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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2011년 7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吳 世 正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 서울대는 휴직 상태시죠.

 “그렇죠. 2년까지 가능하고 특별한 경우에 3년까지 유예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연구재단 (자연)환경이 서울대보다 좋은가요.

 “서울대도 좋지만 연구재단도 좋습니다. 최근에는 황토 산책길을 만들어 맨발로 걷기도 합니다. 황토의 좋은 기를 받는 기분이에요.”

 - 동창회보가 과학기술인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林光洙동창회장님도 이공계 출신이시고요.(웃음)

 “회장님이 아침 7시에 전화를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처음엔 무슨 급한 일이 있는줄 알았어요. 인터뷰 부탁을 하시더라고요. 아니 이런 일까지 챙기시냐고 했더니 웃으시더라고요. 대단한 분이세요. 과학자 입장에서 참 고마운 일이죠.”

 - 지원금을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되셨어요.

 “교수시절에는 연구재단이 관료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일에 연구비 집행가능성을 물어보면 대부분 안 된다는 답변이 와요. 부임하자마자 고객중심으로 변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주문했죠. 슬로건도 `연구자가 감동하면 한국연구재단이 행복해집니다'라고 정했습니다. 朴贊謨(화학공학54 - 58)초대 이사장님 때부터 전화 응대 등은 신경을 써서 많이 좋아졌고요.

 주는 입장이 되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심사의 투명성 문제예요. 경쟁률이 3대 1, 어떤 것은 10대 1이 넘어갑니다. 받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훨씬 많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와요. 학자들의 자존심이 굉장히 세잖아요. 떨어지면 본인의 성적보다는 심사가 이상하게 이뤄졌다는 불평이 나옵니다. 평가의 전문성, 공정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자들이 투명한 심사라고 느낄 수 있도록 믿음을 줘야 할 것 같아요. 대학입시의 경우 떨어지면 채점자를 원망하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아직 채점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시간은 걸리겠지만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죠.”

 - H K(인문한국) 지원사업의 경우 그런 오해가 더 심하죠.

 “탈락자 중에서는 본인보다 실력없는 평가자가 떨어뜨렸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세요. 실제로 이 문제는 선진국의 연구지원기관에서도 겪는 일입니다. 신뢰할 만한 평가자를 충분히 모시기가 쉽지 않아요. 신경 쓰이는 부분이죠.”



 - 인문사회 분야를 지원하던 학술진흥재단과 과학관련 두 단체가 통합된 기관인데 그동안의 성과와 과제를 말씀해 주시죠.

 “통합의 첫 번째 명분은 연구자들이 연구관리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행정직 직원들이 했죠. 지금은 PM(연구사업관리전문가)이라고 해서 우수 과학자들이 와서 과제를 평가, 선정, 관리합니다. 두 번째 명분은 학제간 연구를 강조한다는 것이었죠. 융합이 중요해지면서 인문사회와 과학을 일관성 있게 지원하자는 취지였어요.

 PM제도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학제간 융합은 정착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서로 협력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나 학문간 벽이 높아서 잘 안 되더라고요. 정말 의미있는 융합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나눠져 있을 때보다는 같은 울타리에 있다보니 이야기도 많이 하고 진지한 고민도 하게 됩니다.”

 - 인문·사회계의 불만이 쉬이 줄지는 않을 것 같아요.

 “초대 이사장부터 저까지 과학계 출신이 맡다 보니 그런 불만은 당연한 것 같아요. 전체 예산대비 연구비도 15%정도 밖에 안 되고요. 인문사회 연구비 지원시 과학기술 분야의 틀을 쓰다 보니 안 맞는 구석도 있어요. 자연과학에 비해 기간도 길고 평가 기준을 잡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죠.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 같습니다.”

 - 연구비 유용문제가 종종 보도되는데.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잘하고 계신데, 1%가 문제된다고 생각해요. 세금으로 지원되는 돈이다 보니 규모가 작아도 크게 보도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합니다. 연구자들의 강한 윤리의식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지원 부처별로 연구비에 대한 규정이 다르다 보니 잘 몰라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죠. 예를 들면 연구비 지원 부처마다 1회 식비로 인정하는 금액도 달라요. 대학 연구실에선 주말에 나와 실험하고 토론하며 쓰는 비용이 회의비로 인정이 안 돼요. 행정부서에 주말 일정을 일일이 제출해야 회의비를 받을 수 있죠. 모르고 썼다가는 범법자로 몰리기 쉽죠. 지금은 국가위와 교과부가 교수들이 신경 쓰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도 연구자들이 모르고 실수하는 항목들에 대해선 매뉴얼화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대학 자체에 연구비 전문 관리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교수들이 시시콜콜 다 알기 어렵거든요.”

