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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2012년 3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한국연구재단 李 昇 鍾이사장






 - 모교에서도 중책(연구부총장)을 맡으시더니, 이번엔 한 단계 더 높은 직책을 맡게 되셨네요.

 “2008년에 통합 전 과학재단의 기초연구본부장으로 봉사했고, 재단 통합 과정도 지켜봐서 어느 면으론 친정 같은 느낌입니다. 아는 직원들도 많고요.”

 - 초대 이사장의 과제가 3개 기관 통합의 연착륙이었다면, 2대 이사장은 안정화, 그리고 3대 이사장님은 이제 본격적인 시스템의 가동일 텐데요.

 “사실 법인화 과정에서 모교 연구부총장에 전념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그런데 묘하게도 지난 1년 吳世正(물리71 - 75)前이사장과 정말 자주 만났어요. 작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 연구재단 정책과제를 수행했거든요. 재단 관련 사업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되냐 하는 정책과제였어요. 당연히 재단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됐죠. 그 과정에서 `조직을 이렇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등등의 제언을 했는데, 얼마 있다 제가 오게 된 거죠. 제가 제안했던 것들을 지금 하고 있는 셈인데, 아쉬운 점은 이미 지난 연말까지 했어야 하는데 이미 지나친 부분이 있는 거예요. 아무튼 전체적으론 애프터서비스 개념에서 봉사하고 있는 거죠.”

 - 모교 부총장직을 중도하차 하신 건 아쉬움이 남는데….

 “임기를 끝내지 못했으니 모교엔 죄송하죠. 하지만 제가 맡은 일이 어차피 연구 지원이니 모교와의 인연은 지속될 것이고, 아무래도 양쪽 사정을 잘 아니까 소홀하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편애할 수는 없겠지만(웃음).”

 - 통합 전인 2008년 과학재단 기초연구본부장으로 봉직하셨기 때문에 낙하산이란 소리는 듣지 않겠지만, 한편으론 부담도 없지 않으시겠어요.

 “吳世正 前이사장과의 스킨십이 큰 도움이 됐어요. 통합된 지 3년이 지났고 지난 연말 노동조합도 통합이 돼서 조직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아요. 지금부턴 재단 본연의 사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비전 달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 한국연구재단의 지향점은 어디인가요.

 “그동안은 어떻게 하면 미국과학재단(NSF)을 따라갈까, 독일연구재단(DFG)·일본연구재단(JSP)을 벤치마킹하자, 뭐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각종 수치가 보여주듯 우리나라도 이미 지구촌의 리더로 떠올라 있잖아요. 이젠 우리가 어떤 롤 모델을 따라갈 수준은 넘어섰다고 봐요. 한국적인 연구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연구시스템,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시스템을 한 번 배워 보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대한민국 국격에 걸맞은 재단을 만들어야겠다는 게 포부라면 포부죠.”

 - 그러려면 제도 정비가 우선인데, 앞으로 시행하시려는 제도를 설명해 주시죠.

 “`한국형 그랜트제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연구비 규모가 작은 풀뿌리 기초연구라고 해도 ▲결과보고서 제출 ▲연구 결과 평가 ▲지원받은 비용 정산보고서 제출 등 복잡한 행정절차와 서류가 많아 연구자들이 불편을 호소해왔죠.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적극 지원코자 올해부터 한국형 그랜트 제도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풀뿌리 기초연구자들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공분야의 일반연구자 지원사업과 학문후속세대 양성사업에 우선 시행합니다. 연구비 규모가 매년 5천만원 정도로 다른 사업에 비해 작지만, 이공계 연구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만명 정도가 지원받게 됩니다. 이른바 `풀뿌리 연구 프로젝트'죠. 재단은 올해 일반연구자 지원사업에 4천3백억원으로 8천개 과제 내외를, 이공분야 학문후속세대 양성사업에 1백51억원으로 3백60개 과제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풀뿌리 연구의 요체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 평가를 하지 않으면 마구잡이식 연구가 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동안 연구비 지원 제도엔 문제가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보고서는 모두 성공으로 돼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연구가 성공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이른바 `성실 실패(honorable failure)'를 용인해주자는 거죠. 그래서 보고서 서류를 간소화하고, 결과평가를 실시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추후 연구 과제를 신청할 때 반드시 이전 그랜트 과제로 도출한 성과를 집중 평가토록 돼 있습니다. 또 5% 무작위 추출을 통해 연구비 집행결과에 대한 정밀정산을 실시하고, 부적절한 사용 사례가 발견되면 해당금액의 5배에 달하는 제재부과금을 부과할 계획입니다. 연구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되, 연구자에 대한 책무도 동시에 부과할 수 있어 연구 부실과 연구비 오용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죠.”



 - 그밖에 개선되는 시스템은 어떤 게 있나요.

 “연구재단 출범 때부터 시작한 `한국형 프로그램 매니저(PM)제도'를 보완·완성하기 위해 `책임전문위원(CRB : Chief Review Board)제도'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현재 연구재단에는 상근 PM(본부장 3명, 단장 13명) 16명과 비상근 전문위원(RB) 2백84명이 연구기획부터 과제선정, 연구지원에 이르기까지 심사평가의 전문성·공정성·객관성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연구재단의 예산이 꾸준히 늘었고, 특히 2008년 4천9백36억원에 불과하던 이공분야 기초연구사업의 예산이 올해 9천7백50억원로 대폭 증액됐습니다. 예산의 증액은 곧 사업 수행을 위한 전체 업무량도 크게 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PM에게 집중된 과중한 업무량을 CRB에게 분산하고, CRB가 PM과 RB 사이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임기 내에 `CRB제도'를 시행하여 `한국형 PM제도'를 보완·완성해 나가겠습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적·도전적 연구 분위기, 연구 환경 조성일 텐데요.

 “우선 도전연구지원형 사업을 늘리고, 연구의욕이 가장 왕성한 신진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더욱 늘리겠습니다. 1907∼72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수상업적을 논문으로 발표했을 당시의 평균 연령이 38.7세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48세로 대기만성형 과학자들이 늘었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후 10년 내외의 신진연구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도전적인 의지로 획기적인 연구를 시작, 결국 노벨상 수상에 이르게 된다는 거죠. 따라서 재단은 세계적인 석학으로 성장하여 우리나라에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줄 신진연구자 지원을 대폭 늘리려고 합니다.”

 - 과학기술 쪽에 관해 중점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회에 인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재단 안에 융합연구단이 있긴 합니다. 융합과학단, 나노융합단, 문화융복합단이 있는데, 그게 모두 각각의 융복합입니다. 이제는 文史哲과 數物化가 명실공히 융복합화된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산이 넉넉한 이공분야 기초연구본부(1조원 규모) 쪽에다 융복합 연구를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융복합 연구에 돈을 투입하려고 합니다.”

 - 李明博정부 출범 후 연구비 신청을 했던 일부 학자들이 배정 평가에서 당사자의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배제됐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몇 있었습니다.

 “이공 분야는 아니고 인문사회 쪽에서 몇 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량적 평가가 쉽지 않아 생긴 오해같습니다만, 심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이나 편견이 개재될 여지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의 소지는 없도록 해야겠죠.”

〈사진=安興燮편집장·정리=玄智愛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