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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2011년 7월] 뉴스 본회소식

지령 400호 기념 대담




동창회보, 서울대 역사의 산 증인

 사 회:이렇게 첫 호 동창회보를 직접 보니 옛날 신문이 주는 감격이랄까, 품격 같은 무게감이 다가옵니다. 또 회보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동창회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출판 작업이란 생각이 듭니다. 金哲洙교수님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 하셨는데 감회가 새로우시죠.

 金哲洙:초창기 동창회보는 1975년 각 단과대별로 흩어져 있던 서울대학교가 종합화가 돼서 관악으로 옮긴 후 이듬해에 창간됐어요. `이제 학교가 종합화가 됐으니까 단과대별로 흩어진 동창회도 모으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그래서 동문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동창회보를 발간하게 됐습니다. 당시 상임부회장이셨던 李錫範(경성법전32졸)동문과 학생처장이자 동창회 초대 사무처장이셨던 徐燉珏(법학46졸)동문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사 회:지금 법인화가 이슈인 것처럼 그 당시는 `종합화 이루기'가 과제였군요. 동창회보가 서울대 역사의 변화 속에 산 증거네요. 그런데 어떻게 관악산에 둥지를 틀게 됐나요? 데모를 많이 해서 시 외곽으로 보냈다는 게 맞습니까? (웃음)

 金哲洙:예. 독재정권에서 학생들이 하도 시위를 하니까 정부에서 서울대를 멀리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죠. 朴正熙대통령 측근이 미국 코넬대 출신이었는데 그 대학이 산중턱에 있어 좋았으니 서울대도 산으로 보내자고 추천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당시 관악산에 주요 인사들이 애용하는 골프장이 있었는데, 포장도 안 된 동네에 좋은 차가 한 열대쯤 다니니까 주변 사람들이 반감이 들어서 차에 돌을 던지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데모하는 학생들이나 그쪽 지역 주민들에게 朴正熙대통령이 화가 나서 “거기는 들어가면 못 나온다. 그러니 관악산으로 보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孫一根:尹天柱총장 시절에 도쿄대 하야시 겐타로(林健太郞)총장이 관악캠퍼스를 둘러보고 第一聲이 부럽다고 할 정도였으니 어찌보면 큰 은혜를 입은 셈이지요.

 사 회:재미있는 에피소드네요. 孫一根상임부회장님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회보를 제작하고 계신데요.

 孫一根:제가 1992년 편집위원으로 동창회보 제작에 참여했어요. 생각해보니까 그때가 세대교체기였던 거 같아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은 저보다 선배되신 분이 그만두고 그 대신에 제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상임부회장이 돼서 당연직인 편집위원장과 편집인을 겸하고 있죠.

 회보는 16면부터 시작해서 오늘날 32면이니까 꼭 두 곱절이에요. 중간에 재정난으로 지면 축소, 휴간을 하는 등 잠시 변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맡은 뒤에는 무리가 되더라도 전면을 컬러로 해서 독자들에게 시원한 지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창간 부수가 4천부였는데 지금은 온라인 포함해서 통칭 20만부를 발행하고 있죠.



 사 회:언론매체네요. 더군다나 보는 분들이 다 오피니언 리더들이고.

 孫一根:회보가 월간이니까 정보의 속보성은 좀 떨어지지만 우리 나름대로 지면 구성과 편집에 있어서 심혈을 기울입니다. 예를 들어 기차가 직선적인 교통수단이라면 버스는 기차에 비해서 좀 곡선적입니다. 지금 동창회보는 기차역보다 훨씬 가까워서 바로 집 앞에서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버스노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창회보의 커뮤니케이션의 회로가 곡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며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사 회:서울대라는 간판이 있지만 충분히 언론매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최근 동창회보는 어떻게 변해왔습니까? 콘셉트의 변화가 있었는지요.

 孫一根:회보는 무엇보다 재미있고 필요한 정보가 있고, 기다려지는 회보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해보니 서울대 폐지론이 나왔을 때 단과대 중심이었던 동문들이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많이 결집이 됐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니까 동문들 스스로 우리가 단과대별로만 뭉쳐서는 안 된다는 움직임을 갖게 된 거죠. 우선 표상적으로 동창회비가 많이 모이고 그게 계기가 돼서 동창회보가 각계 동문들의 메시지와 여론을 담는 중심 매체가 됐죠.

 金哲洙:처음에는 회보가 일종의 엘리트 신문으로 출발해 계몽정신을 강조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각 단과대학동창회장들이 왜 총동창회를 만드느냐는 말이 많았습니다. 또 동문들 입장에서는 회비를 총동창회와 단과대동창회 양쪽에 내야하니 총동창회가 필요 없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문들이 처음에는 회비도 잘 안 냈어요. 굉장히 어려웠죠. 그러다가 상임부회장님 말씀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 기운이 돌면서 나아지게 된 겁니다.

