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호 2012년 1월] 문화 꽁트
禹 在 九(상학55 - 61)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여 앉아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놓고 전등불을 다 끈 다음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눈을 감고 소원을 빌라한다. 소원이 끝나면 촛불을 훅 불어 끄라고 한다. 큰 촛불 7개와 작은 촛불 7개를 한 번에 훅 불어 끄면 “야, 우리 할아버지 힘 좋다”라고 소리치며 또 박수를 친다. 지난 8월 15일 수지 상현동 K할아버지 집에서 있었던 생일 파티였다. K씨는 금년 77세 喜壽다.
생일 파티가 끝나자 서울 강남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은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고 학교 가야한다면서 서둘러 일어난다. 40대 초반의 며느리는 70세가 넘은 시어머니에게 설거지는 식기세척기를 쓰라고 하면서 집을 나선다.
아파트 정문까지 마중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한 후 아들 식구들은 BMW를 타고 황급히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아들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아파트로 돌아온 노부부는 저녁 먹은 식기들을 깨끗이 씻고 응접실을 정돈한다. 정돈이 끝나면 여느 때같이 아파트는 다시 조용한 정적에 잠긴다.
K씨는 1954년 B광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태산을 이고 벽해를 뛰어넘을 듯한 기개로 청운의 꿈을 키워온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 당시 최고 직장이었던 H은행에 들어갔다. 외국어 실력을 비롯해 업무처리에 남다른 강점을 보인 탓에 입행 후 5년 만에 H은행 런던지점으로 발령받았다.


결혼한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런던으로 갔다. 가난에 찌든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영국 런던으로 가는 것은 기대요, 희망이요, 기쁨이었다. 2살, 4살 아들과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오르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뉴욕과 더불어 세계금융 중심지인 런던에서 5년, 귀국 후 얼마 안 되어 다시 런던지점으로 발령이 나 또 5년. 런던에서 만 10년을 보냈다.
국제금융의 일인자가 된 K씨는 그 후 독일, 스위스에 이어 동남아시아의 홍콩, 싱가포르지점장으로 도합 20년 이상을 해외지점에서 근무했다. 자연 두 아들은 부모 덕택에 영국,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고 미국 명문대학에서 공부했다.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가난과 고난은 저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됐다.
싱가포르 근무를 끝으로 은행생활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경력이나 자질은 중역이 되고도 남았으나 해외근무만 하다보니 국내 인맥이 없었다. 해외에만 있었으니 고도 성장기에 흔히 있었던 재테크로 자산을 늘리지도 못했다. 시중은행의 중역 승진은 경쟁자가 많았다. 실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리하여 K씨는 중역 승진에서 탈락하고 H은행과 연관이 많은 A보험회사의 중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몇 년 근무하다가 60세를 끝으로 직장생활을 접었다.
아들 두 명 중 장남은 미국에서 공부한 MBA경력을 살려 영국 런던에서 우리나라 전자제품을 구입해 현지에서 판매하는 에이전트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점차 궤도에 올라 돈을 잘 벌었다. 둘째는 서울에 있는 미국계 투자회사에 취업했다가 메릴린치로 스카우트됐다. 지금은 중견간부가 돼 연봉이 몇 억대가 된다고 했다.
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새 출발할 때 아들 각자에게 성남 분당에 있는 30평형 아파트를 사줬다. 영국에 사는 장남은 아버지가 사준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돈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다. 둘째는 억대 연봉에 힘입어 그 아파트를 팔고 강남에 있는 60평형 아파트로 옮겨 부부가 각각 BMW를 타고 다니는 상류사회 인사가 됐다.
K씨는 퇴직 후 5년간 강남에 그대로 살았다. 수입이 없으니 저축했던 돈은 점점 줄어들었고, 불안해졌다. 은퇴 후 생활비가 비싼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고 느껴 2000년 초에 수지 상현동으로 이사를 했고, 분당에 오피스텔 한 채를 사서 월세수입을 확보했다. 오피스텔 월세 수입과 50만 원 정도의 국민연금, 그리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이어왔다.
