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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2004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97년 한ㆍ일전, 꿈엔들 잊힐리야!

"90분간의 사투… 한번 이기고 지면 나라가 흔들흔들"
 조선일보에 입사한 지 18년째. 스포츠 레저부에서 근무한 것은 8년. 지금은 골프담당기자이지만 거의 대부분 축구 관련 기사를 써왔다. 스포츠기자로서 가장 인상에 남는 명승부를 꼽으라면 나는 지난 97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예선 한․일전 1차전을 든다. 축구 한․일전은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취재를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만큼 초조하게 승리를 기원하고, 긴장하고, 이겨서 짜릿했던 적은 없었다.  잠시 6년 전 1997년 9월 하순으로 시계바늘을 되돌려 보자. 한․일전은 연날리기만 해도 피가 끓는다는 데 하물며 월드컵 본선진출을 다투는 축구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 당시 온 국민의 관심은 도쿄 국립경기장으로 쏠렸다.
 지난 1964년 하계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인 도쿄 국립경기장은 경기 시작 전부터 온통 파란색으로 넘쳐 났다. 일본 팬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파란색 상의를 입었고, 젊은 층들은 아예 머리를 파란색으로 염색했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일본 팬들의 손에는 쓰레기 수거용 파란색 봉투가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우리의 「붉은 악마」에 해당하는 일본대표팀 응원단 「울트라 닛폰」의 선창에 맞춰 『닛폰』 『닛폰』하는 구호는 지축을 뒤흔들었다. 한국 선수들을 소개할 때마다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아, 여기는 적지구나」 새삼 내 팔뚝에는 기분 나쁜 소름이 돋아 올랐다.  경기는 그야말로 「90분간의 死鬪」라는 표현이 적합했다. 스코어는 2 대 1. 후반 중반 일본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뒤 서정원이 동점골을 뽑아내고, 이민성의 통렬한 중거리 슛 한방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당시 한 TV의 해설자와 캐스터는 「후지산이 무너졌다」는 자극적인 멘트로 이 상황을 표현했다.  국내에서 TV로 경기를 시청했던 이들은 『두 나라 선수들이 열심히 싸웠고, 한국이 이겼다』는 정도로 기억을 하겠지만 TV카메라가 미치지 못하는 그라운드 구석구석에서는 심판의 눈을 피해 주먹으로 치고, 밟고, 찍고, 까는 등 다양한 종류의 「격투」가 펼쳐졌다. 물론 이 싸움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이겼다. 이 「격투」를 진두지휘한 선봉장은 지금은 은퇴했지만 당시 「대인마크의 1인자」, 「찰거머리」라는 별명을 지녔던 노장 수비수 최영일. 최영일은 일본의 스트라이커 미우라 카즈요시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최영일이 태클을 한번 하면 골프 스윙할 때의 10배 정도 분량의 잔디가 퍽퍽 날아올랐고, 발목을 노리는 정확한 공격에 미우라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공을 받기 위해 미우라가 몸을 돌리고 자기 편 진영으로 달려갈 때에도 최영일의 징박힌 스파이크 바닥은 여지없이 상대의 종아리를 향했다. 가뜩이나 덩치가 작은 미우라가 하프라인까지 올라와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킹 카즈」라는 애칭으로 일본 팬들에게 끔찍한 사랑을 받던 미우라는 언젠가 골을 넣고 한국 벤치를 향해 자위하는 세러모니를 펼쳐 우리 선수들이 가뜩이나 별러온 상대. 하지만 자국 팬들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골 넣는 골키퍼」 김병지도 최영일 못지 않게 활약을 했다. 브라질 출신으로 월드컵 예선직전 귀화한 일본의 스트라이커 로페스는 문전 혼전 중에 점프하면서 팔꿈치로 이민성의 머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이민성은 허공에서 붕 그대로 떨어졌고,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한 김병지는 다음 번 일본 공격 때 로페스 쪽으로 공중 볼이 날아오자 두 무릎과 팔꿈치를 앞세우고 돌진해 이민성의 복수를 톡톡히 해주었다.  경기가 끝난 후 호텔로 돌아가는 기자단 버스에서 누군가가 국가대표팀의 대들보 수비수였던 조영증씨에게 물어보았다. 『꼭 축구를 그렇게 해야 하나요? 우리 수비가 너무 심한 거 아니였어요?』 조영증씨는 무슨 소리냐고 일축했다. 『이건 축구가 아니라 국가적인 승부다. 수비수로서는 저 놈 발목을 부러뜨리겠다는 각오로 무섭게 해야 상대가 겁을 먹고 내 쪽을 돌파할 생각을 못한다. 우리 때는 더 심하게 했다』 대충 이런 요지였다.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는 데 축구기자만 20년 가까이 한 선배가 『기분이 좋지?』 하고 씩 웃었다. 축구의 매력이 이런 거라나? 한번 이기고 지면 그때마다 나라가 흔들흔들하는 것 같은 종목은 스포츠에서 축구가 유일하다는 얘기였다. 귀국 길의 비행기에서는 기장이 『도쿄공습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축구대표팀께 국민을 대표해서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집에 오니 칠순이신 장모님까지 『이기고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했다. 현장 취재를 갔던 기자가 이럴진대 경기를 뛴 선수들은 얼마나 흐뭇했을까? 아직도 스포츠기자이지만 그때가 나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