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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호 2011년 8월] 문화 꽁트

어느 사랑 - 姜 信 盛(영문55 - 60)



 지난 12월 중순 경, 하루는 아침 일찍 내 핸드폰이 울렸다.

 “무슨 전화가 이렇게 이른 아침에….”

 중얼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선생님, 저 이숙자에요. 그간 안녕하셨어요?”

 맑고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으나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대답도 못하고 어정쩡하고 있었다.

 “절 기억하시겠어요?”


 “······”

 “왜, 지난 달 용천 문인협회에서 충남으로 여행 갔을 때 함께 갔었지 않아요?”

 생각해 보니 그 협회에서 홍성에 있는 한용운 스님의 생가를 방문했을 때 동행한 30여 명의 문인 가운데 시인이라고 하든가 시 수업을 한다든가하는 중년 여인들과 인사를 교환한 적이 있었는데 전화 건 사람이 그 중의 한 여인 같았으나 얼굴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저, 시를 쓰신다고 했던가요?”

 “맞아요. 선생님 기억력 좋으시네요. 저, 안 시인의 지도를 받고 있어요.”

 내 얼추잡은 짐작이 맞아떨어진 것이 내게도 대견했다.

 “저, 선생님 존경해요. 지금도 소설 쓰고 계셔요?”

 어쭙잖은 나를 소설가로 존경한다니 과분한 말이라 또 어정쩡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빈 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고 나도 팬이, 그것도 묘령의 여인 팬이 생긴 것이 자못 흐뭇하기도 했다.

 “참, 죄송하지만 선생님이 쓰신 `출타'란 소설 한 권 보내주실 수 없으세요?”

 “아니, 내 소설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왜 기억 못해요.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저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어요.”

 부탁 받은 책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숙자 일은 다른 일상의 일에 매여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보름쯤 후에 또 전화가 왔다.

 “선생님 소설 잘 읽었어요. 아주 감동적인 소설이에요.”

 “내 소설을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소설을 재미있고 깊이 있게 쓰시는 선생님을 알게 된 게 큰 영광이에요. 존경합니다. 사랑해요.”

 이제는 사랑까지 한다니 어정쩡한 마음을 넘어서 쑥스럽기까지 했으나 그래도 마냥 싫지만은 않아서 곤혹스러웠다. 그 후에도 몇 번 전화가 왔다. 그때마다 겨울철 감기 조심하라는 안부 끝에 “존경해요, 사랑해요”를 달기를 잊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한 번 꼭 뵙고 싶다고 하면서 시간을 내달라고 졸랐다. 성큼 내키지 않아 미루었는데 3월 중순 또 전화가 왔다.

 “선생님, 개나리 피는 화사한 봄이 왔어요. 이제는 꼭 뵈어요. 제가 점심 살게요. 아니면 선생님이 사주시던가. 선생님 사랑해요.”


 막무가내 식으로 불러대는 `사랑해요'를 들을 때마다 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얼마나 나를 많이 생각하면 나는 한 번도 누구에게 해본 적이 없는 그 하기 어려운 사랑이란 말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할까 지레짐작하고 한 번 만나보기로 했다. 물론 개나리 피는 화사한 봄이란 말이 풍기는 핑크 무드가 내 마음에서 약속을 충동질한 것도 사실이었다.

 만나기로 된 날 나는 약속 장소로 갔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농협은행의 앞마당이었다. 길가에 붙은 시멘트 마당 끝에서 한참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길을 건너오면서 “선생님,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하며 달려오는 여인이 있었다.

 비교적 작은 키에 몸이 부한 50대 초반의, 그런대로 볼품이 괜찮은 편인 여인이었으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아왔던 나를 사랑하는 여인 숙자의 상과 동일시하기에는 좀 실망스러운 풍모였다. 그 순간 나는 저 여인이 오 헨리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그 노부인이기를 바랐다.

 헨리 소설의 주인공 `나'는 전혀 모르는 한 여인과 오랜 동안 펜팔을 해왔다. 편지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문학이나 생활철학에 관한 취미가 같은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그들 사이에 은근한 애정을 길러왔다. 드디어 둘은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남 주인공이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노부인이 만면에 쭈글쭈글한 웃음을 띠면서 다가왔다.

