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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2012년 4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통일부 柳 佑 益장관






 - 요즘 탈북자 북송 문제가 있는데.

 “탈북자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규범에 입각해서 처리해야 합니다. 한·중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이 문제는 본래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박해해서 일어나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탈북자의 신분을 최대한 보장하고, 우리가 그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한국이나 국제사회와 협조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 북한정권이 매우 어려운 실정인데.

 “한민족인 우리만이 낙후된 북한의 경제 회생에 근본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와 비교할 때 두 세대 이상 뒤떨어진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죠.

 북한은 지금 중국의 경제 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북·중 관계를 고려한 인도적 차원일 뿐입니다. 이것은 중국 사회가 개방될 당시 홍콩이나 싱가포르도 투자를 망설이는데 우리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중국에 뛰어들었던 것과 같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뒤쳐진다면 결국 북한은 그 흐름에 깔리게 됩니다. 굳게 지른 빗장을 풀고 하루빨리 남북대화를 재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나 남북 간 상호 교류협력 부문 등 협력해야 할 부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계속해서 대화의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 한·중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중국과 관련해서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은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피해가면 안 됩니다. 문제를 봉합하고 덮어두면 나중에는 더 커집니다. 그러면 감당할 수가 없게 돼요.

 실제로 제가 주 중국 대사로 있을 때 우리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침몰됐어요. 서로 조업하고 통제하다가 일어난 사고였죠. 사고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배상하고 책임자가 깔끔하게 처리하면 되는데 감정적으로 욕하고 외교적인 문제로 비약시켜서 대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당시 제가 중국에 이런 말을 했어요. `한국과 중국은 5천년의 역사를 공유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긴 국경을 나누고 있다. 지구상에서 제일 많은 물자와 정보, 사람이 오가는 사이다. 왜 문제가 없겠냐. 옛날이나 지금, 앞으로도 당연히 문제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사사건건 수교문제를 거론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냐.' 이렇게 말했더니 중국이 `그 생각이 맞다, 옳다'고 판단해서 사고는 사고대로 진지하게 조사해서 처리했죠.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를 공유해서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왜냐하면 문학을 공유하고 같은 시와 소설을 읽고, 같은 시기에 일제로부터 핍박도 당하고 그렇게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외교부가 나서서 성명을 하고 협박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해요. 사안은 사안별로, 사건은 사건대로 처리해서 이것이 더 크게 불거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양국의 이익을 취해야 하는 것이죠. 지구상 어느 나라든 싸우면 양쪽 다 손해이니 안 싸우고 해결하는 게 현명합니다.”

 - 현재 중국의 지도부나 국민 정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리가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인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상하게 괴상한 그림을 그려서도 안 됩니다. 중국은 있는 그대로 이웃나라이자 덩치가 큰 나라,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많이 공유한 나라로서 정확하게 보고, 그렇게 함께 가도록 중국에도 요구를 해야죠.

 만일 중국 시장이 없으면 우리 기업은 어디서 거대한 시장을 찾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중국도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세계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이 먼저 산업화되면서 선진 자본주의 시장의 노하우를 가지고 움직여서 중국이 많은 도움을 받았죠.

 중국 사람들은 늘 저에게 한국은 선생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옛날에 나는 공자가 내 선생님인줄 알았다. 당신들은 고대 문화에서 우리에게 선생님의 나라였다. 지금 우리도 빨리 체득한 부분을 너희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역사는 서로 주고받고, 밀고 당기면서 가는 거다. 그것이 합치면 선이 된다.' 그렇게 말했어요.

 중국은 이제 한국이 주변에 있는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은 세 번째 교역국이고, 중국에 있는 외국인 중에 제일 많은 사람이 한국사람이에요. 우리나라에도 중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아요. 우리는 다음 세대를 서로 맡겨서 교육하고, 장래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죠.”






 - 지금 탈북자 관리는 어떤가요.

