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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2012년 6월] 문화 꽁트

너 구 리 - 禹 漢 鎔(국어교육68 - 75)



 스승의 날이었다. 아침부터 전화가 울렸다. 칠갑산에 내려가 사는 변태민이 틀림없었다. 여자 구하는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 재촉이 불같더니, 스승의 날은 꼭 약속을 지키라고 채근을 거듭한 끝이었다. 강의가 있는 날이라서 좀 그렇다고 멈칫거리고 있는데, 변태민은 스승의 날에 대한 의미를 달리 붙였다.

 “스승의 날, 스승 대접을 받으려면 하루 강의 제켜두소. 선생 없는 빈 강의실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스승 귀한 줄을 깨달아. 몸값 올리라구.”

 하긴 오래 끌 일이 아니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타고난 분지복에 따라 결정될 일이지 싶었다. 구선정 여사를 데리고 칠갑산을 찾아가기로 했다. 개를 기르는 것이 아이들 정서교육에 도움이 된다면서 손주 돌날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갔다가 알게 된 인물이었다.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50대 여성이었다. 애완견을 다루는 솜씨를 보고는 아내가 감탄을 했다.

 “남편한테도 그렇게 나긋나긋 뼈가 녹게 잘 하시겠수.”

 “남편? 그런 거 있는 여자가 왜 이딴 천덕꾸러기 일을 하겠어요?”

 뜻밖이었다. 저렇게 수려한 얼굴에 착착 안겨오는 말씨하며, 친절미 넘치는 태도에 남편이 없다니, 세상에 인연이 안 닿으면 저렇기도 한가 싶었다.

 “좋은 사람 천거해 볼까요? 특별히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개 안 하는, 튼튼한 남자면 돼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변태민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산짐승을 잡아먹는 인간이 저런 여자 남편될 자격이 있는지 여러 모로 생각을 해 보았다.

 변태민이 전화질을 시작한 것은 일 년 전이었다. 상배를 당한 뒤 49제 직후였다. 49제를 그는 천도제라 했다. 애들 면목도 있고 하니 친구로서, 천도제에 꼭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콩밭 매는 아낙네'로 유명한 칠갑산 장곡사에서 천도제를 올린다고 했다.

 “천도제라면 가족끼리 하는 행사 아닌가?”

 “거 참, 외로워서 그러누만.”

 “외롭다? 당신 나이가 몇인데, 회갑 다 돼 가지고, 아직 외로움을 타?”

 “연박사는 몰라, 아니 내 외로움은 아무도 몰라.”

 그런 이야기 끝에 외로움 타령이 이어졌다.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복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지만, 존재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한 열정과도 같은 것이고, 나이와도 상관이 없고 남녀 성별이랑도 아무 연관이 없는 일이라 했다. 듣기 좀 황당한 것은 그런 외로움이 형이상학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인 육체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살을 맞부비면서 지내던 아내가 사라진 자리를, 추억이나 막연한 소망으로 채울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자가, 육체를 가진 여자, 속살 고운 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여튼, 하루 내려오소, 내가 기막힌 걸로 대접을 할 테니 말요.”

 기막힌 걸로 대접을 한다는 게 뭔지, 그게 꼭 49제 날이라야 할 이유가 무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옥조기 시작했다.

 “어딜 그렇게 서둘러요?”

 “칠갑산 친구, 그 너구리가, 외롭대나 고독하다나…”

 “몰라요, 냉장고에다가, 까불지마라 그렇게 써 붙일 거니까.”

 헛헛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젠가 친구들한테 들었다고 한다. 밖에 나가는 아내가 집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는 경고, 조심할 행동지침 목록이라고 했다.

 아내를 대동하기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 차를 몰고 출발했다. 장곡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에 심어 가꾼 벚꽃은 이제 꽃눈이 통통하게 부풀기 시작하고, 마을 집들 마당에 그리고 밭 가장자리에 산수유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이 만우절이었다. 상배를 알려와 문상을 다녀온 것이 2월 10일 경이었으니 대개 셈이 그렇게 되겠다 싶었다. 사람은 가고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이려니, 코끝에 알키한 기운이 어렸다.

