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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2004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장애인고용촉진공단 朴殷秀이사장

졸업 후 25년간 장애인 운동에 헌신 휠체어 테니스단·합창단 만들기도
 『신문이오!』 정적을 깨뜨리며 생각의 끝자락을 걷어들이는 소리에 부리나케 신문을 받아 들고 펼쳤다. 깨알처럼 박힌 영광의 이름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박은수」라는 이름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신규 임명 법관 명단 속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 연수생이었던 조병훈, 김 신, 박 찬의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전류와도 같은 날카로운 두려움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엄청난 일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지난 6월 28일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제8대 이사장에 임명된 朴殷秀(79년 法大卒)동문은 그의 저서 「나는 눈물나는 해피엔딩이 좋다」에서 법관탈락의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장애인운동에 인생을 걸게 됐다.  『이것은 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인 동시에 앞으로 계속 차별받을 후배들을 위한 운동이기도 했어요. 또 당시 제가 법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여러 장애인단체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朴동문은 대구지법, 마산지법 판사를 지내며 장애인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서 나갔다. 우리 나라 최초로 휠체어 「테니스 선수단」을 이끌고 당당하게 외국 원정 경기에 참가했고 사람들을 설득해 대구지하철 역에 노약자와 장애인 전용 승강장을 설치하게 만들었다. 그밖에 「대구 볼런티어 센터」, 「장애인 교통 봉사단」, 장애인과 볼런티어로 구성된 합창단인 「사랑의 메아리」 등을 직접 만들었다. 이번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는 테니스 대표선수 4명 가운데 3명이 그가 조직한 「휠체어 테니스 선수단」 소속이다.  공개면접을 거쳐 현재의 이사장직에 오른 것도 장애인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朴동문은 『민간단체 활동만으로는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평소 바라던 고용문제, 연금도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를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실업률이 일반인 실업률의 7배에 달하는 28% 수준입니다. 일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데 놀고 있는 장애인이 4명중 1명 꼴인 셈입니다. 현재 정부기관 및 공사에서는 2% 장애인 의무 고용을 추진중에 있어 희망적이긴 합니다만 삼성(장애인 고용률 0.28%)등 대기업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진전은 없습니다』  朴동문은 서울대인을 향한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다. 이런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많은 동문이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이 장애인운동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시기라고 믿는 朴동문은 그가 몸을 의지하는 「클러치」처럼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지팡이가 되고자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