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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2012년 3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모교 任 廷 基연구부총장






 - 모교 연구부총장에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부총장실 전망이 참 좋네요. 연건캠퍼스에서 관악캠퍼스로 옮기시면서 생활환경이 바뀌어서 느끼는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관악캠퍼스는 산이 있어서 그런지 전망도 좋고, 나무도 많고 트임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학창시절부터 40년 이상을 혜화동 대학로 언저리로 등·하교하고, 출·퇴근하다가 관악캠퍼스로 출근을 하니까 처음에는 언뜻 방향이 맞나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죠.(웃음)”

 - 방학 중에도 계속 학내 행사와 법인화 관련 모임 등 일정이 많으신데.

 “회의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사회나, 재정경제위원회, 예전으로 말하면 학장회의와 같은 학사위원회, 간부들 회의가 계속 되요. 그런 회의 내용을 파악해야 하니 바쁘기도 하고, 또 하나는 입학과 졸업 시즌이라 각 단과대 고위과정 행사에서 축사하는 일이 많아요.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짧게 느껴집니다.”

 - 본부 보직 맡으신 것을 실감하셨겠네요. 부총장이라는 자리가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와 직접 맡으시고 활동하셨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다르신지요.

 “보직이란 점에서는 학장 자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보직이란 행정을 통해 교내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줘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학자로서는 조금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멀어지는 것에 대해서 학자로서 `가슴 시린' 부분이 있죠.

 연구부총장 역할은 연구처 및 산학협력단, 기획처, 사무국의 업무를 관장하도록 돼 있습니다. 대학의 연구 관련 업무와 행정, 재정에 관한 업무의 관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부총장이 법인화 이후 이사회 당연직이 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자리가 됐습니다.


 “연구부총장은 이사회 일원이면서 재경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습니다. 2개월동안 느낀 점은 구성원들 모두가 전문성이 뛰어나고 모교에 대한 헌신과 애정이 매우 깊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모시고 동문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기대하고 있는 글로벌 중심대학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다할 생각입니다.”

 - 법인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학생들과 직원들의 반대가 있죠. 부총장님이 특수법인인 병원에 계셔서 본부 교수님들보다 법인화에 대한 견해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앞으로 대비해야 할 과제나 법인화의 효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 있으시다면.

 “서울대병원은 1978년 특별법에 기초해 법인화가 됐습니다. 법인화 이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그러한 결정이 옳았음을 반증했죠. 당시에도 법인을 할 것이냐, 의과대학 부속병원 체제로 갈 것이냐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이 있었는데 국무회의에서 법인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결정한 이유는 바로 자율성이었거든요.

 병원 법인과 마찬가지로 모교 법인화도 대학운영상 자율성을 확보해서 운영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제고하는 것이죠. 자율성을 바탕으로 그동안 규제가 많아서 시도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전전략에 포함시키고, 그것을 실행한다고 보면 되죠.”

 - 가장 큰 목표는 지금 말씀하신대로 자율성과 책임이지만 또 다른 목표는 세계 속의 서울대, 즉 세계화 아니겠습니까. 법인화 이후 전략과 비전에 대해서 뚜렷한 그림도 아직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모교도 계획이 있지만 법인화에 대한 개인적인 조언을 해주신다면.

 “시행과정에서 걱정하시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계 우수 대학들이 법인체계를 선택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언급하신 것처럼 모교가 국내를 뛰어 넘어 세계 중심 대학으로 도약을 해야되는 시점인 것이죠.

 일본은 2004년에 모든 국립대가 법인이 됐고, 중국이나 국립싱가포르대, 홍콩대 등 아시아의 주요 대학이 이미 법인화가 된 것을 볼 때 모교가 법인화 된 현재 시점이 결코 이행에 이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교 법인화에 설정된 비전은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공동체'입니다. 미션은 `창의적 글로벌리더 육성', `선도적 학문가치의 창출', `공생발전을 위한 사회기여'입니다. 곧 동문들에게도 자세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임기 중에 특별히 역점을 두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예산 편성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마련한 `글로벌 선도연구 중심대학 육성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에 근접해 있는 분들, 혹은 신진연구자로서 두각을 내는 분들, 또 교내 연구자 중에서도 어떤 창의적인 업적을 내신 분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꾸준히 발전한 모교의 연구능력 향상에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자 합니다.”

 - 법인화가 됐으니 이제 가능하겠네요.(웃음) 의대생 시절에는 스키부 활동을 하셨네요.

 “모교 스키부는 1962년에 창설이 됐어요. 그 때는 선수로 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추구했는데 다른 대학은 체육특기생이 있고 우리 대학은 특기생이 없어서 불리하잖아요. 학생들이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배우는데 재학기간이 길어서 오래 연습해야 대회에 나가는 실력을 키울 수 있으니 의대나 치대 학생이 주가 됐고 체육교육과 학생 일부가 있었죠.”

 - 의대는 좀 다르지만 청년실업에 대한 우려가 모교도 예외는 아닌데요. 졸업하는 후배들이나 이제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자신이 지속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즐거워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직장도 초임의 수준에 주된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앞날의 가치에 중점을 둔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생활이 결국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전공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체육 분야의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른 분야를 배울 수 있죠. 또 이런 활동으로 새내기는 선배를 통해 팔로워십을 직접 경험할 수 있고 선배가 되면 리더십을 발휘하게돼 작은 사회를 미리 체득하는 좋은 기회가 되죠. 그래서 대학시절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 벤처 기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요. 후배들이 그런 부분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죠. 그럼 부총장님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어려운 시기는 언제였나요.

 “의대 본과 3학년 개학을 앞둔 1972년도 2월이었는데 그때도 스키부 합숙 중이어서 강원도에 있었어요. 아침에 합숙소에서 훈련장까지 걸어가는데 우체국이 있어요. 그날따라 이상하게 편지가 왔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체국에 들렸더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가 와 있었어요. 그리고 부친께서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에 빠져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어요. 1년 휴학을 했는데, 그 기간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적인 힘을 쌓아가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어려운 시기가 닥쳐도 극복하고 나아가면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겠죠. 동창회보를 통해 동문들에게 덕담 한 말씀 해주시죠.

 “33만 동문들이 건강해야 우리나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동문들이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모두 건강해서 우리 국가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계속 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진=安興燮편집장·정리=邊榮顯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