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호 2012년 5월] 문화 꽁트
나의 말, 당신의 삶 - 鄭 昭 延(사회복지01 - 09)


1. 결혼이주여성센터에서 한국어 선생 노릇을 할 적의 일이다. 결혼과 출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중매로 한국에 들어오는 결혼이주여성들은 결혼, 출산, 육아를 휘몰아치듯 경험하는데, 그 과정을 정리하고 돌아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 삶의 중요한 지점에 대해 한국어로 천천히 말해 볼 수 있도록 지도를 한다. 한국어여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경험을 한국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산을 경험한 학생들만 온 날을 골라 이 화제를 꺼냈다. 서른 중반에 한국에 와 딸을 둘 낳은 A씨가 입을 열었다.
“저 오래 걸렸어요. 스물여섯 시간 걸렸어요.”
“스물여섯 시간 걸렸어요? 우와, 아팠겠어요! 수술, 수술 안 했어요? 아팠어요? 무섭지 않아요?”
“수술 안 했어요. 낳고 나면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아기 보면, 다 잊어버려요. 엄마 사랑, 아기 낳기 전엔 몰라요. 나 태국에서 계속 몰랐어요. 나이 들어서도 몰랐어요. 아는 줄 알았는데 몰랐어요. 아기 낳고, 아기 품에 이렇게 안아요. 그때 알았어요. 너무 사랑해요. 너무 예뻐요. 그때 아, 엄마가 나 사랑해요, 알아요.”
A씨는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이 벌게지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는 모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다 온 독실한 통일교 신자다. 너무 오래 앉아 일해서 허리가 나갔다. 바깥 일로 바빠 끼니를 사 먹거나 언니가 가사를 맡았기에 요리는 전혀 할 줄 몰랐다.
그렇게 가족을 먹여 살리다가 한국에 와, 이런 저런 기대를 안고 지금의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한국에서 한 결혼식에는 시집 식구들 밖에 없었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노산이지만 자연분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스무 시간이 넘게 진통을 했고, 결국 병원을 옮겨가며 첫 아기를 낳았다. `한국에 오니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 주는 사람이 없어' 요리를 배웠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남편을 위해 날마다 아침상을 차린다. 아이들 간식도 준비한다. 가끔은 센터에 고향 살 적에도 하지 않았다던 태국 요리를 가지고 온다.
A씨는 자신의 경험을 태국어로 훨씬 더 잘 말할 수 있을 테고, 말해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몇 년을 살며 익힌 한국어로 정리한 그 경험은, 결국 목까지 올라온 수많은 말과 나로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깊은 감정들 가운데 언어의 장벽을 간신히 넘은 가장 절실하고 단순한 몇 마디의 반복이다.
2.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은 대략 1만5천∼2만 단어를 이해하고, 그 중에 3분의 1 정도를 자신의 발화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신약성경은 4천8백여 단어로 이뤄져 있고 셰익스피어는 2만1천 단어 정도를 사용했다. 조사된 작가 중 가장 어휘량이 풍부했던 빅토르 위고는 6만 단어를 `사용' 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은 6단계로 이뤄져 있다. 가장 초급인 1급의 기초 어휘는 8백개, 2급은 1천5백개에서 2천개다. 비교를 위해 덧붙이자면 한국 초등학생이 배우는 영어 기초 어휘가 9백개 정도이다.
한국에서 취업하려는 외국인들은 보통 3급 이상을 준비한다. 우리 센터의 학생은 1급부터 4급까지 다양한데, 살림하랴 일자리 구하랴 종종거리다 보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우리 센터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도 4급을 넘기 힘들다. 나는 지금까지 6급인 외국인을 딱 네 명 보았다. 모두 학교에서 만난 대학원생이었다.
한국어능력시험 3급 수업을 할 때 일이다. 기출문제 지문에 `아침 식사합니다'라는 문장이 나왔다. 식당의 광고지였다. 태국에서 온 B씨가 이 지문을 보고 “아침식사, 다른 말 있어요. 지, 조…?”라고 물었다.
“아, 조식이요?”
“네, 조식, 다른 밥도 있어요. 뭐라고 해요?”
나는 `조식·중식·석식·야식'을 쓰고 한자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인은 3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조식, 중식, 석식은 밥이지만 야식을 먹었을 때는 보통 밥을 먹었다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B씨가 말했다.
“저는 매일 야식 먹어요. 빵집, 새벽 세 시까지 가야 해서, 새벽 두 시에 밥 먹어요. 야식 안 먹으면 못 버텨요.”
