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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2011년 7월] 뉴스 본회소식

지령 400호 기념 특집



동문 결속·유대 강화 위해
회보 발간 전격 결정 


  본회는 1976년 3월 10일 모교 관악캠퍼스 교수회관에서 제6대 閔復基회장을 비롯해 李錫範상임부회장, 元容奭·崔主鎬부회장, 李聖秀감사, 鄭鳴秀사무처장, 모교 尹天柱총장, 丁炳烋학생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동창회 홍보와 동문 상호간의 긴밀한 결속 및 유대 강화를 위해 동창회보를 발간키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3월 25일 李錫範상임부회장, 모교 尹天柱총장, 金榮國대학신문 주간, 金哲洙법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보 창간 자문회의가 열렸고, 3월 30일 모교 관악캠퍼스 교수회관에서 회보 첫 편집회의를 개최했다.

 1976년 4월 13일 문공부에 등록(바 -618호)을 마친 본회는 4월 24일 정기총회를 맞아 `서울대학교 동창회보'를 창간, 4천부를 배포했다. 창간호는 타블로이드판 총 16면으로 겉표지는 아트지를 사용하고 내지는 신문용지로 인쇄했다. 기사는 국문과 영문, 한문을 혼용해 사용했다.

 閔復基회장은 창간사에서 “단과대학동창회로서는 실리기 어려운 소식이나 학교 차원의 문제로 등장할 수 있는 사안에 관한 보도, 논평 또는 자료게재 등에 관해 본회에서 다루기에 알맞은 것을 편집내용으로 삼는다는 것이 회보 발간의 주된 취지”라고 창간 배경을 설명했다.


1980년 3월호부터
격월간서 월간 전환


 창간호가 발행된 날짜인 24일에 맞춰 격월간으로 발간되던 본보는 1978년 12월 16일 열린 편집회의에서 매 홀수달 1일로 발행일을 변경했다.

 그러나 매월 마지막 주에 개최되는 동창회 행사들이 많아 관련 소식을 신속하고 자세히 전달하려면 발행일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1997년 2월 15일자(제227호)부터 발행일자를 기존 1일에서 15일로 변경했다. 한편 1979년 8월 13일 개최된 이사회에서 본보를 1980년 3월 1일자(제24호)부터 월간으로 발행키로 의결함에 따라 본보는 1980년 4월 13일 문공부에 월간등록(라-2448호)을 마쳤다.

 1980년 3월 1일자(제24호)에 실린 관악춘추를 요약해보면 “본 회보는 그동안 동창회 목적사업인 친목 도모와 유대 결속의 교량 구실을 꾸준히 해왔다. 이런 일이 이제부터는 격월이 아니라 매월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이번의 월간화이다”라며 월간 발행 의의를 밝히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
32면 확대·전면 컬러화


 16면으로 시작한 본보는 재정상의 문제로 1979년 9월 1일자(제21호)부터 발행면수를 12면으로 축소했다가 1982년 5월 1일자(제50호)부터 다시 16면으로 증면했다.

 본보에 대한 동문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1987년 1월 1일자(제106호)부터 20면으로 늘렸고, 1998년 5월 11일 한국프레스센터 목련실에서 열린 편집회의에서 6월 15일자(제243호)부터 기존의 내지(중질지) 16면과 별지(신문용지 46.6g) 8면의 이중체제에서 신문용지(54g) 24면의 일괄체제로 전환해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01년 3월 15일자(제276호)부터 지면을 32면으로 확대, 발행하고 모교의 각 단과대학 및 대학원, 70여 개 연구소 등을 보다 심도 있게 홍보하기 위해 모교 소식면을 늘렸다.

 재정 문제로 지면을 축소해야 했던 1979년 7월 1일자(제20호)부터 표지가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기도 했으나 1982년 5월 1일자(제50호)부터 다시 표지를 컬러로 인쇄하기 시작했다. 이후 컬러면은 꾸준히 늘어 2004년 6월 15일자(제315호)부터 현재까지 전면을 컬러로 발행하고 있으며, 2006년 8월 15일자(제341호)부터 인쇄용지를 CNP(54g)로 전환해 발간하고 있다.


편집디자인도 새롭게
제호 등 시대에 맞게 변화


 본보 창간 29주년을 맞아 2005년 4월 15일자(제325호)부터 제호가 새롭게 바뀌었다. 창간 당시 규장각 古文에서 집자한 글자체를 그대로 살리되 현대적 감각에 맞춰 종전의 군청색 바탕을 없애고 글자만 군청색으로 변경했다. 글자가 지금과 같은 검은색으로 바뀐 것은 2006년 10월 15일자(제343호)부터다.

 모교의 역사와 전통을 찾기 위해 본회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던 모교 개교 원년 찾기 운동이 2010년 10월 7일 모교 평의원회에서 `개학 1895년, 종합대학으로서의 통합개교 1946년'으로 의결됨에 따라 2010년 12월 15일자(제393호)부터 제호 우측 하단에 `開學 1895년·統合開校 1946년'을 표기했다.

