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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2012년 3월] 문화 꽁트

‘어적도 백일몽’ 정다운(신대원67 - 70)




 2011년 5월 20일 오전 10시 30분, 북한 의주군 어적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중국 쪽.

 정명철은 서슴없이 조중 국경선을 넘어섰다.

 1990년대 중반 기근사태 이후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던 북한 사람들이 국경 경비병의 총에 맞아 죽은 얘기를 종종 들어 왔지만 설마 북한으로 건너가는 사람이야 총으로 쏘겠는가 싶어 용기를 냈다.

 더군다나 좁다란 샛강을 경계로 한 중국 땅 강변에 서 있던 표지석이 그를 유혹했던 것이다. 그 표지석에는 `한발만 뛰어 넘으면 된다'(一步跨)는 얄궂은 문귀가 새겨져 있었다.

 근년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 관광객이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 지역을 찾는 회수가 부쩍 잦아지자 중국 측이 상술로 이런 표지석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표지석 바로 앞에는 불과 3미터 남짓한 샛강이 있는데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르지만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표지석의 문귀가 어울리는 장소였다.

 일행이 이 표지석 옆에서 사진을 찍고 `야 정말 가깝네. 저기가 바로 북한이라니!' 하며 제가끔 한마디씩 던지고 있던 사이 정명철은 그 징검다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잰걸음으로 불과 1, 2분이면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징검다리 건너 언덕이라고 해봐야 그것 또한 불과 2, 3미터 높이에 불과했다. 거기다가 언덕에 쳐진 철조망은 지난해 홍수로 넘어진 뒤 보수를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들판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던 정명철은 슬그머니 일어나 가까운 호장산성 입구 매점으로 갔다. 소주 두 병과 안주거리 포를 한 봉지 샀다. 일행이 호장산성으로 올라 간 사이 그는 천천히 징검다리 쪽으로 향했다.

 
 징검다리 앞에 선 정명철의 머릿속에서는 8·15광복, 38선, 6·25전쟁의 역사적 고비가 만화경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남북관계에 생각이 미치자 지난해에 일어났던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잇달아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안타까움에 젖어 있던 그는 이윽고 징검다리에 한 발을 내디뎠다. 작가모임에서 마련한 압록강 연변 답사여행에 참가한 김에 초소 경비병부터 몸소 부딪쳐 볼 심산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쓰러진 철조망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니 북한 땅이었다.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두려움도, 즐거움도 아닌 야릇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하기가 구차스러울 만큼 뭉클하는 감흥을 억제할 수 없었다.

 - 아, 여기가 바로 북한인가. 우리 땅 우리 조국일진대 왜 이다지도 마음이 착잡할까.

 그때 1백 미터 정도 떨어진 국경초소에서 병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순 긴장했던 정명철은 이때다 싶어 소리를 질렀다.

 “선생, 남한에서 온 사람이오!”

 “거기 서시라우요!”

 정명철이 정지명령에 따르자 병사는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의 뒤로 또 한 명이 나타나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소총을 겨냥한 채 다가선 병사는 잠시 정명철의 손에 든 소주와 포에 시선을 준 후 다그쳤다.

 “동무, 여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요. 국경 침범죄로 체포하갔어.”

 “나는 남한에서 온 작가 정명철이요. 동무들이 수고 많은 것 같아서 소주 한 잔 하러 왔어요.”

 “니거이 멉네까?”

 병사는 정명철이 내미는 소주와 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아 이거 소주하고 안주요. 저기 초소에 가서 한 잔 합시다.”

 둘이 주고받는 사이 뒤따르던 병사가 다가왔다. 조장쯤 돼 보이는 그는 정명철의 월경의도를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위를 한 번 둘러 본 후 손을 내밀었다.

 “작가 선생, 반갑수다. 내래 경비초소 조장이오. 공화국 땅에 왔으니 손님이나 마찬가지앵이오. 갑시다래.”

 조장은 손님이니까 초소에 가서 한 잔하고 돌아가라며 앞장서서 안내했다.

 


 콩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초소는 서너 사람이 사용할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내래 조장 정동철이야요. 반갑수다래. 남조선 작가 선생이 우리 초소를 방문해 주시니 영광입네다.”

 “나는 소설을 쓰는 정명철이라고 합니다. 북한 동포를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어적도가 지척에 있는 걸 보고 건너왔습니다. 다른 뜻은 없고 소주나 한 잔 하려고 온 겁니다.”

