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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2011년 7월] 문화 꽁트

先 手 - 金 河 鏡(본명 金美順)



 불이 꺼졌다. 객석은 텅 빈 우주공간처럼 깊은 정적에 잠겼다. 어디선가 솨아아 바람소리가 들렸다. 스크린이 천천히 밝아졌다. 벼이삭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들판이 스크린 전체에 가득 찼다. 나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윽고 젖은 듯 나즈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인데도 남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영 낯설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계속 앉아서 지켜보기가 더 이상 힘들었다.

 몸을 잔뜩 숙이고 객석 사이를 빠져나왔다. 바깥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담배를 한 개비 뽑아 입술에 물었다. 금연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 나는 화풀이하듯 라이터 뚜껑을 탁 닫았다.


 잘 됐건 못 됐건 이제 막은 올랐다. 내 손으로 만든 영화지만 이젠 내 손을 떠났다. 더 이상 내 영화가 아니다. 관객의 영화다. 후회도 아쉬움도 많지만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번 영화는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20분 안팎의 단편영화를 전경인 아들과 농민인 아버지의 대결 신으로 채우는 건 누가 봐도 택도 없는 소리였다. 처음 콘티를 보자마자 촬영감독이 웃었다. 아니 이걸 하루 안에 다 찍겠다구요? 그의 눈에서 환청이 들렸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척 보면 구만리지. 농민과 전경 엑스트라만 수십 명에, 배우와 스태프 수십 명까지 합치면 백여 명이 넘는다. 이런 오합지졸과는 어떤 노련한 감독도 불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무식해서 용감했다고나 할까. 촬영팀의 예상이 정확히 맞았다. 낮 신도 밤 신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찍지 못했다. 우왕좌왕 준비만 하다가 금쪽 같은 시간만 다 버렸다. 제대로 찍는다 싶으면 어느 새 해가 졌고, 된다 싶으면 순식간에 먼동이 텄다. 하늘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프로듀서와 조감독, 촬영감독, 조명감독, 음향감독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이구동성으로 하루 더 찍자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먼저 아닌가. 하지만 작품만 생각하다간 밑 빠진 독처럼 돈이 끝없이 들어간다. 돈에 맞춰야한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끝내야한다. 이게 독립영화의 한계다.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함량미달의 작품을 내놓을 순 없다. 돈돈돈 하며 돈의 노예가 된다면 상업영화와 다른 게 뭔가. 갈팡질팡 갈등이 계속되었다.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하루만, 단 하루만, 더 있다면. 하지만 하루가 어찌 그냥 하루이겠는가. 돈으로 치면 천만 원 짜리 하루다.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최저수준이지만 일당도 줘야하고, 카메라, 조명, 음향 기기의 렌트 비용도 계산해야한다. 세끼 밥에 잠자리까지, 모든 게 다 돈이다. 택시 미터기보다 빠르게 숫자가 올라간다.

 하지만 단지 돈 때문이 아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해야 한다. 일 년치 휴가를 아껴모아 일주일 휴가를 받았는데 하루 더 빠지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6개월 전 한 후배가 셰프(Chef)가 되겠다며 갑자기 사직하는 바람에 업무량이 배로 늘었다. 사람을 새로 충원하지 않으니 남은 사람들이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신세에 불평해봤자 내 얼굴에 침 뱉기다.

 안 그래도 육체만 고된 게 아니다. 후배한테 받은 정신적 충격도 이만저만 아니다.

 “선배는 영화에 미친 데다가 재능도 있잖아요? 나라면 벌써 회사 때려치고 영화에 올인 했을 겁니다.”

 이때처럼 후배가 부러운 적이 없었다. 돈 많고 출세한 사람보다 일류 주방장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미련없이 사표를 내던진 후배가 몇 배 더 부러웠다. 며칠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감도 의욕도 잃은 채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그즈음 부터였을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당장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때면 아침의 결심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그 대신, 39살이라는 숫자 위로 부양해야할 부모님과 아이를 낳자고 졸라대는 아내의 얼굴이 악몽처럼 꿈자리를 어지럽혔다.

 첫 영화 때문에 진 빚을 다 갚자마자, 그동안 묵혀둔 시나리오를 다시 손질해 두 번째 영화 찍기에 들어갔다. 사표를 내기에 앞서, 과연 내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영화를 찍겠다는 말에 아내의 태도가 돌변했다. 첫 영화 때만 해도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듯 마지못해 바라봐주더니 이번엔 이전과 영판 달랐다.

