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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2011년 7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이노베이션 매그넷



 지난 6월 9일 세계 과학계 거목 와이트사이즈 하버드대 교수, 게놈 시퀀싱 선두주자 퀘익 스탠포드대 교수, 그래핀 분야 권위자 金必立(물리86 - 90)컬럼비아대 교수, 나노 바이올로지 분야 천재 과학자 朴弘根(화학86 - 90)하버드대 교수, 한 사람씩 초대하기도 어려운 네 명의 석학이 서울대 상산수리과학관 강단에 같이 섰다. 기획단 출범 1주년에 즈음해 개최된 `글로벌 R&D 포럼 2011' 참석차 한국을 찾은 R&D전략기획단 해외자문위원의 일원인 이들이 시간을 쪼갠 것이다.

 2백50석 강의실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고, 후텁지근한 날씨로 실내 공기는 좀 퀘퀘했다. 나의 소개를 받은 이들은 땀 흘리며 열강했고, 학생과 교수들은 경외심과 진지함으로 미동도 없었다.

 와이트사이즈 교수, 내가 만나 본 석학 중 미래 통찰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라고 감히 단언한다. 퀘익 교수, 게놈 시퀀싱 사업화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 자신을 실험 마루타로 삼은 열정의 소장파 괴짜 과학자다. 金必立, 朴弘根 두 교수, 자랑스러운 대학 후배며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학문적 동반자, 그리고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오랜 知己다. 이 둘은 대학 동기며 절친이다. 한국 최초로 과학 분야 노벨상이 나온다면 둘 중 하날 거라고 내가 슬쩍 얘기하면 손사래 치는 몸에 밴 겸손함도 서로 닮았다. 이들이 왜 한국의 R&D를 자문하겠다고 나섰을까? 金과 朴, 두 교수야 애국심이 발동했다 치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은? 나와의 친분만으로 수락한 건 아닐테고 …. 이들이 한국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며, 또 이 일이 결국은 자기들에게도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요즘 K-POP이 유럽을 휩쓸고, 우리 자동차가 미국을 강타한다. `부지런히 선진국을 좇는 나라'라는 한국의 이미지가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나라'로 진화 중이다. 과학 기술도 이 여세를 몰자. 밖으로 나가 신기술을 탐색하는 것도 중요하나, 해외 석학들이 자꾸 한국을 찾도록 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른바 `이노베이션 매그넷(Innovation Magnet)'이다. 지난 6월초 서울에서 개최한 `글로벌 R&D포럼'도 이의 일환이었다. 개별 산업 단위의 R&D포럼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R&D를 매개로 전 산업을 망라한 포럼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하드웨어的으로 국제 행사를 매끄럽게 치렀다고 만족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한국에 쏟아 내고 간 지식과 미래 통찰력을 소프트웨어的으로 잘 버무려 성과로 만들어 내는 일, 더 나아가 한국의 과학 기술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한국의 포텐셜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들에게 직접 보여 주고 스스로 느껴 한국을 다시 찾도록 하는 일.

 포럼은 3일이었지만 이 일들은 앞으로 3년, 아니 그 이상도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소홀히 해서는 아직 절반의 성공인 이 포럼의 목표 달성은 영구 미제로 남는다. 미국에서는 R&D에 관한 한 `실패(Fail)'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는다. 부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부럽기만 하면 지는 거다. 우리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이건 나의 몫이다. 태생적으로 R&D는 서서히 성과가 나온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천천히 가자는 말엔 동의할 수 없다. 창조와 기적에도 産苦의 과정은 필수적인데, 이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R&D기획단이 출범 1년을 맞았다. 국가 R&D방향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보는 일, 체감하기는 어려운 R&D이지만 선진국 도약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는 일, 따뜻하고 감동적인 국가 R&D를 실천하는 일, 내게 남겨진 중요한 숙제다. 하지만 주어진 임무만 해 놓고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리지는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