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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2011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鄭 正 佶 한국학중앙연구원장






 -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공기 맑고 골치 아픈 일도 없는데….(웃음) 저 동네(청와대)는 임기 후반기가 되니 온갖 게 다 터지네요.”

 - 터가 안 좋다는 풍문이 일리 있는 것 같습니다.

 “전반기까지는 안정감이 있었죠. 지지도도 50%까지 끌어올리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된 뒤에 다른 문제가 나오고 그랬는데, 올해 초부터 이상하게 문제 터지면 해결되기 전에 문제가 또 나오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누적돼 큰일입니다.”

 - 李대통령이 부지런하시죠.

 “얼마나 열심히 해요. 朴正熙대통령 이후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분도 없을 거예요. 단지 정치적인 면이 조금 약한데, 보좌진들이 잘해야 할 것 같아요.”

 - 원장님 계실 때만 해도 중심을 잡아 보좌를 한 것 같은데, 경륜이 짧아서 그런지, 임기말이라 그런지 조정이 잘 안 돼요.

 “임기 후반기라 그럴 겁니다. 또 제가 있을 때는 창업공신들이 많았어요. 당시 욕하는 사람 많았지만, 李東官·朴宰完·朴亨埈 등 창업공신들은 대통령이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설득하려고 애썼어요. 그러다 안 되면 나를 찾아와서 같이 설득하러 갔죠.”

 - 대통령께 욕을 먹더라도 직언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르르 몰려가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설득하는 일이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있었어요. 10가지 문제를 두고 논쟁이 붙으면 9개는 우리 뜻을 받아들여 주셨어요.

 창업공신이 아니면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대통령 생각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처음 몇 번은 직언을 하겠지만 대통령이 `그게 왜 안 돼' 하고 화를 몇 번 내면 `이 정도 했으면 됐지' 하고 포기하기 쉽죠.”

 - 임기 말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임기 후반에 가까울수록 직언을 할 수 있는,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야 합니다.”

 - 미국만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좌진들이 임기 끝까지 가죠.

 “그렇죠. 人事를 할 때, 초반에는 탕평을 해야 하지만, 임기 후반부가 되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써야 해요. 그런 사람이 바른말을 하고 책임감 갖고 일을 합니다. 내가 여기 와서 터득한 게 그거예요.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것 같아요.(웃음)”


 - 산 속에 오셔서 중요한 발견을 하신 것 같습니다. `중도실용을 말하다'란 책을 집필하셨죠. 지금 현 상황에서 한 말씀 해주시죠.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이념, 철학, 정당 등을 떠나 풀어갈 방법을 찾는 게 중도실용이죠. 이념, 정당의 차이는 불문에 부치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다 동원하는 거예요.

 지금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중산층이 없어지고, 중산층이 없어지니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념을 떠나 일자리 창출에 매달려야 합니다.”

 - 실용은 눈에 보이는데 중도가 붙으니까 어려워요. 중도는 심오한 철학 아닙니까. 반드시 중간을 지킨다는 의미보다는 상황에 따라 좌우를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겠죠.

 “바로 그래요. 미소금융, 보금자리 주택, 사회적 기업 설립 등은 사실 좌파정책이에요. 그런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받아들인 거죠.”

 - 李明博정부 들어서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은데, 윗목은 물론이고 아랫목도 추운 데가 많다보니 국민들의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자리 만들기가 참 힘들어요. 정부가 아무리 일자리 만들어라 강조해도 기업들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정부가 기업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만들게끔 부추기고 도와주는 것이지,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 아닙니까.”

 - 이해가 됩니다.

 “정부에서 직접 발 벗고 나선다 하더라도 효과가 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죠. 원전 수주가 대표적 예인데, 원전 수주해서 발전소가 건립되면 일자리가 많이 생겨요. 하지만 당장은 아니거든요. 녹색성장 산업 대부분이 그래요. 계획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준비하고 자금도 모으려면 상당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 일들을 정부에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체감하기가 힘들죠. 속은 답답하고 일자리는 없고 원망만 쌓여요.

 이럴 때 정부를 불신하는 세력들이 어려운 현실을 이용하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정부가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욕하죠. 메커니즘을 이해 못하는 측면도 있고 일부러 정부를 비난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그러는 경우도 있고요.”

 - `安風' 등의 발원지겠죠.

 “어쨌든 그런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합시다.(웃음)”

 - 취임 때 정신문화의 힘을 강조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우리나라의 수출의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약 40%입니다. 냉혹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이런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혹시 장사해서 벌어먹는 사람들로 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지금 전자기기, 자동차, 배, 기계부품 등을 수출해서 먹고 사는데 일본을 모방한 게 많죠.