 “탈북자 관리보다 우리는 탈북자의 한국 정착기반을 조성해주고 정착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통일부가 하고 있는 정책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 탈북자 정착기반 조성입니다. 이 부분이 통일부 전체 예산의 약 58% 정도로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 액수는 얼마입니까.

 “1천2백39억원입니다. 통일부 정책을 지금까지 주로 분단관리와 평화안전관리, 남북교류협력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통일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일준비에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탈북자 문제입니다. 탈북자의 공식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인데 그 말이 어려워서 저는 `분단이재민'이라고 불러요. 여기에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이 다 포함돼 있어요. 그 중에 핵심적인 부분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탈북자입니다. 이 북한 주민들을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으로 저는 이미 통일과제가 시작이 됐다고 보고, 이들을 나중에 통일된 한국에서 통합시켜내는 시금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단이재민을 위한 초기 교육시설인 제2하나원도 건립 중입니다.

 두 번째는 통일외교입니다. 주변국과 우리 통일에 관련돼 있는 나라에 찾아가 여러 채널을 통해서 직접 만나는 것이죠. 그들에게 우리 정책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고 통일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구하는 일입니다. 그 중 핵심은 그들에게 통일 한국이 귀국의 이해관계에 해롭지 않고 이롭다. 또 한반도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통일항아리'도 만드셨는데.

 “세 번째가 남북협력기금 내에 통일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죠. 이것을 제가 통일항아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법제화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많이 어렵습니다.

 통일항아리가 법제화되면 국민의 성금으로 통일재원을 마련해 우리의 통일의지를 결집시키고, 국민 스스로에게,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우리의 통일의지를 천명하는 경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환경을 조성하는 게 매우 중요하죠. 그래서 한쪽으로는 통일재원을 마련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우리 통일의지에 대한 확인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 통일재원 마련은 국가신용등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우리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법제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 분단이재민이라는 말은 장관님이 만드신 말인가요. 단어가 참 좋습니다.

 “예. 제가 만들었습니다.(웃음) 이재민이라는 것은 자신의 잘못 없이 갑자기 불행을 당하는 사람이죠. 납북자·국군포로·이산가족은 다 이재민이고 탈북민도 죄가 없어요. 이재민과 같죠. 자신이 선택한 상황이 아니고 분단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분단이재민이라고 표현했어요.”

 - 분단이재민 관리에서 가장 큰 역점사업은.

 “첫째는 그분들 건강이 다 나쁩니다. 이가 빠지고 위장장애, 결핵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의료사업이 적십자, 민간 기부까지 총동원하지만 매우 비쌉니다.

 둘째는 이분들의 직업교육입니다. 북한에서 배운 부분이 우리 사회와 다르니 다시 교육을 받습니다.

 세 번째는 취업과 교육 문제죠. 아이들은 학교 가서 잘 하고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취업이 아직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분들은 `대한민국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나라'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어요. 신앙처럼 믿고 따르니까 간절하죠.”

 - 그러니까 목숨도 내놓고 오겠죠.

 “그러면 우리가 이 사람들의 믿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직장도 구해주고 포용해야 하는데 아직도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채용을 꺼려요. 여기서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기업이 당연히 감싸 안아야 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우수한 노동력입니다. 이들을 봐줄 필요도 없어요. 정당하게 대우해도 충분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다같이 계몽을 해야 합니다. 언론에서 많이 도와주고 통일부와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사람들은 통일되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독일이 통일된 지 20년 됐잖아요. 최근에 독일에 가서 예전에 같이 공부하고 어울렸던 사람들 만나면서 `먼저 통일됐다고 자랑하지 말고 우리도 도와줘라. 이제 내가 세계에서 단 한 명인 통일부 장관이다' 이랬더니 그 사람들이 `뭐든지 부탁만 해라. 할 수 있는 거 다 해주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 자신감과 행복한 기운이 전달되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통일과정에서 진통을 몇 년만 제대로 겪어내면 우리 자손들이 그렇게 의연하고 당당하게 이웃을 향해서 뭘 도와줄까 고민하고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요즘 젊은 세대는 통일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우리가 통일됐을 때 어떤 의미와 이득이 있는지 설명해 주신다면.