 사실 아내는 결혼하면 내가 영화를 단념할 거라고 혼자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빚까지 내서 영화를 찍는 걸 보고 아내도 이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귀를 닫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곤 입만 열면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할 때 아이가 생기면 영화를 단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화근이었다. 영화판에서 내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게 모두에게 죄를 덜 짓는 최선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아이가 생기는 불상사를 막으려고 나름대로는 남몰래 온갖 안간힘을 써왔다.

 그런데 결국 아내가 선전포고를 했다. 하필이면 돈을 꾸러 다닌다고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앞으로는 영화와 관련한 모든 걸 자기 모르게 해달라고 했다. 자기가 모르는 일은 없는 일로 치겠다는 것이다. 촬영장으로 짐을 싸서 나올 때도 아내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건성으로라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집을 나서면서 나는 다짐했다. 이번에 영화가 끝나면 꼭 사표를 던지리라. 아내가 임신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치리라. 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또 별렀다.

 영화에 올인 하면 앞으로 영화 찍을 날이 새털같이 많을 것이다. 하루가 대수겠는가. 방아쇠를 당기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총알이 총구에서 발사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여기서 끝냅시다!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촬영장을 접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허탈했다.

 그 허탈함을 메우려고 편집에 매달렸다. 시사회는 한 달 뒤로 잡혀 있었다. 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짜깁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화면 저 화면에서 이리저리 찢어다 여기저기에 붙였다. 아무리 감쪽같이 이어 붙여도 내 눈엔 다 보였다. 똑같은 화면이 앞에도 나오고 뒤에도 나온 걸 볼 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관객들이 눈치 챌까봐 조마조마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차마 태연하게 앉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복도를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 때였다. 갑자기 상영관 안에서 폭포 같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음악소리로 미루어 어느 장면인지 알 것 같다. 저 대목에서 안 웃으면 끝장인데 하고 안절부절 떨고 있었는데, 마침내 기다리던 큰 웃음이 빵 터진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감독의 의도가 정확하게 관객들과 맞아 떨어져 공감을 이룰 때, 그 순간의 희열은 누구도 모를 거다. 뿅 간다는 말 그대로다. 그 맛에 영화를 만드는 건지 모른다. 관객의 웃음소리에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빚덩이가 눈 녹듯 사라졌다. 갑자기 안이 궁금해졌다. 다시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맨 뒷좌석 뒤에 서있는 관객들 사이에 뒤섞여 한참 스크린을 응시했다.

 이윽고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천천히 자막이 올라갔다. 나는 긴장했다. 누군가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불이 켜졌다. 관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기립 박수를 보냈다. 장하연! 장하연! 장하연! 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밀려왔다. 휘파람 소리가 휙휙 날았다. 불꽃놀이 하듯 여기저기서 환호가 팡팡 터졌다. 꿈만 같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래서 영화에 미치는 거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짓을 할 수 있나. 제 정신으로는 안 돼. 상영시간 총 18분, 이 단 18분을 위해 천만 원을 아낌없이 쓰려면 미쳐도 단단히 미쳐야한다.

 뒷풀이 자리에서도 감동은 계속 이어졌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감독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우리 인생이 다 바뀌었어요.”

 소품을 담당하던 두 아르바이트 대학생은 연인 사이가 되었고, 농민 역을 맡은 이혼남과 분장 실습 나온 미용실 아가씨는 서로 눈이 맞았다. 농민 엑스트라 역을 맡은 배씨 아저씨는 슈퍼마켓을 통째로 아내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이제부터 프로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고 당당히 소리쳤다. 조감독을 맡은 오유미도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당분간은 영화관 매표소에서 일하다가, 자격증을 따면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의 길로 나갈 거라고 했다.

 “감독님 덕분입니다.”

 몇 번이나 술잔을 마주치며 건배를 했는지 모른다. 한 달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뀔 줄 몰랐다. 기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바꿔주면서 정작 내 자신의 인생은 바꾸지 못하다니. 술의 힘을 빌어 용기백배한 걸까.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저도 내일 당장 사표 내겠습니다! 앞으로는 영화에만 올인하겠습니다!”

 “우와아. 축하합니다.” “대박 나세요.”

 여기저기서 술잔이 정신 없이 날아 왔다. 언제 누가 어떻게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는지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안방 침대에 속옷만 입은 채 누워있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출근 채비를 하고 현관으로 내려섰다. 뒤에서 아내가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불러 세웠다.

 “오늘 사직서 낸다면서요? 어젯밤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데요.”

 나는 나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나 임신 3개월이래요. 어제 병원에 가서 확인 받고 왔어요.”

 두 다리가 휘청하는 순간 나는 얼른 현관문을 꽉 붙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