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호 2012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고려인들이 조국을 느끼게 하자

`코리안 드림'의 희망을 안고 조국을 찾는 CIS(독립국가연합)거주 고려인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안산 `땟골' 일대에 3년 전부터 고려인 5천명이 밀집 거주하는 고려인촌이 형성되는가 하면 전국의 공단, 건설현장, 하우스 농장 등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고려인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현재 한국에 취업 중인 고려인은 총 1만여 명을 헤아린다. 그중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 7천7백여 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러시아 고려인 2천1백여 명, 카자흐스탄 고려인 5백여 명, 키르기스스탄 고려인 1백70여 명 순이다. 우크라이나와 타지키스탄에서 온 고려인도 50여 명에 이른다. 취업자 1명 당 가족을 4명으로 칠 때 CIS 고려인 50여 만 가운데 8%인 4만명이 한국 취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랜 기간 조국과 유리된 삶을 산 고려인들은 겉모습만 韓人이지 의식은 대부분 러시아화돼 있다. 민족정체성과 관련한 질문에 그들의 75%는 자신을 `한민족'이라고 답하지만 “어느 언어로 사고하느냐”는 질문에는 80%가 “러시아어로 생각한다”고 응답한다. “한국어로 생각한다”는 답변은 14%에 불과하다.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이후 고려인은 모국어를 잃은 디아스포라(Diaspora)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에 대해 역사도 문화도 모르는 그들은 춘향전이나 홍길동보다 중앙아시아 구전문학이나 그림 형제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다. 고려인들은 한반도의 한인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고려인을 `신종 유라시아인'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고려인과 `역사적 조국' 한국의 만남, 특히 수년 전부터 활성화된 고려인의 한국 취업은 이러한 고려인의 민족정체성 회복에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 고려인이 방문취업 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오면 최소한 3년은 체류할 수 있으니, 조국을 배우고 조국의 氣를 받는 데 이처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호기가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산의 중소공장에서 일하는 고려인들은 보통 한 달에 이틀 정도 쉬고 매일 출근한다.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평균 1백20만∼1백60만원. 그중 50∼60만원을 가족에게 송금하고 자신들은 월세 25만원짜리 쪽방에서 자취를 하며 빠듯한 삶을 산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에 부대끼고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쪽방촌에서 지내다가 3년 후 돌아가는 게 그들의 시간표다. 잠시 짬을 내어 조국의 역사가 숨쉬는 고궁이나 조국의 발전상을 말해주는 서울의 화려한 야경을 돌아보기란 이들에게 `그림의 떡'이자 `사치'이다.
고려인 취업자들의 메마른 조국생활을 의미 있게 가꿔줄 필요가 있다. 우선 다양한 조국체험 프로그램, 예컨대 한글 익히기, 한국역사 배우기, 문화탐방행사 등을 정부사업으로 벌였으면 좋겠다. `고려인의 날'을 제정하고 거리축제를 벌여 조국이 외면했던 그들을 격려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국 속의 고려인들'이 여기가 타국이 아니라 오매불망 그리던 자랑스러운 조국이라고 느낀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