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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호 2011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외교부 독도법률자문 鄭 載 玟판사




 `현직 판사가 소설책을 쓰고 외교부에서 일을 한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이 말에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실 확인도 할 겸 지난 8월 25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클럽에서 문제의 주인공인 鄭載玟(법학96 - 01)동문을 만났다. 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에 있다가 서울 광화문에 있는 외교통상부로 출근한 지 4일 됐다는 그는 길을 헤맨 듯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판사인 鄭동문이 외교통상부에서 일하게 된 사연은 독특하다. 지난 2009년 河智還이란 필명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 소송이 벌어진다는 내용의 역사추리소설인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출간했는데, 이 책을 읽고 그의 해박한 국제법 지식에 깊은 인상을 받은 외교통상부 金星煥(경제72 - 76)장관이 독도법률자문으로 파견 요청을 해온 것이다. 행정부에서 특정 판사를 지정해 파견 요청을 해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 고심했으나 鄭동문은 결국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처음 파견 요청을 받았을 때는 극히 이례적인 거라서 감사하기도 하고, 제 책을 평가해준 거니까 부담도 됐어요. 주변에서 기대도 많이 하는데 독도 문제가 굉장히 예민하잖아요. 그래서 많이 어려워요. 또 최근에 불거진 문제들이 있어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하는데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법무관으로 국방부 국제정책팀에 근무하면서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그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를 답사하고, 규슈의 가야 유적지를 보기 위해 일본을 다녀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여러 사료들을 탐독하느라 책이 완성되기까지 4년 정도가 걸렸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긴 시간이 투입된 만큼 `독도 인 더 헤이그'는 문장과 구성이 탄탄하고, 극적 재미가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교 재학시절 단편소설을 쓰는 등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鄭동문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 능력은 안 되더라도 글로써 가치 있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河智還이란 필명도 그가 직접 지었다. “지혜를 물처럼 공유하자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제42회 사법고시 합격 후(사법연수원 제32기 수료)에 쓴 `농땡이 사법연수생의 짜장면 비비는 법'은 사법연수생이 갖는 고민과 경험들을 솔직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빡빡하고 갑갑한 일상 속에서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글쓰기는 그에게 있어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 법도 한데 그는 “판사와 소설가의 일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 재판은 숱한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 하고, 소설은 픽션을 통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둘 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잘 발휘된 작품은 그가 지난 2010년 12월 발표한 `소설 이사부'다. 이 책은 동해와 신라 역사의 핵심 인물인 이사부를 다룬 소설로, 미실의 시아버지 이사부를 통해 우산국(울릉도) 정벌과 신라 권력 핵심층의 정치 판도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우연히 TV를 보다 이사부에 주목하게 됐다는 그는 이후 각종 문헌을 뒤지며 신라 전통신앙인 풍류도와 당시 크게 융성하기 시작한 불교, 그 씨앗이 된 이차돈의 순교 과정, 중앙권력과 지방호족 세력간 갈등과 정치권력을 둘러싼 암투 등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썼다.

 그의 이런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일까. 이 책은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학상 당선작으로 뽑혔다. 상금 1억원이 걸린 문학상이라 쟁쟁한 경쟁작들이 많았지만 그는 당당히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을 두고 “독도와 동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 이 지역의 중요성을 잘 각인시키고 있어 반향이 클 것이다. 특히 이야기 전개과정이 흥미로워 향후 드라마나 영화로도 제작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4개월 동안 마치 고시공부를 하듯이 글을 썼어요. 당시에 대한 자료가 얼마 없어 `화랑세기'를 많이 참고했죠. 주말부부라 격주로 서울에 오는데 서울에 올라오지 않는 주는 주말 내내 집에만 틀어박혀 집중해서 글을 썼어요.”

 그는 상금 중 일부인 5백만원을 포항시 장학회에 기탁했다.

 이쯤 되니 그가 문학이 아닌 법학을 전공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웃으며 “촌에서는 공부 잘하면 모두 법대에 가라 한다”고 말했다. 법학이 답답하고 딱딱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나름 재미있었다고.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독창적인 글을 쓰는 그에게 다음 소설에 대한 계획을 묻자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법관으로 일하면서 책을 쓴다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미리 계획하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판사를 할 때는 밥 먹을 시간도 없었는데 외교부에서도 많이 바쁠 것 같아요. 언제까지 제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건이 마련된다면 사회 현상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이제 그는 앞으로 1년간 외교통상부 국제법률국 영토해양과에서 연구법관의 신분으로 일하며 독도 문제와 관련한 법률 자문과 정책 입안을 할 예정이다. 모교에서 국제법 석사학위를 받고,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에서 현장 통역 요원으로 일하는 등의 경력을 가진 그이기에 외교부에서의 활약도 자못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제가 썼던 책이 계기가 돼 지금의 좋은 결과로 이어졌듯이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모든 일에 정성을 다했으면 해요. 사회가 안정되면 기회라는 게 잘 안 생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가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 나중에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