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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2011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黃박사를 어떻게 품을지



 黃禹錫박사를 만났다. 대통령의 줄기세포 지원정책이 나온 것을 계기로 근황이 알고 싶었고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는 “연구결과로만 말하고 싶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생 인터뷰 안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한번 만나나 달라”고 사정(?)한 후 만남이 이뤄졌다. 처음 만남이었다. 대화시간이 길어지며 인터뷰를 해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혹독한 비난과 검찰 수사를 겪어내면서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지만 연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6년을 노력해온 진정성과 절절함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평온해 보였지만 내면에는 아직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각한 불면증을 앓아왔으며 지금도 산책을 나갈 때는 남들 눈이 두려워 밤 12시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간다는 대목에서 기자는 정점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 깊은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어렵사리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그는 모처럼 마음을 열었고 언론사상 최초로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 전면 인터뷰(상·하), 4면 톱기사로 4일 연속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아직도 기자의 머릿속에는 그의 한 마디가 생생하다. “나는 마이너리티였다”는 고백이었다. 최고 명문고(대전고)를 나왔으며 최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 교수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새삼 우리 사회가 짐 지워주는 차별의 상처가 이토록 깊은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콤플렉스는 성취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영혼을 옭아매는 굴레도 된다. 黃박사 역시 콤플렉스를 藥으로 삼아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그것이 달성됐을 때 스스로 취해버렸다. 인터뷰에서 “나는 건달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국민 앞에 죄인이 됐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4년여 법정다툼 끝에 黃박사는 논문조작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연구책임자였던 박사의 책임은 크다고 본다. 기자는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黃禹錫 트라우마'에서 조금 벗어난 게 성과라면 성과다.

 나는 `황빠'도 아니고 `황까'도 아니지만 모든 일을 국가에 이익이 되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차세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세계가 동분서주하고 있는 시대다.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인재 한사람이 정보통신(IT)업계의 지각변동을 이뤄내는 시대이기도 하다. 세계는 IT를 넘어 바이오 혁명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특히 서울대인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우리 서울대와 서울대인이 먼저 결단을 내려 黃박사를 어떻게 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그에게 연구기회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