 전면 가로쓰기가 도입된 것은 1995년 2월 1일자(제203호)부터다. 1995년 1월 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편집회의에서 지면쇄신을 위해 2월부터 전면 가로쓰기를 시행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본보는 시사저널 安炳璨주필에게 편집에 대한 실무적인 도움을 구하고, 한국프레스센터 李炯均전무로부터 기사 및 제목에 대한 조언을 얻어 전문화,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다양한 코너 신설로
재미있는 회보 구현


 본보는 지난 35년 동안 다양한 코너를 선보이며 폭넓고 다채로운 내용을 다뤘다. 창간호는 `冠岳周遊', `동창회日誌', `千字提言', `回顧記', `單大저널', `모교 소식' 등으로 꾸며졌으며 1982년 5월 1일자(제50호)에는 `서울대 정신', `내가 본 세계의 대학', `직장지부 탐방' 등을 신설해 내용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1987년 1월 1일자(제106호)에는 `명예교수 칼럼', `건강교실', `취미생활 코너', `신간안내', `가정한담'을 새롭게 만들었고, 1995년 9월 1일자(제210호)에는 회화나 조각 등 동문들의 미술작품을 기증 받아 소개하는 `동문작품 지상 전시회'를 게재해 동문들이 재미있게 읽고 즐길 수 있는 신문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본보 창간 30주년을 맞아 2006년 4월 15일자(337호)부터는 사회 각 분야 동문들의 참여를 더욱 유도하기 위해 `詩'와 `콩트 릴레이'를 신설하고, 재학생을 포함한 젊은 동문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지면 개혁을 단행했다.

 1976년 5월 12일 열린 조찬회에서 본보 편집위원회 규정이 의결됐으며, 이에 따라 당연직 위원으로 본회 상임부회장인 李錫範동문, 모교 대학신문 주간인 金榮國교수가 선정됐다. 또 위촉위원으로 신문대학원동창회 文道彬회장, 자연대 趙完圭학장, 법대 金哲洙교수가 선임됐다.

 1977년 5월 4일 본보 편집위원으로 모교 대학신문 주간인 金彩潤교수, 한국일보 尹宗鉉 논설위원을 위촉하고, 이어 7월 6일 방송통신대 李應百학장을 편집위원으로 선임해 편집위원회를 보강했다.


현직 언론인 논설위원 위촉
매월 모여 아이디어 교환


 1980년 3월 29일 본회 정기총회에서 제8대 회장에 元容奭상임부회장이 선출됐다. 이로써 동창회보 발행인 겸 편집인에 元容奭회장이 선정됐으며, 1981년 8월 12일 공석중인 상임부회장에 崔主鎬부회장을 선임함으로써 본보 편집위원장을 겸하게 했다.

 1984년 3월 24일 본회 제10대 회장에 崔主鎬수석부회장이 선출됐다. 상임부회장에 유임된 李聖秀부회장이 1986년 9월 13일 문공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10월 1일자(제103호)로 본보 편집인의 자리를 맡게 됐다.

 1991년 10월 8일 본회 상임부회장에 선임된 張翼龍동문이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항에 의거하여 본보 편집인으로 등록을 마치고, 12월 20일자로 서울시장의 승인을 받아 1992년 1월 1일자(제166호)부터 5월 1일자(제170호)까지 편집인으로 활약했다.

 이어 1992년 4월 17일 상임부회장에 새로 선임된 鄭宗澤동문이 1993년 9월 1일자(제186호)부터 2000년 2월 15일자(제263호)까지 본보 편집인 겸 편집위원장을 맡아 회보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편 1994년 4월 18일 본회 사무처장에 李世震동문이 임명되면서 본보 편집주간을 겸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보는 회보', `기다려지는 회보'로 발행 목적을 잡고, 보다 질을 높이고 내용을 다양화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하게 됐다.

 그 첫걸음으로 1994년 5월 16일 본보 편집위원으로 모교와 언론계에 봉직하고 있는 동문 13명을 추가로 위촉했다. 이에 따라 상임 편집위원인 모교 사회대 金榮國교수, 한국일보 孫一根이사, 모교 법대 金哲洙교수, 조선일보 崔靑林편집국장을 포함해 17명의 편집위원들이 구성됐다.

 또 편집위원이란 명칭도 1994년 6월 1일자(제195호)부터 논설위원으로 변경했다.

 본보 상임논설위원인 孫一根동문이 2000년 4월 10일 상임부회장으로 선임됨에 따라 편집인을 겸하게 됐다. 이와 더불어 SBS 安國正제작본부장, 문화일보 金好俊편집국장, 모교 언론정보학과 朴明珍교수, 대한매일 李慶衡편집국장, 매일경제신문 金鍾勳출판국장, 연합뉴스 徐玉植편집국장, 한겨레신문 高永才편집위원장, MBC 嚴基永보도본부장, 조선일보 姜天錫편집국장을 논설위원으로 추가 영입했다.