 - 중점 사업을 말씀해 주시죠.

 “신진연구인력 지원에 역점을 두려고요. 외국에서 활발히 연구하던 과학자들도 귀국하면 실험에 필요한 연구장비를 갖추느라 5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또 연구장비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젊은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지 않고는 우리나라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내기 힘듭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대부분 박사학위를 받은 후 5∼10년 내인 30대 중·후반에 수상 업적 논문을 썼는데 우리나라의 젊은 과학자들은 연구지원 부족으로 이 소중한 시간을 대부분 허비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올해 신진 연구자 지원에 7백90억원을 씁니다. 지난해보다 1백70억원 가량 늘렸죠. 연구장비비를 포함해 5년간 총 12억5천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을 처음 도입했고 5년간 총 7억5천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박사 후 연수사업도 신설했습니다.”

 - 이와 연장선에서 `성실실패 용인제'란 말이 나오는데 설명을 해주시죠.

 “질 높은 성과물을 내놓기 위해 연구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 때문에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비교적 실패 위험이 적은 연구에 치중해 고만고만한 성과를 내는 데 그쳤죠. 우리나라 연구개발 패러다임이 모방·추격형에서 창조·선도형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연구 지원방식과 풍토도 개선돼야 합니다.

 올해 모험연구 46개 과제를 공모했는데 경쟁률이 상반기 34대 1, 하반기 28대 1을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 올 상반기 예비 결과평가에서 탈락했던 4개 과제가 모두 성실실패로 인정되기도 했고요.”


 - 무슨 일이든 확실히 믿고 맡겨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결과평가를 안 합니다. 그동안 해온 연구성과와 새로 제시한 아이디어를 보고 판단해 지원금을 줍니다. 미국이 Grant(순수 지원금)라면 우리는 Contract(계약에 기반한 지원)의 개념이 강하죠.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을 좇아가는 입장에서 결과물을 중요시 여긴데 반해 미국은 지원제도를 시작할 때부터 인류의 지적재산에 얼마나 기여하고, 얼마나 독창적인가를 봐왔기 때문에 차이가 생겼다고 봐요. 성실실패 용인제도가 잘 정착되도록 노력해야죠.”

 - 서울대 연구지원 규모는.

 “기관 중에 서울대가 가장 많습니다. 지난해 서울대에 1천5백73억원을 지원했고, 다음으로 국가핵융합연구소(1천5백28억원), 한국원자력연구원(1천1백83억원), 연세대(7백5억원), 한국과학기술원(6백92억원), 고려대(6백53억원), 포항공대(4백27억원) 순입니다.

 전체적으로 연구재단은 작년에 연구개발 부문에 1조6천4백85억원, 학술진흥 부문에 1조8백21억원을 투입해 총 2조7천3백6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지원단체는 1천6백96개에 달하고요.”

 -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이공계 인재부족 등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과학의 현주소를 진단해 주신다면.

 “높은 분들이 과학 행사에 와서 인사말을 할 때 잘 쓰는 상투적 문구가 있어요. `나는 과학은 잘 모르지만….' 과학 관련 행사에 와서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게 우리의 현주소이죠. 과학이 현대사회에서 핵심 교양이란 점을 깨닫지 못한 거죠.

 우리 주변의 큰 사건 중에 과학과 연관된 일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광우병 사태, 일본 원전 붕괴 등을 봐도 알 수 있죠. 과거처럼 전문가들이 원자력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해도 사람들이 믿는 시대가 아니죠.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의 두려움, 의문을 충분히 풀어주고 아는 만큼 솔직하게 대답해줘야 하고 대중들은 과학 이슈에 대해서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고 서로 토론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가야죠. 많은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는데, 그런 흐름이 계속 돼야하고 대중들도 핵심 교양으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 지난 학기에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이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줍니다. 학비를 비롯해 기숙사 생활이 보장되죠. 서울대는 이공계 장학금을 경쟁을 통해 반정도 밖에 혜택을 못 받습니다. 과거에 포항공대와 서울대에 동시 합격하면 90%가 서울대에 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대학 능력은 비슷해졌고, 학비와 기숙사까지 제공하니 학생 유치에 불리한 거죠.