물가가 올라 생활비가 늘어나니 가정경제는 점점 어려워졌다. 대책은 하나도 절약, 둘도 절약이었다. 집안, 친구들의 경조사 참석도 차차 줄이기 시작했다. 한창 잘 나갈 때 왜 노후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던가?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1930∼50년 사이 태어난 우리나라 개발세대들은 일에 파묻혀 살았기에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는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생활여건을 탐문했다. 노후 대책 없이 노년기를 맞이한 한국의 노인은 쉽게 가난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로 OECD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일본 22%, 그리스 23%, 미국 24%의 두 배에 달한다. 한국에 이어 노인빈곤율 2위인 아일랜드보다도 14%나 높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연간 2천38건이던 노인학대 신고 건수가 2010년 3천68건으로 5년새 50% 이상이 증가했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폭력, 언어폭력, 부양 포기, 유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선 노인 5명 중 1명(19.7%)꼴로 학대를 받고 있다고 나타났다. 이는 미국, 캐나다, 영국보다 5∼10% 높은 수준이다.
학대받는 노인들에 비하면 그래도 K씨는 형편이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재산이 자꾸 줄어드니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둘째 아들에게 월 몇 백만원씩 도와달라고 할 생각까지 해봤다. 부부가 상의해봤으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정을 전혀 눈치 채고 있지 않았다. 아마 연봉이 2∼3억원이 넘어도 수입이 많으면 씀씀이 또한 커지니 부모를 도울 여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BMW를 두 대나 굴리고 큰집에 살면서 아이들을 최고급 학원에 보내는 등 상류층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자기들의 지금 생활수준을 퇴직 후에도 이어가게끔 준비하려면 오히려 현재의 수입이 적다고 한탄할 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니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K씨는 자식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키우는 것만이 좋고 올바른 교육인 줄 알았다. 이제 와서 보니 잘못 키웠다는 느낌이 든다. 모두 자기 책임이다. 그렇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사람은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 사정은 모른다. 이기적이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른다. 늘 세상은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남의 일로 치부된다. 인생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몹쓸 병에 걸리거나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런 좌절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는데 두 아들은 부모 덕택에 풍파 없이 살아왔기에 세상물정에 어둡다.
K씨는 자신의 불찰이 결과한 일이니 이제 자기가 어렵다고 자식에게 손 내미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자. 나의 과거를 속죄한다는 의미로도 자식들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굳혔다.
희수의 나이에 남은 재산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낙향이다. 수지 상현동 집을 팔아 그 돈으로 고향에 내려가면 아파트는 물론 텃밭이 붙은 단독 주택도 구입할 수 있다. 지방은 생활비가 서울의 반 이하라 한다.
낙향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자식에 대한 원망이나 기대도 사라지고 오히려 아들 손자는 그대로 대견해 보였다. 다시 옛날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온 듯해 기뻤다. 과거에는 낙향자의 애로가 지방의 낙후된 병원 시설과 흉금을 털어놓을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KTX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만들었고 희수가 넘은 나이는 모여 앉아 웃고 마시고 즐기는 친구보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교우들과 형제자매 같이 지내면 외로움은 쉽게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나이에는 어디를 가나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관조하면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느꼈다.
금년 10월 말로 B광역시로 낙향한다고 하니까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 어머니 왜 시골 가시느냐”고 펄쩍 뛴다. 가지 말라고 말린다. 시골이 좋아서 간다고만 말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부모가 진짜 고향이 좋아서 가는 걸로 알고 있다.
자립해서 여명을 살아간다고 마음을 굳히니 좋은 부모가 된 듯 느꼈다. 다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시골 가서 텃밭도 일구고 일하면서 노후를 보내겠다고 생각을 하니 마냥 기쁘다. 돈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아들 손자의 성장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으니 한없이 행복하다. 부부가 힘 모아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세탁하는 등의 가사노동을 즐기며 살아간다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했다.
일본의 유명한 老작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는 지난 7월 출간한 저서 `당당하게 늙고 싶다'에서 `노인들은 누구에게 기대지 말라', `자립하라', `죽을 때까지 일하라', `돈에 얽매이지 않은 정신을 가져라',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즐겨라', `늙음과 질병, 죽음과 친해져라', `신을 믿어라' 등 좋은 지혜를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당당하게 늙어갈 노인의 지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니 즐겁고 행복한 여생이 초원처럼 펼쳐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