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2011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서울대학교총동창회 林光洙회장

- 장학빌딩 준공식이 성황리에 개최됐습니다. 33만 동문의 숙원이던 새 동창회관을 준공하게 된 데 대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33만 서울대인이 이룩한 쾌거라고 생각합니다. 장학빌딩 건설이야말로 서울대인이 모래알 같다는 속설을 싹 없애버린 증거물이죠. 또한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모교 발전을 위해 후배들을 훌륭히 양성해야겠다는 열정의 결정체라 하겠습니다. 총동창회장으로서 약속을 이행했다는 뿌듯함도 있습니다만 서울대인의 일원으로서 갖는 자긍심이 더 큽니다.”
- 장학빌딩을 건립하겠다는 결심은 언제부터 하셨고, `SNU 장학빌딩'이란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는지.
“건립 논의는 2000년 초 당시 모교 李基俊총장이 관악캠퍼스 안에 동창회가 들어오면 모교와 보다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협력관계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추진된 건 2002년 제가 제19대 총동창회장에 취임하면서 서울대인의 위상에 걸맞는 새 동창회관을 건립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면서부터죠. 처음엔 모교 교수회관(前관악CC 클럽하우스) 자리에 5백석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신축해 그 중 일부를 총동창회에서 사용하는 안을 놓고 모교와 협의했으나 모교로부터 동창회관 부지 할애가 어렵다는 통보가 왔어요. 고심 끝에 舊회관을 헐고 현 위치에 재건축하는 계획을 세웠지요.
새 동창회관의 명칭은 2004년 9월 22일 제2차 회관건립위원회에서 현재 KBS사장으로 있는 金仁圭논설위원이 제의한 것을 받아들여 명명하게 됐습니다.”
- 건축 공사비 등을 많이 아끼셨다고 하던데.
“가장 먼저 부딪친 건 재건축 관련 법이었어요. `재개발지구에 건축된 건물은 30년 이내엔 재건축할 수 없다'고 돼 있거든요. 하지만 저와 저희 회사 실무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04년 8월 당국으로부터 `재개발이 완료된 지역이라도 상업 또는 업무지역에 한정해 도시 주변이 급속한 발전과 변화가 있고 건물 크기를 극대화하는 경우, 재건축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얻어냈죠. 그 후 2년 6개월 간의 도시계획 변경 승인을 거쳐 2006년 4월 마포구청에 재건축 시행인가 신청서를 접수시켰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같은 해 7월 1일부터 개정된 세법에 따라 기반시설 부담금(개발이득세)이 부과된다는 거예요. 백방으로 노력해 기한을 하루 앞두고 건축허가를 받아냈죠. 덕분에 25억원의 개발이득세를 절약하게 됐습니다.
또 시공계약서상 30%의 선수금을 받게 돼 있지만 제가 시공하면서 동창회의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아 은행 차입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받지 않았어요. 동창회로선 은행금리로만 3년간 13억5천만원을 아낄 수 있었던 셈이죠.
여기에 지하철공사 요청에 의한 공법 변경과 설계서상 미계상 추가공사비 12억8천9백만원도 시공사에 부담시킴으로써 동창회가 총 51억3천9백만원의 이득을 보게 했죠.”
- 비교적 짧은 기간에 7천명의 동문이 적극적으로 건립기금 모금에 참여했는데, 이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이 남다르셨을 듯합니다.
“2005년 10월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장학빌딩 건립기금 모금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제가 먼저 50억원을 출연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항간에선 서울대인들이 과연 3백억원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겠냐며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서울대인의 단결력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모금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인 2006년 12월에 이미 목표액인 3백억원을 달성했죠. 최종적으로 참여한 동문은 7천2명으로, 총 4백8억4천2백54만원이 모금됐어요. 이는 서울대인들이 모교와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협력하고 합심했기 때문에 나온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모교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장학빌딩 건립기금을 출연해주신 모든 동문님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10억원 이상 출연한 분이 19명이나 되는데 비결은.
“모금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지만 목표액의 달성 여부는 사실상 거액을 출연하는 분들이 얼마나 계시느냐에 달려있어요. 그래서 저는 거액을 출연해주실만한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드리고 또 직접 만났습니다. 만난 자리에선 장학빌딩 건립 목적을 설명하고, 기금을 출연해주신 분 명의의 특지장학회를 설립, 출연금을 납부한 날부터 은행금리를 지급해 개별장학금으로 관리할 수 있고, 건물이 완공되면 임대료를 극대화해 은행금리 이상을 드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이것이 많은 동문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갔다고 생각합니다.
출연자는 자신이 원하는 재학생을 선발해 직접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며, 일회성 기부와 달리 출연자 명의의 장학회가 운영되므로 후손들이 계속해서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어요. 뿐만 아니라 출연해주신 분의 부조를 명예의 전당 벽면에 새겨 그분들의 업적을 영원히 기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설명에 거의 동감하고 그 자리에서 직접 거액을 출연해주셨고, 이런 제 제안이 알려지자 2006년 2월 매일경제신문에 `서울대동창회 모금과 같이 세금에도 명예를 줘라'라는 칼럼이 실리기도 했죠.”