 우리 국민들의 생활 의식 수준, 행동 패턴이 선진국이나 일본, 중국에서 봤을 때 그렇게 바람직한 상이 못 되요. 국회에서도 상식 이하의 일들이 벌어지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보면…. 일본, 중국 사람 가운데 우리를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 한류가 떠서 다행히 그런 이미지가 희석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이 남아 있어요.”

 - 어떻게 해야 그런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요.

 “한중연의 역할이 거기에 있다고 봐요. 역사 속에서 과학적 사고, 창의성 등을 중요시했던 기록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 연구 결과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과학적인 사고방식, 창의성이 있던 민족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싶어요. 이런 연구 결과가 퍼져나가면 우리보고 일본을 흉내냈다는 소리 함부로 못하고 젊은이들도 자긍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계획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구분해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과학기술, 특히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서 과학기술을 적용한 사례들을 시대별 전공자들에게 조사하도록 하고 같은 시기의 일본은 어떻게 과학을 실생활에 접목했는지도 비교 연구토록 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적어도 세종대왕 때까지는 조금 앞섰을 거라고 봐요. 그 이후 일본은 네덜란드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이며 앞서 나가고 우리는 쇄국정책으로 정체되면서 차이가 생겼죠.

 일본과 함께 시대별로 비교하면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 왜곡 아닌가, 자료를 미화한 거 아니냐는 논쟁도 붙고, 언론 보도와 방송의 전파를 타면 대외적인 이미지도 달라지고 우리의 마음자세도 서서히 고쳐지지 않을까 싶어요.”


 - 연구결과가 기대됩니다.

 “예산을 신청해서 내년부터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 정권이 야당으로 교체되면….(웃음)

 “내용의 뜻을 알면 누구든지 공감하리라 믿어요. 제가 떠나더라도 일단은 연구비를 확보해 시동을 걸면, 또 내년까지는 있을 테니까, 한 번 더 연구비를 따낼 수도 있고요. 밖에서도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터를 만들어 두면 자연스럽게 추진될 겁니다.”

 - 우리나라가 2050년에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낙관론(골드만 삭스)도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지금 한류가 뜨고 있죠. 곳곳에서 한류가 떴는데 왜 이럴까, 원인이 뭘까. 가만히 내용을 보면 어느 것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넘버원이 되겠다는 집념과 추진력, 온힘을 다해 이뤄내려는 불굴의 정신이 있었던 겁니다.

 거기에 적절한 재능이 뒷받침됐고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육열이 대단하잖아요. 현 교육 환경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떠나 개개인의 지적 능력과 자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이 두 가지가 합쳐지니까 무슨 일에 부딪혀도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게 존속하는 한 큰 나라로 성장해 가리라 믿어요.

 한류가 나와서 말인데 그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어요. `한류의 원인과 뿌리 찾기'란 주제로요. 한류의 뿌리가 어디 있나. 우리 선조 DNA 속에 있던 거냐 아니면 도중에 만들어진 거냐 등. 의욕이 넘칩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많아요.”

 - 말씀하신 대로 세계 곳곳에 한류 붐이 일고 있는데, 이 기회에 우리의 우수한 지식문화도 세계로 확산됐으면 합니다.

 “그렇잖아도 한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전 세계 대학에 한국학 강좌를 지원하는 사업을 통해 영국 옥스퍼드대나 미국 에모리대 같은 유수의 대학부터 튀니지나 그루지아 같은 열세 지역까지 한국학 교수들을 폭 넓게 파견하고 있습니다. 또 해외에 한국학을 확산할 중핵대학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고요. 현재 被지원 대학은 하버드대, 베를린 자유대, 상트 페테르부르크대 등 그 지역에 영향력을 가진 대학입니다.”


 - 공기 좋은 곳에 좀 쉬러 오신 줄 알았는데 일을 많이 벌이셨네요.

 “이 자리에 李榮德·李賢宰선생님이 총리 지내고 연세가 좀 있으실 때 오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사실은 `친구들 찾아오면 바둑이나 두고 책이나 읽는 자리'라 생각했어요.(웃음) 와서 보름 지나니까 할 일이 엄청 많아요.

