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호 2004년 8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사무착오 입학생'이란 놀림받기도
항상 담배 얻어 피던 친구 그리워 羅根炯(62년 師大卒)인천시 교육감
1958년 4월 대학에 입학했다. 그 당시 사범대학은 용두동에 있었고 부속중학교와 같은 구내에 있었다. 청량대(교내 공원) 옆에 계단으로 연결된 일본식 건물에 강의실과 교수연구실이 있었다. 한마디로 초라한 대학건물이었다. 우리가 재학하는 동안 그 일본식 건물은 철거됐고 그 자리에 Science Hall이 세워졌다.
대학 학창시절 하면 두 가지 일이 떠오른다.
하나는 필자 개인적인 일이고 다른 것은 친구의 일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과학을 좋아했다. 서울대 문리과대학 물리학과에서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당시 權寧大교수님이 쓴 물리교과서로 배우고 그분께 강의를 듣는 것을 꿈꾸어 왔다. 그런데 집안 사정이 사범대학이 아니면 대학진학을 못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말에 사범대 물리교육과에 지망하고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물리 교과를 담당하신 분이었는데 이왕이면 수학교육과에 응시하라고 권하셨다. 담임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수학교육과에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을 치렀다. 원래 물리는 자신 있었으나 수학에는 그렇지 못했고 시험결과도 그랬다. 물리는 거의 만점을 받았으나 수학은 아무리 계산해도 60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낙방이 분명해서다. 수학교육과 지망생은 수학을 60점 이상 받아야 된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런데 합격을 했다. 당시에는 신문에 합격자 명단이 발표됐기에 신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입학 후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에 퇴학당할 것만 같았다. 그 당시 朴漢植교수님께 찾아가서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다. 朴교수님은 『우리 수학교육과에 사무착오로 들어온 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너로구나』하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후 강의시간에 朴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입학 사정때 수학점수에 의해 낙방되는 학생들이 아주 낙방이 아니라 제2지망에 합격 가능한 학생이 대다수였다고 했다. 그래서 수학점수를 낮추어서 합격선을 사정했다는 말씀이었다. 그때서야 「사무착오 입학생은 아니었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朴교수님은 그 이후에도 필자를 「사무착오 입학생」이라고 놀리곤 하셨다. 친구의 일화는 이렇다. 그 당시에는 담배 한 갑도 사기 힘든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다. 필자는 담배는 안 폈으나 담배 피는 친구 하나가 항상 얻어서만 폈다. 『너도 담배를 사서 펴라』고 하면 그까짓 담배 한 개피 갖고 째째하다고 오히려 핀잔을 줬다. 그래서 그 친구별명이 「가리」였다. 가진 것은 입(아가리)뿐이라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라이터가 있으면 담배를 얻어 필텐데, 라이터가 없어 담배를 못 얻어 핀다」고 말할 정도로 배짱(?) 좋은 친구였다. 청량대에 모여서 담배를 피다가도 「가리」가 다가오는 게 보이면 담뱃불을 재빨리 껐다.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 「가리」씨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됐다. 다 그리운 친구들인데….
하나는 필자 개인적인 일이고 다른 것은 친구의 일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과학을 좋아했다. 서울대 문리과대학 물리학과에서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당시 權寧大교수님이 쓴 물리교과서로 배우고 그분께 강의를 듣는 것을 꿈꾸어 왔다. 그런데 집안 사정이 사범대학이 아니면 대학진학을 못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말에 사범대 물리교육과에 지망하고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물리 교과를 담당하신 분이었는데 이왕이면 수학교육과에 응시하라고 권하셨다. 담임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수학교육과에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을 치렀다. 원래 물리는 자신 있었으나 수학에는 그렇지 못했고 시험결과도 그랬다. 물리는 거의 만점을 받았으나 수학은 아무리 계산해도 60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낙방이 분명해서다. 수학교육과 지망생은 수학을 60점 이상 받아야 된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런데 합격을 했다. 당시에는 신문에 합격자 명단이 발표됐기에 신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입학 후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에 퇴학당할 것만 같았다. 그 당시 朴漢植교수님께 찾아가서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다. 朴교수님은 『우리 수학교육과에 사무착오로 들어온 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너로구나』하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후 강의시간에 朴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입학 사정때 수학점수에 의해 낙방되는 학생들이 아주 낙방이 아니라 제2지망에 합격 가능한 학생이 대다수였다고 했다. 그래서 수학점수를 낮추어서 합격선을 사정했다는 말씀이었다. 그때서야 「사무착오 입학생은 아니었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朴교수님은 그 이후에도 필자를 「사무착오 입학생」이라고 놀리곤 하셨다. 친구의 일화는 이렇다. 그 당시에는 담배 한 갑도 사기 힘든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다. 필자는 담배는 안 폈으나 담배 피는 친구 하나가 항상 얻어서만 폈다. 『너도 담배를 사서 펴라』고 하면 그까짓 담배 한 개피 갖고 째째하다고 오히려 핀잔을 줬다. 그래서 그 친구별명이 「가리」였다. 가진 것은 입(아가리)뿐이라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라이터가 있으면 담배를 얻어 필텐데, 라이터가 없어 담배를 못 얻어 핀다」고 말할 정도로 배짱(?) 좋은 친구였다. 청량대에 모여서 담배를 피다가도 「가리」가 다가오는 게 보이면 담뱃불을 재빨리 껐다.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일들이다. 그런데 그 「가리」씨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됐다. 다 그리운 친구들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