- 서울의 오피스빌딩 공실율이 높은데 짧은 시간 안에 전 층의 임대를 마무리하신 노하우는 무엇인지.
“최근 전반적인 경기하락으로 서울시내 빌딩의 공실률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일부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하게 되면 그 부처가 사용하던 빌딩도 공실로 남게 되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장학빌딩을 임대한다는 게 매우 힘들었어요. 이런 시기일수록 한 번 입주하면 쉽게 빠져나가기 힘든 업체가 들어와야 수입목표액이 달성되고 장학금과 연구활동비 지원도 차질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판단해 그런 업체 위주로 물색했어요. 그래서 저희 회사 건물관리팀에 한 번 설치하면 이전하기가 쉽지 않은 고가의 통신장비 같은 시설을 설치해야 할 업체들을 타깃으로 삼으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 통신 관련업체들을 유치하는데 성공했죠.”
- 임대 수익금의 규모는 얼마나 되며,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현재 장학빌딩은 전체가 입주를 완료했습니다. 2층의 `Veritas Hall'과 관리비용을 제외한 순수입은 연간 40여 억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돈은 모교 재학생의 장학금과 교수들의 연구활동비 등으로 지급할 예정입니다.”
- 명예의 전당은 언제쯤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명예의 전당은 미술대학동창회에 위임했습니다. 모교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서 실내장식을 공부하고 인천 국제공항 실내디자인을 설계한 분이 총 책임자로 작업 중입니다. 현재 실시설계가 끝나 지난 20일 준공식에서 브리핑을 했고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명예의 전당엔 건립기금을 출연해주신 분들의 명판과 거액출연자 19명의 부조 동판이 벽면에 새겨지며, 서울대와 총동창회의 역사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밀 예정입니다. 또한 음악회, 미술전시회, 출판기념회 등 각종 이벤트와 모임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며 동문들이 오셔서 편히 쉴 수 있는 커피숍도 마련될 것입니다.”
- 결혼식장 등 동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는 의견도 있던데.
“당초 2∼4층을 예식장으로 설계해 시공 중이었으나 오피스 빌딩에 예식장이 입주하면 다른 층의 일반 사무실 임대에 어려움이 많고, 근처 신축 빌딩에 대형 예식장이 오픈할 예정이어서 예식장 수지타산도 맞추기 힘든 상황이었죠. 예식장 업체 입주 희망자도 별로 없었고요. 그래서 과감히 예식장을 포기하고 일반 사무실로 임대할 계획을 세웠고, 18층에 설치하려던 명예의 전당도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판단 아래 2층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1층도 처음에는 미술전시관으로 활용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취소돼 현재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와 있죠. 추후 필요에 따라서 동문들의 이용 공간을 차츰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 장학빌딩에 입주한 음식점을 동문들이 이용할 경우 할인혜택을 달라는 건의도 있습니다.
“2층에 마련할 `Veritas Hall'은 음료를 30% 이상 할인해드릴 예정이고, 1층에 입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지하 1층의 중국식당은 그 업소의 영업수입에 따라 할인혜택을 드릴 수 있도록 현재 식당 대표와 협의 중입니다.”
- 장학빌딩 외에 모교의 개학 연도를 찾은 것도 큰 업적입니다. 이 일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해외에서 심의, 발표하는 명문대 순위에 대학의 역사와 전통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과 해외의 명문대학 모임에 참석하면 모교의 짧은 역사로 인해 항상 제일 마지막에 호명되거나 소개되는 등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학교의 역사가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7월부터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개최하고 동창회보에 모교원년 찾기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죠.
그 결과 2009년 3월 20일 정기총회에서 모교 개교 원년 재조정 건의안을 상정해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이를 모교에 건의했어요. 모교에서도 1년 6개월 동안 각종 설명회와 공청회를 거쳐 지난해 10월 7일 최종 의결기구인 평의원회에서 `서울대는 종합대학으로 1946년 통합해서 개교했지만, 학문 분야에 따라 대학교육 연원이 1895년에 시작됐으므로 1895년을 개학 연도로 한다'는 안건을 의결하고, 모교 총장이 10월 14일 개교기념식에서 이를 선포함으로써 서울대는 세계 명문대학에 손색 없는 1백16주년이라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말 사전에 보면 개학이나 개교는 같은 뜻의 말입니다. 세계 명문대학의 개교 원년을 조사해보면 참으로 미미한 상태에서 시작했죠. 대표적인 예로 하버드대는 목사 양성을 목적으로 1명의 목사가 6명의 목사 지원생을 교육한 해를 개교 원년으로 삼고 있어요.”
- 일부 교수들이 개교 원년 찾기에 반대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던데.
“대학은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곳입니다. 서로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죠. 그래서 동창회 건의를 채택하는데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모교 국사학과 李泰鎭교수님의 개교 원년 재조정에 관한 연구보고서와 동문들의 칼럼을 책자로 인쇄하여 7천부를 배포하고 교수협의회, 학장회의, 설명회, 공청회, 평의원회 등 많은 협의기구를 거쳐 학내의 일치된 합의를 도출해낸 것입니다. 이 합의된 내용은 세계 명문대학의 개교 원년과 비교해서 당당한 것이고, 조금도 손색이 없으며 자랑스러운 것이란 말씀을 드립니다.”