 2004년 7월 13일에는 한겨레신문 李元燮논설위원, MBC 보도국 辛京珉부국장, 조선일보 朴勝俊전문기자, 중앙일보 金鎭國정치부장, 대학신문 李昌馥주간을 위촉했으며, 2006년 5월 17일에는 중앙일보 文昌克주필, 국민일보 尹在錫논설위원, 내일신문 鄭世溶논설주간, KBS 李東植방송문화연구팀장, 세계일보 曺炳喆논설위원, 경향신문 許英燮주간국장, 조선일보 金玄浩통한문제연구소장, MBC 鄭興寶기획조정실장, 동아일보 李東官논설위원, 문화일보 李容式편집국장, 한겨레신문 李相起사람팀장, 매일경제신문 蔡耕玉유통경제부 차장, 한국일보 趙在鏞논설위원, 동아일보 鄭恩玲문화부 차장을 논설위원으로 선임했다.

 또한 2006년 12월 11일 모교 宋丙洛명예교수, 월간조선 李五峰객원사진기자를 위촉했고, 2007년 8월 14일 동아일보 崔英勳사회부장, 동아일보 許文明논설위원, 2008년 7월 14일 동아일보 裵仁俊논설주간, 2009년 4월 13일 SBS 金亨珉논설위원, 2010년 4월 26일 한국일보 李啓聖논설위원, 연합뉴스 吳在錫논설위원, 조선일보 李先敏문화부장, 연합뉴스 金永燮미디어과학부 차장, 2011년 5월 2일 조선일보 金昌均논설위원을 논설위원으로 선임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본보 논설위원은 총 49명이다.


온·오프라인 합쳐 20만부
온라인서 e메일 발송


 4천부 발행으로 시작한 본보는 동문들의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1987년 4만부, 1998년 7만5천부, 2001년 8만7천부로 꾸준히 발행부수를 늘려오다가 2005년부터 28개 지방지부와 51개 해외지부를 포함해 매월 10만부를 동문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2001년에는 본회의 사업목표를 `회무의 디지털화', `사이버동창회 활성화'로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5월 26일 e메일을 통해 8만3천여 명의 동문들에게 디지털 동창회보 5월호를 발송했다.

 이로써 본회는 인쇄매체로서의 동창회보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동창회와 모교의 소식을 전하게 됐다.

 한편 본보의 노후와 부피의 증대에 따른 보관상의 문제가 나타나 창간호부터 200호까지 마이크로필름(35mm)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동문들에게서 나왔다.


홈페이지 통해 회보 열람
마이크로필름 제작·보관


 이에 본회는 1995년 6월 10일 모교 도서관의 협조를 받아 본보 2백부(창간호∼2백호)를 마이크로필름(35mm)으로 제작해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본회는 1994년 10월 31일 동문이 기증한 회보를 검색하고 추가 보충해 도서관 정보관리과에 의뢰, 보관용과 열람용으로 제작을 완료했다. 또 본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홈페이지 상단 메뉴의 `동창회보'를 클릭한 뒤 `PDF/E-BOOK VIEW'를 누르면 현재에서 과거 순으로 회보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돼 있다.


동문간 연대감 형성
본회·모교 발전 기여


 본보는 `동문을 찾아서', `화제의 동문' 등 다양한 코너를 통해 수많은 동문들을 소개하고, 본회 및 각 단과대학·지부 동창회, 모교의 소식을 상세하게 보도하며 33만 동문들의 대변지 역할을 해왔다. 예산부족으로 잠시 지면이 축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4천부를 발간했던 창간호에서 매월 10만부를 발행하는 매체로 성장하면서 뿔뿔이 흩어져있던 동문들에게 `서울대 가족 의식'을 심어주는데 최선을 다해왔고, 동문간 연대감을 형성하는데 공헌했다고 자부한다.

 2002년 3월 15일 제19대 회장으로 林光洙회장이 취임한 이후 본회와 본보에 대한 동문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원고를 기고하거나 동정 사항을 알려오는 동문의 수도 점차 늘고 있고, 신년교례회, 정기총회, 바둑대회, 골프대회, 홈커밍데이 등 동창회 행사에 참여하는 동문 수도 증가했다.

 이제 본보는 동문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소식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국내외 흩어져 있는 동문간 교류를 공고히 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 35년간 쉼 없이 달려온 본보 제작진은 4백호까지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1백년을 계획하고자 한다. 동창회와 모교가 새롭게 도약하는 시기에 더욱 알찬 기획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서울대인의 연대의식을 고취하고, 동문들의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기 위해 `동창회보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 더욱 노력할 것이다.

〈정리 = 玄智愛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