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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2012년 2월] 문화 꽁트

林 東 主(수의학74 - 78)




 작년 연말에 전철을 탄 적이 있었다. 옆자리에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애들이 여럿이 `중국 삼국지' 얘기를 한창하고 있었다.

 “방통이 제일 나은 거야. 조조의 군함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었으니까.”

 그러자 그 옆 애가 하는 소리.

 “아니야. 그래도 제갈공명이 하늘을 움직여 남풍을 일으켰기에 화전을 써서 위군을 박살낸거지.”

 `낙봉파' 운운 그들이 하는 얘기는 끝도 없었다. `중국 삼국지'를 완전히 꿰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끼어들었다.

 “너희들 중국의 삼국지를 거의 외다시피 하는데 당시 고국천왕이 한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답변인즉슨 “고국천왕은 위, 오, 촉 중 어느 나라 사람인데요?”

 삼국지 하면 대개 중국의 위, 오, 촉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삼국, 즉 고구려, 백제, 신라를 떠올리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심지어는 유비, 조조, 관우를 우리의 역사적 인물인양 달달 외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는 유리왕을 도와 선비족을 물리친 고구려의 장수 부분노나 진대법을 실시한 을파소와 같은 위인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펄펄뛰는 잉어를 수초에 싸서 적진에 보내 한군을 물리친 대무신왕의 지략이 제갈량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임진강을 위협해 백제 군사를 북으로 빼돌리게 하고 텅 비어있는 한성으로 진주해 백제 아신왕을 무릎 꿇린 광개토태왕의 지략 또한 당태종을 뛰어넘고 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도 인종에게 올리는 표에서 우리나라에도 춘추시대를 능가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훌륭한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자들은 외국(중국)의 것만 인용한다며 개탄해 마지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모르면서 어찌 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논할 수 있겠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소위 지식인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역사는 잘 모르면서 중국 삼국지는 자랑스럽게 회자된다는 거다. 특히 이런 이들은 우리나라를 스스로 비하하기 일쑤다.

 한국의 유명 작가들조차 돈이 된다해 앞 다투어 `중국 삼국지'를 윤색해 출간하고 있다. 게임을 만드는 이 또한 그러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569년 선조는 신하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장비의 장판교 사건이 왜 정사에는 기록돼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기대승이 선조에 아뢴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있다.

 “`삼국지연의'는 무뢰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진짜 옛 이야기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되고 경박하고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칩니다. -중략- 임금님께서는 이 책의 무망함을 아시고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중국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인 문구를 소개한 이유는 과연 이 소설이 우리에게 재미 이외에 무엇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젊은 날에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중국 삼국지'를 읽지 말라고 했다. 젊은이가 남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는 도적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광폭해지고 늙은이가 남을 속이는 계략이 많은 책을 읽으면 잔머리만 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겉으로는 의리와 충절을 내세우지만 실제론 권력다툼과 잔혹한 살육이 난무하는 시정잡배들의 이야기일뿐이다. 나관중이 소설에서 그렇게 치켜세웠던 공명이 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좌원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구려 국상 명림답부와 비교라도 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결국 떠돌이 무사 집단과 다름이 없다.

 나관중은 존화주의에 바탕을 두고 책을 만들었기에 `중국 삼국지'를 읽다보면 절로 모화사상과 사대주의에 젖게 된다. 즉 중국 중심의 세계에 익숙해지고 우리는 변방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위, 오, 촉의 삼국시대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동시대에 존재했다. 후한 말 태평도의 봉기가 있었던 서기 184년부터 시원을 잡더라도, 중요 사건은 200년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 208년 조조와 손권의 군대가 맞붙은 적벽대전, 촉의 건국의 발단이 된 219년 한중전투, 그리고 촉나라가 약화된 계기가 됐던 222년 이릉전투까지의 20년 사이에 일어나며, 263년 촉의 멸망과 265년 위의 멸망, 280년 오나라의 멸망까지 계산에 넣더라도 100년이 채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역사인 것이다. 그 당시 신라는 벌휴, 내해, 조분, 점해, 미추 이사금이 다스렸다. 석우로 등이 활약했던, 석씨 세력의 전성기였지만 곧이어 김씨가 등장한다.