 사 회: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동창회보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했으면 좋겠는지 제언이 있으신가요?

 孫一根:제가 편집위원장을 맡으면서 달라진 게 특수 용지를 쓰고 전면을 컬러 인쇄한 것과 회보의 버라이어티입니다. 구체적으로 관악시단, 콩트 릴레이 등 다양한 코너를 신설했죠. 최근에는 인터넷 회보의 활성화와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건강관리 강좌 코너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동창회나 회보 제작에 가능한 한 여성과 젊은 세대를 많이 참여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휴먼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해서 전격적으로 많은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사 회:지금은 사회가 너무 다양해져서 보수나 진보, 이런 이념적인 갈등도 깊고, 동창회라는 울타리 안에도 많은 생각들이 존재하죠.

 孫一根:어떤 부분에 있어서 우리 회보는 언론의 자유를 가장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찬반 의견을 같은 지면에 동등하게 게재할 수 있고, 사설과 같은 칼럼으로 자기 주장을 표방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완전히 오픈돼 있어요. 그러면서도 우리 서울대인의 다양한 생각과 주장을 담아 소화하며 그룹 마인드는 언제나 건재합니다. 또한 어떤 이슈에 관해 보다 적극적인 지상토론을 펼치는 기획기사를 늘려가려고 합니다.

 사 회:처음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동창회보에 한국 역사와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를 어떻게 봤는지 담겨있어서 꼭 한번 젊은 동문들이 돌려봤으면 좋겠습니다.

 金哲洙:젊은 동문들이 읽도록 하기 위해서 정치나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두루 걸친 전문해설기사가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생각들이 있으니까 한쪽으로 몰면 안 되고 양쪽 의견을 같이 담은 해설기사를 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孫一根:회보가 특수지로서 여론향도나 캠페인의 큰 성과를 거둔 게 많습니다. 우리 林光洙회장님의 선도적 역할이 지대했지만 서울대 폐지론 반대 주장이 많은 효과를 봤고, 개교 원년 찾기 캠페인을 통해서도 서울대학교 개학 연도를 1895년으로 돌려놨습니다. 이렇게 회보를 우리 동문들뿐만 아니라 각계에서 많이 열독해 캠페인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金哲洙:총동창회가 현재 잘 되는 이유는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많은 행사가 열리고 회보가 이를 성실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홍보하면 많은 동문들이 모여요. 그렇게 되면 동문들이 회비도 잘 냅니다. 이렇게 회비를 모아서 장학금을 조성하는 데도 아주 큰 공헌을 했죠. 또 장학빌딩을 새로 건립할 때도 3백억원 모금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초과 달성했어요.

국제화 대비 영문판 발행할수도

 孫一根:처음에 장학빌딩 건립모금을 시작하는데 큰 건물을 짓기에 너무 많은 금액이 들어서 다들 그 금액이 모아질까 염려했습니다. 무엇보다 林光洙회장님이 맨 먼저 씨돈 50억원을 쾌척하셨기 때문에 이뤄진 겁니다. 그런데 회보에 모금캠페인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또 林회장님이 큰 금액을 기부하신 이야기가 소개되니까 申明珪(생물교육48 - 54)여사가 15억원을 출연하셨어요. 그분이 점화자가 된 셈이지요. 그 이후로는 너도나도 기부에 동참하고, 목표금액을 초과달성했죠. 이 자리를 빌려 동문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또 우리 논설위원 여러분의 열성적인 협력에 고맙다는 말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金哲洙:법인화도 동창회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반대하는 재학생들에게 의견도 보냈지만, 그것보다 국회에 가서 법안이 통과되도록 많은 의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당 위원장이 반대한 법안이었는데 마지막에 동창회 임원들이 부탁을 해서 극적으로 통과됐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사 회:미주동창회보가 있지만 총동창회보 안에 국제화 코너를 신설하는 건 어떨까요.

 孫一根:세계대학평가 순위 점수를 매길 때도 외국인 학생 비율도 하나의 요건이에요. 서울대도 점점 외국인 학생 비율이 증가하면서 지난번 베트남 출신 서울대 동문들이 현지에서 동창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동문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면 회보에 영자 지면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담으로 독자들 중에 동창회보에 기념촬영 사진이 많다는 의견이 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동문들간의 대화의 통로를 열어주고 만남의 장을 마련하다 보니 각 지부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기념사진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신문을 보게 되죠. 이번 기회에 그런 고민이 있다는 점을 고백하면서 넓은 양해를 구합니다.

 사 회: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두 선배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저도 더 열의를 갖고 동창회보 만드는 일에 임하겠습니다.

〈정리=邊榮顯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