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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2004년 8월] 뉴스 본회소식

'어느 나라든 그 나라 대표하는 대학 있다'

서울대 폐지론 특별인터뷰 `수학의 정석' 저자 洪性大 상산고 이사장
최근 커다란 화두로 등장해 비상한 관심을 모은 「서울대 폐지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 한국사회의 핫이슈로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그 불씨가 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울대 폐지론과 관련해서 본회 洪性大(63년 文理大卒·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장)부회장이 지난 6월 19일 KBS 특별기획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월간 新東亞 7월호 인터뷰에서 동창회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洪부회장에게서 대학평준화의 부작용과 서울대 비판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 등을 들어보았다.
-모교를 없애야 한다는 사회 일각의 논의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비록 몸은 학교를 떠나 있지만 남의 일처럼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논쟁할 가치조차 없는 문제를 자꾸 확대시키는 사람들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이런 소모적 논쟁이 오래 지속돼서는 안됩니다. 동창회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이성적으로 차분히 대응해 나가자는 쪽입니다. 이것은 애교심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서울대의 존폐는 한 대학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장래가 달린 일입니다』 -폐지론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가요. 『폐지론자들은 서울대의 고시학원화, 학벌주의, 사회요직 독점, 대학서열화와 같은 폐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히 서울대를 정점으로 형성된 대학의 서열 체제가 입시지옥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사회 교육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를 없애고 국립대를 평준화해야 한다는 거지요』 -서울대를 없앤다고 해서 일류대학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립대 가운데 또 다른 일류대학이 나오겠지요. 그래서 일부 폐지론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사립대를 국립대학 공동 네트워크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일류대학이 이어져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이렇게 일류대학을 다 없애고 나면 종국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이처럼 사학을 주머니 안에 든 물건처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입니다』 -朴正熙대통령 때부터 시행된 고교 평준화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학까지 평준화한다면 그 부작용과 폐해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대학간의 경쟁이 사라져 결국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대학의 질 저하로 국가경쟁력이 저하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일등만이 살아남는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경쟁이 없는 사회, 일등을 키워내지 못하는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천연자원도 없는 한국이 가진 것이라고는 인적 자원뿐이지 않습니까. 사회주의의 평등사상을 중시했던 중국도 지금은 철저한 엘리트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1백개 대학을 선정,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베이징대와 칭화대를 초일류 세계대학으로 키우기 위해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태릉선수촌에 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모아 훈련시키는 것처럼 「선택과 집중」의 교육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대가 독주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건설적인 대안은 없을까요. 『꼭대기를 잘라 없앨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 몇 개를 육성해 서울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이들 5~6개 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상향 평준화」를 이루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를 없애기는 쉬울지 몰라도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다시 만들려면 앞으로 50년이 걸려도 어려울 것입니다. 국제화 시대에 나라 안에서 서로 키를 재보고 깎아 내리는 일에만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대학이 국제경쟁력을 잃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해집니다』 -5~6개 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선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학생선발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획일적인 규제의 틀 속에서는 세계적인 대학이 나올 수 없습니다. 대학의 자율성 신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일대 법과대학원장인 해럴드 고(한국명 고홍주)는 지난 6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미국의 힘은 군사·경제력보다 탁월한 교육기관에서 나온다」며 「훌륭한 교육기관을 만드는 네 요소는 일류학생, 일류교수, 일류시설 그리고 우수한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학비 걱정 안하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수진으로 국내외 훌륭한 석학들을 모셔야 합니다.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첨단 기자재와 쾌적한 교육환경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대학을 만들자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합니다. 정부 재정이 어렵다면 민간 독지가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도 만들어 줘야지요. 그런데 정부가 그 길마저 가로 막고 있으니 탈이지요』 -서울대가 고시학원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비판이 있는데요. 『문제의 근원은 고시제도 자체에 있습니다. 요즘처럼 취직하기 어려운 시절에 고시 합격자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혜택이 크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고시 준비에 열성을 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고쳬崎??비록 서울대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다른 명문 대학들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재등용 방법을 개선해야지 서울대를 폐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대 출신들이 각계 각층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서울대 출신들이 타대학 출신들에 비해 이른바 고위직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울대 출신들이 남다른 노력과 실력으로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무능력한 사람인데도 서울대 간판 하나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겁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서울대 출신들은 잘 뭉치지 않습니다. 각자 따로 따로 놀아요. 아마 서울대가 뭉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겠지요. 나라가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거예요. 잘 아시다 시피 서울대 출신들은 어느 조직에서나 서로 경쟁하는 대상이 되었으면 되었지 학연으로 패거리를 지어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정·관계에 서울대 출신이 너무 많아 비서울대 출신들에게 소외감을 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요.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무위원 다수가 서울대 출신들이고 17대 국회의원 중에 서울대를 거친 사람이 1백43명이나 됩니다. 많긴 많아요. 그러나 이분들이 모두 서울대 간판만 갖고 장관에 임명되었거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건 아니죠. 미국 하버드대 졸업생이 1년에 1천6백명입니다. 서울대 4천명에 연·고대까지 합치면 1만5천명입니다. 미국에 비해 인구는 적으면서 3개 대학의 졸업생은 너무 많습니다. 미국에선 하버드대, 예일대 출신이 요직을 차지해도 별로 눈에 안 띄는데 우리는 좁은 땅, 적은 인구에 배출되는 졸업생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에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들이 우글대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요』 -서울대 출신들이 국가사회에서 지원을 받은 만큼 거기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이 있습니다. 이들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은 「고귀한 신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소위 「Noblesse Oblige」라는 모럴을 가져야 합니다. 엘리트는 그 나라 그 민족이 나아가야 할 목표를 분명히 알고 실천하는 집단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출신들이 그러한 책임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자면 철저한 인성교육과 봉사교육을 통해 자신보다 혜택받지 못한 사람에게 자신이 받은 혜택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서울대가 과학 분야에서 기여한 업적이 실제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동창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 과학정보연구소가 해마다 발표하는 SCI 순위만 놓고 보더라도 서울대는 세계 모든 대학 가운데 2002년 34위, 2003년 35위를 차지했습니다. SCI 순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 3천9백개에 발표된 논문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SCI 순위가 서울대보다 앞선 대학은 대부분 미국 대학들입니다. 그 외에는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캠브리지대, 일본의 도쿄대와 교토대·도후쿠대, 캐나다의 토론토대, 브라질의 브라질대 밖에 없습니다. 이를 월드컵처럼 나라별로 순위를 매긴다면 서울대는 세계 6위입니다. 한국에서 서울대 다음으로 SCI 순위가 높은 대학이 1백48위입니다. 만일 서울대를 없앤다면 한국 최고 대학은 SCI 순위 1백48위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黃禹錫교수로 대표되는 서울대 생명공학 연구팀은 인간 배아복제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의대, 치대, 수의대, 약대, 자연대, 공대, 농대 등 교수 80여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黃교수팀이 이룬 업적은 가히 세계적인 것입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이룩한 업적들이라 참으로 값지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6·25 이후 폐허 속에서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사실은 수월성을 지향했던 엘리트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엘리트 교육을 선도했던 것이 바로 서울대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