- 동창회에서는 개학 연도를 표기하는데, 아직 모교에서는 이에 대한 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교 웹사이트에서 서울대의 기원을 1895년 5월 6일 법관양성소로 표기하고 있고, 이는 우리의 연구보고서 내용과 일치합니다. 단지 모교는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법인화에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개교기념일이나 안내 팸플릿까지 세부적으로 체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이를 알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시정하도록 할 것입니다.”
- 광화문 교보문고의 외국어코너에서 책을 읽고 계신 모습이 동문들에게 목격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으신다는데 한 달에 보통 몇 권 정도 읽으시는지.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 책을 읽는 편이죠. 광화문 교보문고는 시간이 나면 수시로 즐겨 찾는 곳입니다. 주로 일본에서 발행되는 건강관련 서적이나 역사, 문학, 시사잡지 등을 읽습니다. 최근에는 `암 치료약 개발이 완료됐다'라는 서적을 읽었는데 아주 감명 깊은 내용이 들어 있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공부해보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생각도 다양해져 사리 판단에 큰 도움이 됩니다.”
-뵐 때마다 건강하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곧 겨울이니 감기 예방법과 함께 회장님만의 건강법을 들려주신다면.
“사람의 건강은 혈액을 맑게 하고 체온을 높게(36.5도) 유지하고, 몸의 균형상태를 잘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적당한 운동, 영양이 고른 음식을 과식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휴식이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저는 젊었을 때부터 계속해 남들보다 운동량이 많은 편인데 오전 중에 1시간 30분 이상 요가와 간단한 철봉, 역기를 하고 1시간 정도 남산을 워킹합니다.
감기에 안 걸리는 비법은 안면 마사지입니다. 양 손바닥을 36번 정도 열이 나게 비빈 후 코와 인중, 얼굴을 하루에 36번 이상 골고루 되풀이해서 마사지하면 됩니다. 이렇게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고, 감기나 몸살로 병석에 누워본 적도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피곤하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으며 해외 장거리여행 때도 시차 적응을 잘 하는 편이죠.”
-모교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하신데 회장님에게 서울대는 어떤 곳인지.
“서울대학교는 1946년 8월에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 공포로 개교했지만, 저는 이미 舊교육제도에 따라서 舊制 중학교 4년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고교 2·3학년 과정을 서울대에서 이수하고 공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구학제에 따라 6년간 다닌 셈이죠.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여러 방면에서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광복 직후에 좌우의 사상투쟁과 동족상잔의 6·25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죠. 그런 와중에도 저는 다행히 면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어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저에게 있어 모교는 `서울대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국적은 바뀌어도 모교는 바뀌지 않는다' 이 세 가지 모토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 서울대가 내년이면 법인으로 바뀌는데 동문들이 법인화된 모교를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인화는 모교의 자율권 확보와 재정 확충을 가능케 합니다. 23년 전부터 연구검토하고 추진해온 숙원사업이기도 하죠. 법인화는 모교를 세계 초일류 명문대학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문 여러분도 발전기금 모금에 참여하는 등 모교의 추진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모교 법인화에 발맞춰 동창회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획 중인 사업은.
“동문들에게는 모교의 발전기금 이외에는 부담을 드리지 않도록 자제하고 모교를 세계 속의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동문들의 모교 사랑 열기가 식지 않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나가고자 합니다. 이의 일환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동창회가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동창회의 세계화를 향한 국제적 제휴 및 교류도 활발히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또 모교와 함께 하는 동창회, 동문에게 다가가는 동창회로서 동문간 휴먼네트워크 체제를 더 강하게 구축하고 동문과 모교를 위한 실질적인 사업을 적극 펼쳐갈 계획입니다.”
- 서울대 역사기념관 건립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개교 원년 찾기 운동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고, 모교에서도 학교의 역사기념관 건립을 희망하여 건립하기로 하고 건립 입지는 모교의 협조로 내정된 상태입니다. 건축 설계의 전체적인 윤곽은 됐으나 타교의 경우 전면 활용이 안 되고 개점 휴관 상태라 모교에서 전시 역사자료의 점검과 전시 물품 확인 후 세부 설계에 착수하기로 하고 연구팀 구성을 모교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장학빌딩 건립기금을 출연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특지장학금을 출연해주신 분들에게는 3월까지는 은행금리 3.8%를 지급했으나 4월부터는 6% 금리를 지급해서 장학금을 40% 증액 지급하게 됩니다. 앞으로 장학빌딩은 서울대학교를 세계 속의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지원센터의 역할을 하게 되고, 1백년 뒤에도 건재할 수 있는 훌륭한 동창회관으로 동문 가족은 물론, 홍보 차원에서 일반인들까지 편안한 만남과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서울대인들이 애교심이 강하고 더 이상 모래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돼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金南柱기자·정리 = 玄智愛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