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호 2012년 7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Be free where you are!

`어디에 있든 자유로우라'
존경하는 틱낫한 스님의 저서이다. 불교경전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명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맥이 닿는다.
대저 정신의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의 두뇌 속은 늘 소란스럽다. 세상의 소음과 내면의 이기적 욕망이 소란스러움의 주범이다. 이 소란의 주범을 단속하고 쾌적한 자유, 참된 공존적 평화로 회귀하는 방안은 없는가? 나는 늘 관용성(tolerance)을 사유한다. 열린 사고, 서로 다를 수 있음에 대한 유쾌한 승인, 분노보다 화해의 효율성에 대한 통찰…. 결국은 열린 지성이 우리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지성이란 개방적 사고의 다른 이름이다. 편협함으로 마음을 가두면 어디 있든지 부자유하다.
목하, 대한민국의 2012년경의 세월은 소란스럽다. 밖이 우리를 보는 눈은 경이인데 안에서 우리가 자가투쟁하는 모습은 살벌하다. 정책이 가치로 판단되기보다 패거리로 결판난다든지, 대치하는 세력 간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는 모습이다. 모두가 안타깝게 느끼면서도 돌파구가 없다.
이쯤에서 고개를 들어 우리의 글로벌 위상을 돌아본다. 인류역사상 최단시간 내에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뤄낸 나라의 역동성은 도처에 분출되고 있다. 혼란스러운 세계 경제 상황 속에도 선전하고 있는 우리기업들은 장하다. 세계 최강 미국의 자존심 애플과 한치도 꿀리지 않고 대결하는 삼성전자는 물론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반도체, 건설 등에서 미·독·일의 강적들과 치열한 승부를 겨루고 있는 우리 대기업들의 활약과 수많은 중소 강기업들이 지독한 노력으로 세계도처에서 경쟁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은 감동적 스토리이다.
한류가 동양을 제패하고 서양문화의 본고장에 도전하며, 다양한 국제사회에서 걸출한 한국인들이 리더로 활약하는 건 다 우리의 자부심이다. 이쯤되는 나라가 내부적으로 대립과 모순에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다면 이것은 좀 안타까운 일이다. 가치판단과 이를 구현하는 정책에 대한 대결은 역사 발전의 동력이므로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문제는 흑백논리요, 정책적 오버요, 정치의식의 양극화이다. 우리 사회는 특히 정치적으로 다른 꼴을 수용하지 못한다.
동서고금에 보수니 진보니, 좌우니 하는 것은 정치의 본령이고 권력 투쟁하는 집단(정당)의 존재명분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정말 중요한 건 보수꼴통이니 좌파빨갱이니 하는 매도의 언어를 지양하고, 좀 더 세련된 가치논쟁의 실질국면으로 우리의 정치의식이 발전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 서울대인의 지적 선도성이 요구된다고 주창한다면 이는 너무 순진한 건가? 서울대는 피할 수 없이 우리들의 자부심이며 이 땅의 지성의 보루이다. 그 어느 분야에서 삶의 열정을 태우고 있든지, 우리가 서울대인의 이름으로 숙고해야 하는 것은 지성적 통찰과 역사성이 깃든 국가관이다. 민족의 중심축에서, 동서와 남북의 한가운데에서, 갈등과 반목의 조류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지성이 어떻게 유용해지는지를 숙고해보고 싶다.
우리가 어디에 있건 편견과 독선,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구속되지 말고, 지성적 톨레랑스의 범위를 확대해 사회가 전반적으로 좀 더 지적 공간, 개방적 논쟁의 장이 되도록 우리들 서울대인의 지성이 그 사명을 다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로 다름에 대한 지독한 거부감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지성적 개념이 판치는 의식환경을 조성하는데 앞장서자는 것이다.
과연 서울대에서 수학한 자는 개념의 수준이 다르며 언어의 순도가 다르다는 평을 들을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우리의 자부심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