 “식민지 시대를 예로 들면 일제 통치가 장기화되면서 1930년대 말이 되자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독립을 포기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동화되는 게 낫겠다고 했어요. 우리는 지금 그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부릅니다.

 이제 분단된 지 60년이 넘었어요. 분단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닌 또는 6·25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지금도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분단이라는 족쇄를 차면서 순응하고 있어요. 이것은 노예로 살면서 동화되는 과정이나, 식민지 시대의 피지배 인민으로 살아가면서 익숙해지는 과정과 다 같은 거예요.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겁니다. 노력하지 않고 약간 편한 부분을 택해서 `이 정도면 괜찮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죠.

 통일의 필요성은 무수히 많지만 설명을 하자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분단비용입니다. 지금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분단비용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본래 우리 국토는 대륙으로 훨훨 날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단된 현실 때문에 부산에서 기차 타고 한반도를 종단할 수 없죠. 이런 경우가 분단비용입니다.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미 순치돼 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젊은 후속 세대에게 `피상적인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안주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요.

 “독일이 `어느 날 문을 여니까 통일이 거기 와서 서 있더라'고 말했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1970년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관찰자로 지낸 분단국가의 유학생인 제 눈엔 그렇지 않아요. 독일 국민이 원하지 않았는데 통일이 된 것은 아닙니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몰라요.

 분단 당시 경제적으로 우세였던 서독은 전 유럽에 돈을 빌려줬어요. 당시 프랑스를 포함해서 독일의 재정원조를 받지 않은 나라가 없었죠. 모든 나라가 독일한테 돈을 빌렸어요. 독일이 단순히 돈이 많아서 아무 이유 없이 그런 게 아닙니다. 우선 과거에 전쟁으로 전 세계에 빚진 미안한 마음이 있었죠. 그 내면에는 `우리가 통일할 때 도와줘' 이런 배경이 있어요.

 또 당시 수상은 취임하면 아우슈비츠에 가서 무릎 꿇고, 빌면서 주변국들이 전부 독일이 달라진 것을 신뢰하게 만들었어요. 그 많은 노력의 결실이 어느 날 통일로 나타난 것이지, 독일 사람들이 놀았는데 통일됐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해야 통일이 오는 것이죠.”

 - 한국 사회에 문제가 여러 가지 있지만 남남갈등으로 인한 비용이 너무 큽니다.

 “남남갈등도 결국 북한 때문에 생기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통일이 돼 있으면 없는 거예요. 그런 문제는 정당 정책을 놓고 논쟁하는 정도로 끝나야 하는데 지금은 죽기 살기로 싸웁니다. 사실은 이것 또한 분단비용입니다. 우리 사이에 있는 의심·질시·증오·무조건적인 반대, 이런 것이 우리 국민의 심성을 갉아먹고 메마르게 합니다. 전부 분단비용이에요.”

 - 모교 지리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셨는데.

 “저는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셔서 학교 관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교수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한 달 이상 학교라는 곳을 떠난 적이 없었어요. 군대도 육사에 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학교가 핏속에 들어있는 사람이에요.(웃음)

 제가 중국 대사로 임명되면서 서울대에 사표를 냈어요. 정년을 몇 년 앞두고 모교에서 교무처장까지 한 사람이 좋아하고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온 것에 아쉬움이 남아요. 그렇지만 지리학도로서 공부를 시작한 이래 분단과 통일은 변함 없는 제 인생의 주제입니다.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공직을 맡을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고 영광이라고 생각을 해요.

 `學而報國'이란 단어를 생각해 봤어요. 조선시대 선비들이 쓰는 말인데 학문을 해서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이죠. 저도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사진 = 玄智愛기자·정리 = 邊榮顯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