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00호 2011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우리들의 불편한 진실



 최근 출간된 權彛赫 前총장의 에세이집 `靑春萬世'에는 서울대 영욕의 역사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졸업식史부분이 있다. 1958년 2월 26일 졸업식에 참석한 李承晩대통령이 尹日善총장의 요청에도 축사를 사양하던 모습, 옆에 가서 각하의 바람막이를 자처하며 아부하던 어느 학장, 본인이 총장이던 1982년 南悳祐총리 축사 때 졸업생들이 야유하던 일과 최근 졸업생 대표의 대부분이 여성으로 바뀐 상황 등.

 美군정 시절이던 1947년 제1회 서울대 졸업식(개교 원년과는 별개) 이후 1974년 제28회 졸업식에 참석한 朴正熙대통령이 유신과 긴급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로 봉변을 당할 때까지 서울대 졸업식은 국가적 행사였다. 그 뒤 총리와 문교부 장관 등으로 정부 참석자의 격이 낮아졌다.

 5공 말기인 1986년 2월 26일 朴奉植총장이 졸업식사를 읽을 때 학부 졸업생 2천여 명이, 孫製錫장관 치사 때는 대학원 졸업생 1천여 명이 퇴장했다. 다음해에는 퇴장 대신 돌아앉아 노래를 불렀다. 1989년부터 5년간은 총장 주관의 순수 학내행사로 바뀌었고, 졸업식 참석률이 낮아지자 단과대학별 졸업식 방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1994년 동문인 金泳三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불상사는 없었지만 대운동장에 마련된 좌석의 절반도 차지 않는 등 썰렁했다. 그 뒤 1999년 2월 26일 졸업식에 DJP 연합정권의 金鍾泌총리가 참석했으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고, 2000년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한 金大中대통령이 연설했다.

 졸업식장에서의 집단행동은 결과적으로 국가적 행사를 서울대 행사로 축소하는데 일조하고, 비지성적 행태로 비판도 받았지만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감의 발로로써,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법인화에 반대하며 한 달 가까이 총장실과 행정관을 점거한 일부 재학생들의 행위는 어떤 절차적, 내용적 정당성도 갖지 못한다.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나를 때려라”고는 못할망정 그런 학생들을 부추긴 교수들도 있었다. 학생들을 제대로 이끌지도 못하고, 원칙과 학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지도 못한 대학 지도부의 자세는 더 심각한 문제다. 서울대에서는 물론 세계의 어느 유수대학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세계 일류대학은 논문 편수만으로 되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총장과 교수, 동문, 재학생 모두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하고 대오각성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