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호 2012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지성의 역할 아쉬운 迷妄의 시대
여야 정치권이 `선진화'라는 국가 비전을 폐기 처분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경제 민주화'를 합창하고 있다. 정부도 국민도 꽃피우지 못한 선진화를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것인가. 선진화가 李明博정부의 퇴장과 운명을 함께 할 철지난 유행상품인가.
선진화는 원래 李明博브랜드가 아니다. 아무리 정치가 건망증을 먹고사는 것이라 해도 한 가지 되살릴 기억이 있다. 2005년 초 盧武鉉대통령과 한나라당 朴槿惠대표가 선진화를 둘러싸고 `저작권' 신경전을 벌였다. 盧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朴대표 등과 만난 자리에서 `선진 한국'이라는 자신의 새 국정지표를 강조하자, 朴대표는 `국가 선진화 비전은 이미 우리 한나라당이 제시한 것'이라고 했고, 이에 盧대통령은 `로열티를 주고 사겠다'고 응수했다.
그 대통령과 정치를 함께 했던 親盧그룹이 지금 정권 탈환을 외치는 민주통합당의 핵심세력으로 등장했고, 朴대표는 한나라당 후신인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권 재창출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들은 진정한 국가 선진화를 위한 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할 정치주체들이다.
선진화를 박물관에 처넣을 수 없는 이유는 간명하다. 대한민국은 전후 신생국으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기적의 나라'지만 아직 선진국 조건의 달성에는 못 미치고 있다. 의식 관행 제도의 선진화를 비롯해 사회 문화적으로 이뤄내야 할 과제가 많다.
복지 확충과 경제 민주화도 맹목적이어선 안 된다. 의식 관행 제도의 선진화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진실로 `더 많은 국민이 더 행복한 세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선진화를 한 정권의 임기에 맞춰 내팽개쳐도 좋을 `쓸데없는 가치'쯤으로 몰아가는 행태는 무책임하다.
선진화와 함께 성장 그리고 애국까지 시대착오인양 폄훼하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데, 이들은 `뿌리 없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迷妄의 시대엔 지성 그리고 지식인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데, 대학은 지금 어디 있는가.〈裵仁俊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