 “저 골드버그 씬가요?”

 그 순간 그는 마음속에서 뭔가 퉁 내려 앉는 것을 느꼈다. 그가 생각해왔던 편지를 주고받은 여인은 젊은 여인이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는 전혀 의외의 상황에 그는 내심 실망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았다. 노부인이면 어떤가. 소중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지난 1여 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그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성의와 정의로 맺어진 그 인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태연을 가장하고 앞으로 성큼 나아가 노부인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상했다. 노부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빤히 쳐다보더니 의외의 말을 했다.

 “젊은 양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저 뒤에 오는 젊은 색시가 곧 자기가 온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길래 내가 먼저 와서 그 말을 전하는 것 것뿐입니다.”

 그는 노부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화사하게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오고 있었다. 다 온 여인은 우선 부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부인, 심부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젊은이들, 이제 둘이 잘 해보시오. 나는 이만 가겠소.”

 노부인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도 숙자 어깨너머를 기웃거리며 찾아보았으나 화사하게 아름다운 여인은 눈을 씻고 보려고 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실망감을 들어내어 그간 우리 사이에 은근히 쌓여온, 그녀 나름대로의 우리의 사랑을 망가트릴 만큼 교양 없는 처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골드버그 씨처럼 자신을 다스리면서 애써 그녀를 반가이 맞이했다. 우리는 인근의 회전식 횟집에 가서 점심을 들었다.

 “선생님, 공직 은퇴하시고 나서 다른 일 하시는 게 있으세요?”

 “다른 일이라니, 나 같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무얼 또 하겠소. 그냥 소설이나 쓸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그럼, 높은 공직에 계시는 동안 돈 많이 벌어놓으셨어요?”

 이런 말을 가끔 듣는데 그럴 때면 참 억울했다. 고위공무원은 치부한다는 사회통념, 나와는 상관없는 그 왜곡된 통념이 종종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예로 친구모임 같은 곳에 가면 보통 나보고 술을 사라고 했다. 공무원 고위직에 있었으니 돈을 많이 벌어놓았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해서 한 턱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득부득 우기면 자린고비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 할 수 없이 한 턱 쓰는 경우가 많았다. 숙자도 그런 사회통념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공무원이 월급만 받는데 어떻게 돈을 벌어요.”

 숙자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선생님은 너무 고지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번 돈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노후에 돈 걱정 않고 편안히 지내실 대책을 세우셔야 해요.”

 “대책이라니?”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선생님이 점심은 샀으니까 제가 커피는 살게요. 절 따라오세요.”

 우리는 횟집을 나왔다. 테헤란로는 여전히 북적거렸다. 길가로 높은 빌딩이 여전하고 그 아래로 사람들, 차량들이 분주히 왔다갔다 했다. 세상이 변화를 향하여 분분했다. 그 바쁜 물결을 숙자는 잘 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쳐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숙자의 안내에 따라 10층 건물 밑에서 승강기를 타고 8층에 내려 방 한 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들어간 곳이 커피점이 아니고 개인 사무실이었다. 김 부장이라는 자개명패가 놓여있는 테이블이 있고 그 앞으로 고급소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을 말했더니 숙자는 걱정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손을 아래로 까는 제스처를 하면서 나를 제지했다.

 곧 젊은 여인 김 부장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는 긴 지시봉으로 벽에 걸린, 원주 인근을 보여주는 대형 지도를 짚으면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2015년까지 원주 일대가 1백62만평에 13개 공공기관, 산업·관광단지 등이 입주하는 중부권 핵심 기업도시로 발전하니 여기에 땅을 사놓으면 몇 년 내에 서너 배의 돈을 버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면서 투자하라고 권했다. 이숙자는 한 술 더 떠 자기와 함께 원주에 가보자고 했다. 김 부장은 나 같은 물주를 어디서 구해왔냐는 듯 숙자를 추겨 세우면서 그녀의 호객실력을 대견해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왔다. 숙자가 뒤따라 나오면서 코맹맹이 소리를 했다.

 “선생님, 꼭 투자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선생님, 사랑해요.”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승강기를 탔다. 幻을 환으로 보지 못하는 이 愚癡의 업보를 어떻게 할거나, 씁쓸히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