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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2011년 11월] 문화 꽁트

빈 그릇을 닮아간다. 尹 智 楊(중문02 - 07)



 어느 지하철역이든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듯이, 허드렛일은 세상 도처에 있다. 배달 나갔던 중화요리 빈 그릇을 수거해오는 일 같은 하찮은 일. 음식 찌꺼기가 묻은 빈 그릇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배달 갔던 집을 다시 찾아가고, 현관 앞에서 허리를 숙여 내다놓은 그릇을 낚아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놓인 커다란 통에 그릇을 담고, 또 다른 빈 그릇을 찾아 속력을 올린다. 텅 빈 것들을 다시 채우기 위해 그릇들은 중국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나라도 빠짐없이 다시 뜨거운 국물을 담아야 한다. 다시 국물을 담기 전까지 그릇들은 검은 도로 위를 달린다. 그들은 오랜 대기 상태에 익숙하다. 빈 그릇들을 싣고서 익숙한 곳과 생소한 곳을 오가는 사이 나는 빈 그릇들을 닮아간다.


 두 뺨에는 사막의 건조한 바람이 분다. 입안에 부슬부슬한 모래가 씹히고, 시야는 뿌옇다. 황색 공기가 폐 속에 가득하고, 갈증에 목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한 발자국도 걸어가기 힘들어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아마도 내가 가보았던 곳일 것이라는 막연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낯선 사막에서 익숙한 방황을 하고 있다. 수많은 발걸음은 있으되 아직 길은 나지 않았다. 방향 없는 자국들, 흔적들, 기억들. 죽음과 닮은 태양이 수만 개의 창을 내리꽂고 있는 한낮의 사구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 가지 생각이 선인장처럼 자라나 뇌리에 꽂힌다. `그 어떤 것도 나는 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짬뽕을 담았던 빈 그릇을 다시 중국집으로 가지고 가는 일은 짬뽕을 담아 배달 나가는 일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일 같다. 하지만 내가 어두운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부딪혀 아스팔트 위에 내리꽂힌 일은, 짬뽕을 가득 담은 그릇이 아닌 짬뽕 찌꺼기가 말라붙은 그릇을 싣고 달리던 때에 일어났다. 아스팔트 위로 정신없이 나뒹구는 하얀 그릇들이 제각각 놀란 모양인지 그르렁 소리를 내며 돌기도 하고, 벌그럭 소리를 내며 엎어지기도 했다. 유난히 요란스러운 그릇들의 아우성이 들려온다. 왼뺨에 닿았던 까만 도로는 거칠고 차가웠다. 아니 시원했다, 그리고 편안했다. 부상은 계획했던 만큼 심하지는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새끼발가락이 가려웠다.

 병원의 침대란, 낮과 밤을 가릴 것 없이 꿈과 현실을 오가는 선잠을 무한정 재촉하는 요물이다. 병실 천장은 숨막힐 듯이 낮고, 아득할 정도로 높다. 하루에 스물 네 번씩 반쯤 눈을 뜬 채 어제와 오늘 사이의 간극을 헤맨다. 그때 나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어야 한다. 완전한 無. 반지하 방에 돌아와 모든 걸 끝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나 짬뽕 그릇을 중국집 주방에 온전히 돌려놓고 나서였다. 오토바이를 중국집 앞에 세워두고, 빈 그릇과도 같은 몸을 버스에 싣고서 빈 방에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다시 무언가를 건드려 세상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내가 들이쉬는 숨들은 불필요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 나의 밤들은 그 생각이 `맞다'와 `그르다'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진자 운동으로 채워진다. 내가 가진 것들은 가지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은 것들뿐이다. 내 주위를 흘러간 시간들은 사실 흘러가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는 것들뿐이다. 나에게는 마디가 없다. 한 밤의 도로에 고장 난 신호등처럼 붉은빛도 푸른빛도 없이 깜빡거린다. 그날은 빈 짬뽕 그릇을 중국집 주방에 돌려놓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소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리고 결심했다. 병석에 누워 며칠만 더 생각해보자. 나에게 유예 기간을 주자고 말이다.

 누군가 병실로 들어오는 소리에 얕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내 침대 옆의 의자에 앉는다. 같이 중국집 배달을 하는 동수. 며칠 침대에 누워 쉬면서 보험금을 타려는 나의 구차한 속셈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속셈조차도 다른 무언가를 위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무언가를 명명할 수 없을 뿐이다. 그는 탁자에 귤 한 봉지를 올려놓으면서 한 마디 내뱉는다.

 “넌 인생을 너무 쉽게만 살려고 하는 거 같다.”

 나는 말없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눈을 내리깔았다. 무어라 변명할 거리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동수의 얼굴은 병실에 가득한 한낮의 햇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상이 만약 그렇게 밝고 가벼운 것이라면…. 단 한 시간만이라도 대기 상태에 살지 않을 수 있다면…. 가끔씩은 책임감 없는 경비원처럼 이런 공상을 내 머릿속에 슬쩍 들여보내는 때가 있다. 그 순간 화살처럼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꽂힌다. 중국에 가자. 그동안 중국집 배달원 노릇으로 모아놓은 돈으로 배표를 사고, 베이징 길거리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거다.