 물론 서울대가 장점도 많죠. 자연대 학장 시절에 자연대, 공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한 학기 동안 주관한 적이 있어요. 학기말에 한 공대생에게 `서울대 온 것을 후회하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인문, 사회, 예술대 친구들도 만나고 교양수업도 듣다 보니 자기 자신이 굉장히 넓어진 느낌이라는 거예요.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에 간 친구들을 만나보면 폭이 좁은 느낌을 받는대요. 종합대로서 강점이 분명 있어요. 앞으로 학문의 방향은 융합인데, 그런 면에서도 좋은 점이 있고요. 학생들이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공부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 공대생 특유의 `홀로 정신'을 비판하는 분들도 계세요.

 “공대 출신의 경영대 교수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팀 과제를 내주면 수강 학생 중에 누가 공대생인지 경영대생인지 금방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경영대 학생들은 팀 과제를 내주면 적당히 해도 묻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반면, 공대생들은 싫어한다는 겁니다. 스스로 열심히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누가 한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결과물로 평가받는 것이 불편하다는 거죠. 혼자 실험하고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그게 우리나라 이공계의 가장 큰 핸디캡이라는 거예요. 회사의 일이 대부분 협업인데 학생 때부터 그렇게 습관이 배어 있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제 생각에 그렇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과, 문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학생들이 변할 필요가 있어요. 노벨상 수상자의 경우에도 공동 작업을 통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제는 혼자 뭘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이공계에서도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술이 아주 중요합니다.”

 - 그런 관점에서 과거 사회, 인문, 자연이 어우러졌던 문리대를 부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문리대 마지막 세대입니다. 문리대 출신들은 문리대에 대한 짙은 향수가 있죠. 朴婉緖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문리대 프라이드가 이렇게 강한지 몰랐다. 그때 학생들은 대학은 문리대와 다른 대학이 있다고 하더라. 제가 다닐 때도 사실 인문, 사회학 강의를 많이 들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캠퍼스에 있으면서 공유하는 어떤 분위기, 정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데모도 같이 했고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문리대가 부활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한 단위로 독립하면 유리한 점이 있으니까 자꾸 분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합치면 손해본다는 생각이 강하죠. 서울대에 자유전공학부가 있잖아요. 그 학부가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죠.”

 - 서울대에서 창의적인 연구 결과물이 나오는데 걸림돌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본 도쿄대와 교토대를 비교해 보면 교토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도쿄대는 정부 일을 많이 하고 교토대는 그런 일 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학풍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도쿄대는 일본 대학 전체를 끌어간다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튈 수가 없어요. 서울대도 도쿄대와 비슷한 처지죠. 서울대도 모든 학문 분야를 다 아울러야 하기 때문에 한 곳에 올인하기가 쉽지 않죠. 이공계의 몇 몇 분야는 과감하게 특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항공대나 카이스트가 잘 하는 분야는 그쪽에 넘길 필요도 있고요.”

 - 수석으로 입하셨어요. 저 때도 물리학과 학생이 전체 수석이었을 정도로 수재들이 많이 들어갔죠. 물리학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물리는 단어 그대로 세상의 이치잖아요. 저는 실용적인 면이 강해서 우주의 기원, 뭐 그런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고체물리학을 전공했어요.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분야죠. 그 일을 계속해서 해야하는데, 지금은 여기 일을 하고 있어서 학교로 돌아간 다음에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도쿄대 고시바 마사토시 명예교수는 일본의 한 폐광에서 지구로부터 17만 광년 떨어진 초신성의 폭발로 나온 중성미자 12개를 검출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학사 학위자로서 노벨 과학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일본의 다나까 고이치 씨는 노벨상 수상 후에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이사로 승진시키겠다는 회사의 제의도 거부하고 연구실로 돌아갈 만큼 연구에 열정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한 열정적인 사람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해결하세요.

 “그냥 잡니다(웃음). 취미로 테니스를 좀 하고 최근에는 조깅을 즐깁니다.”

 - 서울대에서 친하게 지낸 동료 교수는 누가 계신가요.

 “사회대 宋虎根(사회75 - 79)교수와 친합니다. 후배인데 서로 소주 좋아하고 통하는 면도 있고 해서 잘 지냅니다. 黃昌圭(전기공학72 - 76)前삼성전자 사장도 배울게 많은 분이시고요.”

 - 가족 가운데 동문이 있나요.

 “늦게 결혼해서 딸이 한 명인데 대학생이에요. 지금 연세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큰 형님(吳世赫 화학공학64 - 68), 누나(吳慶子 영문67 - 71), 여동생(吳文子 불문74 - 78)이 동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한 말씀.

 “우리 동문들이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더불어 함께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동문들의 응집력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대가 법인화가 되면 정부에 기댈 수 없거든요. 동문들이 단합해 서울대를 확실히 도와주십시오.”

〈사진·정리=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