 “아, 그렇군요. 이 사람은 우리 병사 고병구입네다.”

 조장은 병사를 소개했다.

 “자, 조장 동무 한 잔 받으시오.”

 정명철이 종이컵을 내밀며 술을 따르자 조장은 얼른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고맙습네다. 고맙습네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처음에 긴장했던 분위기가 서서히 누그러져 갔다. 조장은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특히 두 사람의 이름이 비슷해 친근감이 더했다.

 “작가 선생 성함이 저와 가운데 자만 틀려 마치 형제처럼 보이지 않습네까. 형님이 오셨으니 축배를 들자구요. 하하하.”

 이렇게 말문이 트이자 정명철은 북한 땅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들과 자연스런 말 섞기에 빠져들었다.

 “내래 오늘 공화국 동생이 하나 생겼구먼…. 자 동생 고생 많지. 한 잔 해.”

 “형님, 니거이 우리 동포끼리 교류 아닙네까. 남북통일도 니렇게 동포끼리 만나서 이룩해야 뎁소꼬망.”

 “길티, 길티, 기렇쟎구. 자 동포끼리를 위하여!”

 정명철이 흥이나 함경도 사투리를 흉내내며 축배를 권했다.

 그러자 정동철은 공화국에 온 손님에게 노래를 선사한다며 `반갑습니다'를 선창하기 시작했다.

 “동포 여러분, 친지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은 넓디넓은 어적도 들판에서 조장도, 병사도, 정명철도 한데 어우러져 `반갑습니다'를 연발하며 남북 간의 암벽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그 사이 전화 벨 소리가 몇 번 따르릉거렸지만 누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 순간 어적도 한 초소가 용광로로 변해 수십 년 간 쌓인 갈등이 그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았다.

 남북 사나이 셋이서 어울림 한마당을 놀아본 끝에 작별을 고했다.

 이때 갑자기 초소 밖에서 총성이 들렸다. 조장과 경비병이 소총을 미처 집어들 시간도 없이 정치보위부 군관이 권총을 꺼내 들고 들이닥쳤다.

 “간나 새끼, 꼼짝 마!”

 눈을 부라린 군관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해 있었다. 옆에 선 소대장과 분대장 역시 엄호사격 자세로 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정명철은 순간 경악했다.

 - 이거 어찌 된 일이냐?

 

 정명철이 어적도 한복판에서 경비병들과 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 어적도 일대 국경 경비를 관할하는 중대 본부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소대장으로부터 어적도 제3초소에서 30분이 지나도록 정시 보고를 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서였다. 마침 자리에 있던 정치보위부 군관이 낌새가 좋지 않다며 서둘러 제3초소로 향했다. 국경 경비대에서 악명이 높은 정치군관은 노래 소리를 듣고 한 동안 밖에서 초소 안 동정을 살폈다. 그는 사태를 파악한 후 오늘 따라 한건 하기로 작심한 듯 거세게 나왔다.

 “분대장 동무, 뭐하고 있습메. 간나 새끼들을 체포하지 않구 서리!”

 당황해 있던 정동철은 체포라는 말에 억울하다 싶어 대꾸했다.

 “군관 동지, 말 좀 들어 보시라우요.”

 “뭐야 이 새끼. 조장이라는 새끼가 남조선 반동분자 하고 술 쳐먹고서리 머이 어드래!”

 군관은 고함을 꽥 지르며 정동철의 머리를 권총으로 갈겼다.

 정명철은 다급해진 김에 한마디 했다.

 “내가 잘못 했어요. 조장은 죄가 없어요.”

 “뭐야. 남조선 아 새끼가….”

 군관은 권총으로 정명철의 이마를 갈겼다.

 눈앞에 별이 번쩍거렸다.

 악! 소리를 지를 사이도 없이 이마를 싸쥐고 뒤로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창바이현 호텔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가 뒤로 제쳐지는 바람에 넘어졌던 것이다. 주변에는 단둥에서 창바이현까지 오는 동안 압록강 연변 북한 땅을 바라본 소감이 적힌 메모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어적도 백일몽을 꾼 후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 1960년 4·19혁명 후 한때 대학생들 간에 회자됐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도 이처럼 멋모른 채 발동한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됐던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