 퇴원 날. 신도림역에서 1호선 열차로 갈아타고 동인천역에 내려 택시를 탄다.

 “선착장으로 가 주세요.”

 한산한 평일 오전. 비에 젖은 점포의 낡은 천막에는 정겨우면서도 쓸쓸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축축한 옷에 냉기가 스민다. 팔짱을 끼고서 의자 깊숙이 앉아 있으려니 나른한 졸음이 몰려온다.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도로가에서 내려 출항을 기다리는 배를 바라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고소한 비린내. 시계는 10시 즈음을 가리키고 있다.

 선착장으로 연결되는 대기실에 들어선다. 김밥을 사서 먹는 사람, 중요한 물건을 빠뜨렸는지 가방을 열어놓고 짐을 뒤적이는 사람, 여행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눈을 붙이려는 사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키만큼 높이 쌓은 보따리를 옆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톈진으로 가는 천인호 탑승이 11시 20분에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저기요.”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부른 것 같다. 돌아보니 모자를 눌러쓴 거무칙칙한 피부의 남자가 날 쳐다보고 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발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표 떨어졌어요.”

 “네?”

 나는 내 발 앞에 떨어져 있는 작은 직사각형의 종잇조각을 쳐다본다.

 “거기, 거기. 네, 그거요.”

 그는 내가 표를 주워드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매점 창구로 걸어간다.

 1997. 7. 20. 인천 → 톈진, 12:00 출항. 좌석 : ECONOMIC 침대칸 30347

 영화 속의 정지화면처럼 탑승권을 주워든 손 주위로 짧은 침묵이 흐른다. 한순간 주변이 조용해지더니 금세 한데 뒤섞인 소음들이 귓속으로 몰려들어온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본다. 내게 표를 주울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떠난 남자를 찾아본다. 그는 이 대기실을 떠난 것이 확실하다. 나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표를 다시 바닥에 살며시 놓아둔다.

 아직 비가 오고 있다. 창문 밖으로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천인호가 보인다. 선체 위로 수많은 빗물이 부딪혀 멀리서 보면 배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같다. 초록색 갑판 위에는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몸집에 비해 겁이 많은 배가 먼 바다로 뛰어들기 싫어하는 걸 다독이고 있는 중이다. 빽빽한 빗줄기 사이로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짐을 들고 대기실을 떠나기 시작한다. 탑승 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요란하다. 한국어로 한 번, 중국어로 한 번, 영어로 한 번. 어느새 배의 입구에서부터 긴 줄이 생겼다. 사람들은 우산을 쓴 채 탑승권과 여권을 준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 사람들은 스물 네 시간의 항해가 끝났을 때 중국 톈진의 땅을 밟고 있을 것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 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 장사를 하려는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로 데려다줄 배가 있고, 배가 항해할 뱃길이 있다.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배는 원래의 출항 시간인 12시를 훌쩍 넘겨 1시 반이 거의 다 돼서야 출발했다. 뿌웅, 뿌웅…. 어디선가 들어 본 것처럼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꿈처럼 아늑하고 승리의 순간처럼 두근거린다. 그리고 텅 빈 대기실에는 떠나지 못한 시간이 고여 있다. 출항 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뒤 잉여의 시간만이 남는다. 다시 남겨졌다는 것, 어차피 나는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 뒤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근잘근 곱씹고 나면, 조금이라도 앞으로 꿈틀거려볼 만한 기력이 트림처럼 올라온다. `너는 인생을 너무 쉽게만 살려고 하는 것 같다.' 동수의 핀잔을 떠올려 본다. 그래, 뭐라고 하건 상관없다.

 허름한 대기실 천장에서 오래된 선풍기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선풍기 날개에는 시커먼 먼지와 때가 묻어있다. 오른팔이 가려운가 싶더니 배가 통통한 파리 한 마리가 웽 하고 날아간다. 등받이가 없는 매점 의자에 앉아 꼬치 오뎅을 쥐어들고 먹는다. 뜨거운 오뎅 국물에 그동안의 긴장이 사르르 녹는다. 무언가를 해치웠다는 느낌. 오뎅 한 꼬치는 임무 완수에 대한 나름의 보상인 셈이다.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선착장으로 통하는 문 반대편의 대기실 입구를 힐끗 쳐다본다. 그밖에는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어차피 채워지지 않을 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대기실의 오후에 고여 있는 시간과 닮았다. 앞으로 며칠간은 그 사실에 대한 확인에서 알량한 위로를 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빈 그릇들을 담으러 갈 것이다. 그것들은 내가 달릴 시간들만큼 가볍고 공허한, 그리고 깨지기 쉬운 것들이다. 완전한 無와의 한없는 줄다리기는 눈치 챈 이 없이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