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04호 2011년 11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2020년 이후 준비하는 정치지도력



 얼마 전 KDI에서 열린 국가정책 고위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왜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가?'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때 한 여성 공직자가 “우리 여성들이 편히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도 문제지만 아이가 커서 잘 살 수 있다는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충격적이었다.

 최근의 화두는 복지 논쟁이다. 무상급식으로부터 불거진 복지논쟁이 심지어는 반값등록금으로까지 번져 온통 나라가 시끄럽다. 가난한 아이들만 무상급식을 주면 이 아이들에게 낙인이 찍히니, 아예 부잣집 아이들까지도 밥을 주어 아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한다는 심리적인 면까지 고려한 주장이다.

 또 전에는 대학가는 것이 모든 사람의 꿈이었던 시절에서, 이제는 다수 국민이 대학으로 가는 시대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그 학비도 절반은 국가가 대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말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꿈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많은 사람은 내년 총선·대선을 의식한 정치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그럼 왜 하필이면 이 시기에 복지 포퓰리즘이 나왔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그 원인을 풍요 시대의 산물이라고 본다.

 첫째는, 국가 경제면에서 볼 때 지금 우리나라가 과거 어느 때보다 부강해졌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 경제가 세계 10위권이고,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등 산업분야에서는 세계 선두 그룹에 속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력을 갖춘 풍요 시대이다.

 둘째는, 인구학적 면에서도 풍요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이 국가 총부양률이 가장 낮은 시기이다. 총부양률은 생산 가능 인구 1백명에 대한 아동과 노인의 비율을 말한다. 아동부양률과 노인부양률을 합한 것이다. 1970년대만 해도 아동부양률이 80이고 노인부양률이 10이어서 총부양률은 90이었다. 즉, 15세부터 64세의 생산 가능 인구 1백명이 부양해야 하는 사람이 15세 미만 아동 80명과 65세 이상 노인 10명을 합쳐 90명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2020년까지 아동부양률은 계속 떨어져 20명이 되고 계속 이 수준을 이어갈 것이 예측된다. 반면 노인부양률은 서서히 증가하다가 2020년에 20명을 기점으로 이후 급상승해 2050년에는 70명 수준이 된다.

 2050년에는 아동부양률 20명과 노인부양률 70명을 합쳐 총부양률이 90명으로 아동과 노인 구성이 뒤바뀐 양상으로 되며, 총부양률이 높았던 197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 갈 것이 예측된다.

 2020년 이후에는 부양률의 증가로 국가발전과 국민 생활에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다. 아동부양비보다 노인부양비가 세 배가 더 높으니 2020년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큰 쓰나미가 올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잘 준비해 2020년 이후에 올 어려운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흥청망청 있는 돈을 써 버릴 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냉철히 생각할 때이다.

 성경 창세기에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7년간의 풍년 뒤에 올 흉년을 미리 알고 잘 대비해 민족을 살렸던 이야기가 있다. 우리도 10년 후에 올 어려운 시기를 잘 대비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때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또 부담률이 낮아졌다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재원을 낭비해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지 않다. 향후 십 년이 한국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요셉과 같은 미래를 준비하는 정신으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