 수증기로 변해 버린다.

 이때다. 국방부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종수가 전화를 받으며 설명한다.

“암장은 이어도와 제주도 남서 해안까지 밀려나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전의 수중 암초로서의 이어도를 잊게 되겠죠. 하지만 이어도에서 제주도까지 연결된 새로운 섬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국방부에 이어서 해군사령부에서도 전화가 걸려온다. 석호가 전화를 받으며 상황을 설명한 뒤에 소장을 바꿔 준다. 무슨 말이 있었는지 통화가 끝난 직후다. 소장과 대령이 일제히 석호와 종수를 향해 달려든다. 그러더니 소장은 석호와 대령은 종수와 포옹을 하며 기뻐한다. 정말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해 주었다고. 기쁨에 취해 있다가 떨어지면서 소장이 일행에게 말한다. 중국 군함들은 과학기지가 파괴되자마자 출격한 세종대왕함의 유도탄에 격침됐다고 들려준다. 소장의 말이 이어진다.

“과학기지를 무단으로 파괴한 죄 값은 치러야 되지 않겠어요?”

일행의 대답이 동시에 터진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사흘 뒤다. 폭설도 이미 멎은 뒤다. 하늘은 쾌청하고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낸 화산의 모습이 웅장하다. 이어도에서 제주도까지의 149km의 바다가 새로 치솟은 화산으로 연결된 터다. 제주 남서부에 대해서는 사전부터 주민들을 대피시켰던 터다. 그러기에 제주도 주민들 중의 어느 누구도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주도의 면적이 더 늘어난 기쁨에 축제 분위기다.

전국의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아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친다. 이미 청와대에서는 전용기로 현장을 순회하고 돌아간 상태다. 오전 10시를 기해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다.

“이제 한국은 잠자는 대륙마저 뒤흔들 만한 강국이 됐습니다. 핵무기보다 강한 게 있음을 잘 보여준 계기가 됐다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대한민국이 영원히 번창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뉴스를 듣는 거리마다 환호(歡呼)와 탄성(歎聲)이 폭죽처럼 터져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