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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2004년 8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연쇄 살인범과 우리의 자화상

 새벽 뉴스 편집팀에서 일하는 필자는 매일 새벽 2시 45분이면 눈을 뜬다. 새벽 3시 30분 보도국에 도착해 노트북을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새벽도 여느 때처럼 노트북을 열었다가, 한 기사의 제목 때문에 어제 마신 술이 확 깼다. 「연쇄 살인범 4년 전에도 경찰서에서 도주」.  아니 이 놈은 도대체 경찰에서 몇 차례나 도망치고 잡힌 거야? 그리고 경찰은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더욱 경악스러운 「사건」은 아침 편집회의 석상에서 발생했다. 연쇄 살인범이 4년 전 경찰 행세를 하면서, 미성년자와 윤락행위를 하던 진짜 경찰을 협박해 신분증을 압수하고 자술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연쇄 살인 사건은 최근 보기 드문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니 이 글을 쓰는 현 시점까지도 아직 여죄를 캐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었다」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자신이 잔혹하게 살해한 희생자의 발찌를 지니고 다닐 정도로 人面獸心인 용의자… 경찰이 밝혀냈다고 주장하는 희생자수는 현재 21명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희생자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경찰은 연쇄 살인범을 3번이 아니라 30번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연쇄 살인범에게 미성년자 윤락 현장에서 신분증을 빼앗긴 경찰이 1명이 아니라 10명이 될지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대부분의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야 우리가 교훈을 얻는데 반해 이 사건은 아직 진행 중임에도 너무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 뒤로 사라져간 아무도 찾지 않는 2류 인생 출장 마사지사의 인권 논란, 이웃에서 엄청난 사건이 몇 달에 걸쳐 연속으로 벌어져도 전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삭막한 도시 생활, 공조 수사보다는 공 다투기에만 바쁜 한심한 경찰의 작태.  그러나 언론이 제기하는 이 모든 문제들은 어쩌면 사치스럽고 어쩌면 낭만적이며 어쩌면 사소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 순간에도 내 생명, 내 가족의 안위가 불안한 상황인데….  피의자를 몇 번씩이나 놓쳤다가 다시 잡은 느슨하기 짝이 없는 경찰 수사망. 「단순한」 부녀자 납치 매매범인 줄로 알았다는 경찰의 의식. 그렇다면 부녀자 납치 인신매매는 과연 가벼운 범죄인가? 시민의 제보가 희대의 살인마를 잡아냈다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시민이 제보하고 「잡아서 넘겨준」 인신매매 납치범조차 놓쳐 버린 것이 우리의 경찰 아닌가? 그렇다면 달아난 범인이 제보한 시민에게 보복을 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  더 희한한 것은 민간인 「제보자」의 역할과 신분이다. 제보자인지 검거자인지도 불명확할 뿐더러, 「윤락 알선업」이라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스스로도 범법자의 신세라는데….  과연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대로 오랫동안 윤락 알선업-윤락보다 훨씬 죄질이 나쁘다 -에 종사해온 악질 범법자가 또 다른 범법자를 검거한 것인가? 미성년자 윤락이 가짜 경찰에 적발돼 자술서를 쓰고 신분증까지 빼앗긴 경찰의 윤리수준은? 경찰도 남자니까…라고 관대하게 생각해야 하는가?  국가의 공권력 역시 일종의 불법이지만 다만 불법에 대한 불법이기 때문에 합법화된다는 헤겔의 명제 역시 이 대목에 이르면 너무나 힘없이 무너지게 된다. 이런 법질서 속에 내던져진 내 생명, 내 가족의 운명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한 가닥 위안은 있다. 우리는 무척 운이 좋다. 무너진 법질서, 엉성한 수사망, 흔들리는 직무 윤리, 대화의 단절, 인권의 사각 지대 그 모든 현대 사회의 문제를 끌어안고 살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녀자 납치 매매범을 붙잡았으니까. 그리고 그 매매범이, 아무런 경찰의 추궁을 받지 않고도 엄청난 범행의 전모를 스스로 그리고 순순히 자백했으니까. 연쇄 살인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고 연쇄 살인이든 부유층 노인 살인 사건이든 간에 살인 사건에는 담쌓고 지내던 기동수사대 형사들이 희대의 연쇄 살인의 전모를 밝혀 냈으니까.  그러나 이런 요행수가 얼마나 자주 반복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에서 행운의 여신이 우리와 함께 했다는 한 가닥 위안조차도 이제는 오히려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