 백제는 초고왕과 구수왕, 사반왕과 고이왕의 시대였다. 고이왕 시기 백제는 나라를 정비하고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을 시작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고국천왕과 산상왕, 동천왕과 중천왕, 서천왕 시기다. 이때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등용해 독자적인 진대법을 실시했고, 동천왕은 동양에서는 최초로 철기군을 조직해 위나라 관구검과 격돌했다.

 또 중천왕은 재차 침입한 위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위, 오, 촉 삼국시대에 비해 소재가 부족하지도 않고, 재미와 교훈이 모자라지도 않는다. 삼국시대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 민족 지혜의 보고인 것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인물들과 만나다보면 나라를 사랑하는 열정과 백성들을 진실로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광개토태왕에 대해서 영토만을 크게 넓힌 인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광개토태왕의 정식 명칭은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이 말을 풀어보자면 `국강상 지역의 무덤에 계시는, 크게 영토를 개척하시고 나라와 백성을 평안하게 해주신 참 사랑스러우신 큰 임금'이란 의미다. 즉 광개토태왕은 싸움만 잘하는 냉혈한 정복군주가 아니었다. 광개토태왕릉비문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분의 은혜와 혜택은 하늘에 가득 찼고, 위엄과 무공은 온 세상을 가득 덮었다. 옳지 못한 자들을 없애 치우고, 백성들의 생업을 편안하게 하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며 오곡이 풍요하게 무르익었다.”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이러한 백성들의 칭찬을 들은 인물이 바로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다. 단지 사람들이 광개토태왕비 396년 신묘년조 해석에만 매달려 그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광개토태왕과 세계적인 영웅이라 칭하는 알렉산더 대왕을 비교해보자. 알렉산더는 냉정히 말해 살인광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배다른 형제를 독을 먹여 바보로 만든 잔혹한 어머니 올림피아스 왕후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그리스를 떠나 세계를 떠돌며 잔인한 살인 행각을 벌인 인물이었다. 다만 그의 사후에 동서 문화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등 좋은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이와 같은 알렉산더에 비한다면 광개토태왕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명심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고 해서, 이보다 독일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본이 무구정광다리니경이라고 해서 우리가 세계 최고로 인쇄 문화를 발달시킨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가 훌륭하다고 자랑만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왜 우리 역사가 인정을 덜 받고 있는지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알렉산더를 모르는 세계 지성인은 거의 없겠지만, 광개토태왕을 아는 세계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신라의 거칠부나 이사부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 관우나 장비가 `삼국지'로 포장됐기에 만고의 영웅으로 부상한 점을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어린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중국 삼국지'를 소스로 한 게임을 즐기며, `중국 삼국지' 만화를 보고, 소설 `중국 삼국지'를 읽고 논술 준비를 하며 대학에 들어간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는 제대로 배워 보지도 못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이렇게 제 나라 뿌리도 모르는 한심한 현실에서 과연 애국심이 생기겠으며 `동북 공정'과 같은 중국의 역사 침탈을 제대로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수능시험이나 대입 논술시험에서 중국 제갈량의 출사표 대신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사건을 지문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나라에 끌려가서도 죽음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신라 쇠뇌의 기술을 지킨 구진천의 이야기 등이다. 만약 입시 논술에서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삼국시대 역사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증대될 것이다.

 역사 지키기는 역사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역사소설가의 몫도 있지만 정부와 시민 등 문화산업 전체의 몫도 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우리의 정체성도 잃고, 우리의 존재 가치도 잃어버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 아들, 딸들이 정신적으로 안정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우리가 역사 지키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역사의 보고인 삼국시대를 토대로 한 문화콘텐츠를 적극 개발해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 어린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게임을 즐기며, 우리나라 삼국시대 만화를 보고, 우리나라 삼국시대 소설을 읽으며 문학적 소양을 늘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역사를 전공 혹은 부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우리도 정체성을 찾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