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호 2011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영화 음악감독 李 智 洙동문

충무로의 블루칩이란 비단 배우나 감독에게만 쓰는 수식어는 아니다. 지난 7월 27일 서울 안국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李智洙(작곡00 - 06)동문은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음악감독이다.
지난 2002년 불과 21세의 나이로 드라마 `겨울연가'의 OST작업에 참여한 李동문은 영화 `올드보이'의 우진 테마로 2004년 대종상영화제와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수상하고,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으로 2009년 한국뮤지컬대상 작곡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전통예술부문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드라마 `봄의 왈츠', `여름향기', `겨울연가'에 이어 영화 `올드보이', `실미도', `안녕, 형아', `혈의 누' 등 그의 손을 거쳐간 드라마와 영화는 셀 수 없다. 최근에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걸고 제작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음악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다.
천재란 아마도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남들은 평생을 해도 할까말까한 일을 그는 20대에,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이뤄냈다.
지난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 팀에서 피아노 연주 장면에 나올 배우들의 손을 대신할 대역을 찾고 있었다. 당시 모교에 재학 중이던 李동문은 피아노전공 친구와 함께 대역을 하게 됐고, 그는 배우 裵勇俊의 손 역할을 맡았다.
극 중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준상(裵勇俊)이 유진(崔智友)에게 피아노 곡을 들려주는 장면이었는데 그는 촬영현장 즉석에서 자신의 자작곡인 `처음'을 피아노 연주로 선보였다. 다행히 이 곡은 尹錫瑚감독의 마음에 들었고, 방송전파를 타는 영광과 함께 OST에도 실렸다.
“처음부터 영화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언젠가 한 번쯤은 하겠지'란 생각만 갖고 있었죠. 당시 학생이었으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충실했는데 겨울연가를 하면서 그쪽 스태프를 많이 알게 됐고, 올드보이 음악감독님의 연락을 받으면서 우연찮게 계속 이쪽 일을 하게 됐어요.”
그가 작곡한 `올드보이'의 우진 테마곡인 `Cries and Whispers'는 국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올드보이'로 영화제 시상식에 처음 가봤다는 그는 “그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고 얘기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안녕, 형아'는 그에게 최연소 음악감독의 타이틀을 붙여준 작품이다. 보통의 음악감독들이 30대 중·후반인 것을 감안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저는 학생이었고, 다른 스태프들과 나이 차도 많이 나서 형, 누나들에게 나이로 밀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작업을 할 때는 서로 존중해줘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죠.(웃음)”
어느새 10년 가까이 영화음악을 만든 그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다. 애니메이션은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음악이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바뀌는 템포감을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이유 중 하나다. 덕분에 이번 작업을 하면서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고.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이게 음악이 많이 들어갔는지, 어떤지 잘 몰라요. 사실 그게 영화음악으로서는 좋은 것이기도 하죠. 영화 안에서 음악은 알게 모르게 많은 역할을 하는데 장면을 자세히 보면 음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어요.”
뉴에이지 음악으로 지금까지 개인 음반을 2개나 낸 李동문은 사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2005년 `밀양아리랑'을 오케스트라버전으로 편곡해 만든 `아리랑 랩소디'는 지난 7월 1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헌절 경축행사에서 연주돼 많은 찬사를 받았다.
“아는 비올리스트에게서 곡 의뢰를 받았는데 제가 작곡한 것은 `밀양아리랑'이었고, 그분이 원한 것은 일반적인 아리랑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작업해주고 처음에 썼던 곡은 잘 갖고 있다가 제 두 번째 앨범에 넣었는데 사람들이 그 곡을 좋아하더라고요.”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아리랑 랩소디'는 65인조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해 녹음했다. 당시 젊은 동양인 음악가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李동문과 협연을 마친 후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이후 `마당을 나온 암탉'의 녹음도 이들과 함께 했다.
세계적인 음악감독인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와 히사이시 조(Hisaishi Joe)를 좋아한다는 그는 영화음악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지의 화면에 대사와 사운드 밖에 없는데 제가 음악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영화의 색깔이 달라지고, 감성이 달라지고, 스토리 자체가 달라져요. 제 손에 의해서 음악이 들어가고 영상이 완성되는 과정이 재미있죠. 작업을 하다보면 같은 장면을 1백번 넘게 보기도 하는데 음악을 입히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의 목표는 자신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한 유학을 고민 중이라고.
“제가 작곡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감동을 받기 때문인데, 제가 그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심을 갖고 계속 연구하고, 즐기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년에 방영 10주년을 맞는 `겨울연가'를 기념해 尹錫瑚감독과 함께 뮤지컬 `겨울연가'를 준비 중인 그는 올해 9월부터 선보이는 공연을 위해 막판 음악작업에 한창이다. 곡은 거의 완성됐지만 세부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동안 바쁠 것 같다고 했다.
대중음악을 하더라도 본인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아직까지 가요는 많이 안 써봤지만 언젠가 한 번은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완전히 대중가요라기보다는 색다름을 느낄 수 있는 걸 할 거예요. 굳이 얘기하자면 스콜피언스(Scorpions)가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록과 오케스트라의 접목을 시도했듯이 말이죠. 저도 이렇게 웅장하고 멋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