 방금 말한 두 가지는 쉽게 계획 세워 나갈 수 있는 건데, 하다 보니 한국학의 방향전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학이란 게 정치, 경제부터 시작해서 음악, 종교, 민속, 문학, 철학, 역사 등 온갖 것을 다 아우르는 말이잖아요? 한국에 대한 연구는 다 한국학이란 이름을 붙여 자료 수집하고 중요한 것은 백과사전으로 만들고 디지털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외국어로 번역도 합니다. 다 좋아요. 그런데 연구의 내용을 살펴보니까 정말 중요한 연구 중 빠진 것이 많고 쉬운 연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 성과를 내야 하니까 그런 경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요. 논문을 써서 발표를 해야 하니까. 또 논문은 사실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에 자료가 풍부한 시대, 분야만 하게 되요. 과학, 창의성 하면 세종대왕 때가 역사상 꽃을 피우던 시절 아닙니까? 그런데 과학사 전공자들의 연구 대부분이 1800년대 이후로 치중돼 있어요. 세종대왕 때 연구가 몇 개 없어요. 삼국시대는 꿈도 못 꾸죠. 許 浚의 동의보감만 붙들고 논문이 수 십 편이 나오는 거예요. 그 노력의 최소한 절반 이상을 세종대왕 시대에 투자해 일본, 중국의 문헌도 찾아보고 문중의 고문헌들을 뒤져보면 뭔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런 노력을 안 하는 겁니다. 그렇게 찾은 자료 한 두 개로 논문을 쓸 수도 없으니까 그런 거겠죠. 사실은 그런 자료 한 두 개 찾는 게 1800년대 자료 갖고 논문 수 십 편 쓰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죠. 평가 시스템이 잘못됐어요. 그러다 보니 연구방향도 왜곡되고, 가치가 적은 연구만 되풀이되고 있고요.”

 - 방향을 바꾸셔야겠습니다.

 “적어도 연구 주제를 정할 때는 시작단계부터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분야별로 대석학 두 세 분을 모셔놓고, 각 시대별 연구 분야에서 일본, 중국 등과 비교해 우리만 빠진 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야별 평가시스템도 바꿔 연구비 지원을 해 나갈 생각입니다.”

 - 이쯤에서 한중연 소개 좀 해주시죠.

 “한중연은 한국문화의 심층 연구와 교육 등을 통해 한국학을 진흥하기 위해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입니다. 지금까지 발간한 7백여 종의 출판물과 한국학대학원을 통해 배출된 1천여 명의 한국학자들은 이 땅의 인문·사회과학 발전의 초석이 돼왔다고 자부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꼽자면 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구비문학대계 편찬을 들 수 있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2년간 3백여 명의 편집진과 3천8백여 명의 집필자가 참여해 현재까지 개정, 증보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장서각을 중심으로 한 고문서 수집과 연구 사업도 적극적으로 해 나가고 있고요. 특히 `고문서집성'은 올해로 1백권을 펴내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올해 예산은 총 3백억원이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한국학진흥사업단의 2백23억원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체 직원은 교수직 69명을 포함하여 2백10명입니다.”

 - 공간이 무척 넓고 아름답습니다.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나요.

 “당연히 시민들과 이 공간을 함께 누려야죠. 1978년 설립 당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다고 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무척 많고 아름답습니다.

 시민들을 위해 4∼6월, 9∼11월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원내 캠퍼스를 개방하는 `구름마을산책'을 운영하며, 매년 네 차례씩 강연과 공연으로 구성된 `한국학과 함께 하는 문화나눔 문화가꿈 美樓'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요.

 또 한국학대학원에서는 고전적 이해를 위한 전통식 한문 교육과정인 `청계서당'을 운영하고 장서각에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서각 아카데미와 다양한 전시와 콜로키움 등을 개최하고 있죠. 각 연구소 및 사업부문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 세미나 등 한중연에서 개최하는 행사는 대부분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 모교 교수 출신으로서 서울대 법인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걱정하는 등록금 인상, 인문학 등 기초학문 약화 문제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 쪽이 약화되는 것은 법인화가 되어도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논쟁으로 법인화 후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으로 봅니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문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서울대 등 국립대 등록금이 저렴해야했던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사립대는 거기에 대한 불만이 아주 커요. 가난한 학생들은 어떡하든 장학금을 주도록 해야 하고 집안이 넉넉한 학생들은 좀 더 내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법인화는 회계부문의 융통성을 확보해 밖에서 많은 자금을 끌어 모으고 등록금이 학교 운영에 차지하는 비율을 적게 만들 겁니다. 미국의 주립대들이 법인인데, 등록금 의존도가 25% 정도로 낮습니다.

 학생들이 걱정하는 두 가지 중에서 인문학 등 기초학문 육성은 이번에 탄탄하게 준비해 주는 게 좋고, 등록금 부분은 학생들이 생각을 바꿔서 가난한 학생들은 충분히 도와주고 능력이 되는 친구들은 학비를 더 내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 마지막으로 동창회에도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과거에 총동창회는 단과대학동창회보다 세가 약했습니다. 林光洙회장님이 정말 애를 많이 쓰셨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총동창회다운 면모를 갖게 됐고, 훌륭한 동창회관까지 세우셨어요. 그리고 林회장님이 관악언론인회도 조직해 모교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시죠. 조언보다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정리=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