B씨는 모국에서 초급대학을 졸업했다.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그렇듯, 그도 속아서 결혼했다. 남편의 사람됨도 시집의 사정도 결혼 전에 들었던 것과 달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과대광고나 거짓 정보에 대한 얄팍한 방패막인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조차 제정되기 전의 일이다.
B씨는 새벽에는 빵집에서 청소를, 밤에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한다. `∼지 않으면 못 버티다'는 B씨 수준의 한국어 학습자가 수업이나 교재로 배워 알 만한 표현이 아니다. 주방에서, 빵집에서 시급 오천 원을 받고 함께 일하는 한국인들에게서 들어 익혔으리라. 몸으로 그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이렇게 끼니는 말이 되고, 말은 어깨 결림이나 근육통처럼 부르튼 손과 부은 종아리에 철썩 달라붙는다.
3. 지금은 공장에 돈 벌러 가서 한국어 수업을 못 듣는 C씨는, 텔레비전에서 듣거나 주위에서 본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 문장으로 열심히 만들어 와서 시간이 날 때마다 물어보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질문에 잘 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모어-한국어 사전이 부실하고, 모어든 한국어든 C씨가 아는 어휘만 사용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C씨의 모국은 아직도 여성 문맹률이 높고, 많은 여성들이 초등교육도 다 받지 못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나라이다. 한번은 `긴박하다'는 단어를 찾아와, `급하다'와 다른 것 같은데 무슨 뜻인지 물었다. 경험 많은 소장님이 설명하셨다.
“남편이 화났어요. 욕해요. 소리쳐요. 이거 긴박하지 않아요. 남편이 화 너무 났어요. 칼로 찌르려고 해요. 이거 긴박해요.”
그래, 바로 그런 상황이 `긴박'하지. 다른 풀이에 `급하다'와의 차이를 모르겠다며 아리송해하던 C씨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전의 예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4. 얼마 전에는 우습고도 슬픈 해프닝이 있었다. 연애결혼을 했지만 예전 같지 않고 무심한 한국인 남편에게 서운해하던 D씨가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의 휴대폰으로 여자가 자꾸 문자를 보낸다며, 남편의 휴대폰에서 용케 몰래 옮겨 온 문자를 내밀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새해를 맞아 어쩌고저쩌고 미수금이 아직 입금되지 않았으니 빠른 시일 내에…”
이런, 남편이 D씨에게 보이지 않은 문자가 한두 통이 아니었다. D씨 남편은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D씨는 문자 내용이 다 돈 갚으라는 소리라는 설명에 머쓱해 하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너 그러지 말라고 핀잔을 주며 웃었다.
그러나 미수금 독촉 문자가 여러 통 올 때까지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남편, 아이를 둘이나 낳고 한국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미수금', `입금'이라는 한국어를 몰라 의기양양하게 오해하는 아내라는 현실 앞에서 웃음은 금세 빛이 바랜다. 겨우 수천 단어의 불완전한 외국어로 매개한 관계는 이해에 더 많은 인내와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나와 당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한 말과 노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5. 내가 처음 센터의 문을 두드렸을 때, 소장님은 지금까지 배운 사람만 가르쳐 본 배운 사람인 나에게 일 맡기기를 주저하셨다.
“이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말로 할 수 있는 만큼 쓸 수 있게 돼 다른 한국인들에게 보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수준까지 한국어를 배울 만한 여유가 있는 학생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노력해 보고, 정 선생님은 글을 쓰신다고 하니까, 혹시 언젠가 이 분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면…”
저 말줄임표 만큼의 정적을 나는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밝게 열심히 사는 A씨가 한국에 와서 이루지 못한 꿈과 포기한 욕구를 나는 결코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B씨가 자신의 삶을 모국어로 하듯이 한국어로 표현하는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C씨가 생계 걱정을 접고 다음 단계 TOPIK을 칠 수 있는 날은 아마도 먼, 아주 먼 훗날일 것이다. D씨가 내일 당장 이혼 상담을 하러 와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말이 사라진다. 수많은 삶이 소리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과거가 된다. 나는 그들의 말이 아닌 `우리말'로만 이뤄진 현실에서 어쩌다 산 채로 튕겨 나온 작은 조각들을 움켜쥐고 글을 쓴다. 조사가 빠진, 시제가 틀린, 종결어미가 뒤엉킨 불완전한 말의 파편들. 그리고 내가 때로는 주먹처럼, 칼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 모든 나의 말, 말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