 천도제가 끝나고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변태민은 두 아들 내외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원자력공학을 공부해서 어느 연구소에 일한다고 했다. 작은아들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대학에 자리를 잡아 생활한다고 했다. 며느리들은 모두 머리가 노랗고 피부가 말끔한 서양 미인들이었다. 천도제를 위해 일시 귀국했다고 했다.

 “저것들 돌아가면, 나만 덩그렇게 혼자 남아.”

 “그래서 외롭다는 건가?”

 “우리 자리를 옮기세.”

 “절밥도 정갈하고 맛있는데, 식구들이랑 같이 먹지 그러나?”

 “연박사가 왔는데, 친구가 찾아왔는데… 그럴 수야.”

 식구들과 번잡스럽게 함께 어울릴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한 가닥 진정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연박사는 문득 `기막힌 거'라는 게 뭔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못 이기는 척 함께 일어났다. `칠갑산보양탕'이라는 간판이 달린 식당은 해묵은 둥구나무 옆에 깔끔하게 지은 벽돌집이었다.

 노파라고 밖에는 달리 명칭을 달 수 없는 늙은이가 음식을 내왔다. 도자기 병에 술이 한 병 담겨 나왔다. 오지그릇에 담긴 탕은 뽀얀 국물 위에 기름기가 무지개처럼 떠돌아 먹음직했다. 술은 약간 노릿한 향이 감돌았으나 맛은 제법이었다.

 “하필 저런 늙은이 집엘?”

 “젊은 애들은 겁도 나고, 도무지 즘생을 다룰 줄을 알아야지.”

 전에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이고 술이었다. 오소리 뼈로 담근 술이고, 탕은 너구리탕이라고 했다. 너구리를 먹는다면 개를 먹을 것은 명약관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참한 여자가 있기는 한데, 개를 먹는 인간은 퇴짜를 놓는단 말이지.”

 변태민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산짐승처럼 번득하고 이쪽을 쳐다봤다.

 “사실 말이지,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은, 미안한 얘기지만, 그놈들 덕이야.”

 학생 때 앓은 폐결핵이 재발해서 거의 몸이 망가질 즈음에 아내와 함께 칠갑산으로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들들은 외국에서 공부하느라고 어른들 보살필 여건이 아니었다고 했다. 변태민은 자기가 칠갑산에 와서 몸을 회복하고 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연치유라는 걸 생각했지. 말이 근사해서 자연치유니 내추럴 힐링이니 하지만, 사람이 짐승 한가지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네. 원리는 간단해. 먹이사슬 가운데로 내가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정글의 법칙에 따라 사는 거라.”

 요컨대,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잡아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잡아먹었다는 대목에서 들짐승처럼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으르렁거리는 시늉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잡았던 짐승들 이름을 죽 읊어댔다. 너구리, 오소리, 살가지, 담비, 수달 등을 비롯해서 청설모, 다람쥐, 고라니, 노루, 사슴, 멧돼지까지 그야말로 안 잡아먹은 게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짐승이 됐는지 시도 때도 없이 발정을 한단 말이네.”

 변태민은 사타구니를 틀어쥐고는, 노상 이렇다니까, 죽겠다구, 그러니 여자가 필요한 거구, 자네한테 부탁을 하는 것 아닌가. 날 좀 살려주게 하는 말은 처연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병이 나았으면, 짐승 잡아먹는 거부터 끊게나.”

 “내가 즘생 고기 끊으면 사람은 틀림없이 구해 줄라나?”

 “그렇게 해 봄세.”

 그렇게 약조가 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기견 보호소 구선정 여사를 대동하고 내려가는 길이었다. 아내는, 변태민씨가 정말 산짐승 먹는 것을 금했는지 확인하라는 이야기를 거듭 귀에 틀어넣었다.

 장곡사 대웅전에서 나란히 절을 올리라고 했다. 바람을 쐬다 갈 터이니, 둘이 먼저 내려가라 해 놓고는 절 뒤편 산자락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오월의 녹음 속에 꿩이 홰를 치며 푸덕푸덕 날아올랐다. 청설모가 소나무 사이를 건너뛰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돌맹이 사이에 발이 빠졌다. 눈에 불벼락이 쳤다. 발목이 낡은 덫에 걸렸다. 덫을 묶어 놓은 나무 둥지 주변에, 언제 그런 것인지 산짐승 털이 희끗희끗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