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호 2011년 5월] 문화 꽁트
'어느 봄날에' 鄭 英 勳(국문91 - 96)

점심을 먹은 후 가벼운 차림을 하고 산을 오른다. 산이라고는 해도 높이가 2백 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연구실 가까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 사십 분이면 충분하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몇 주밖에 되지 않는다.
임용돼 이곳 진주로 내려온 지 2년이 다 돼 가는데, 그 전에는 여길 오를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최근 들어 자주 체하고 그럴 때마다 머리가 아픈 게 아무래도 운동을 좀 해야겠다 싶어 일삼아 산행을 시작했는데, 산길을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비 온 뒤라 그런지 오늘은 더 운치가 있다.
날이 풀리고 처음 오는 비였다. 예년 같으면 봄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될 거라며 다들 반겼을 텐데, 올해는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방사능 수치가 인체에 해를 끼칠 만큼은 아니라고 했지만 별로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경기도에서는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쉬는 곳도 있다 했다.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할지 잠깐 고민을 했더랬다. 혹 학교에서 하루 쉰다는 문자가 오지 않을까 계속해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달랑 우산 하나 들려서 학교를 보내기가 뭣해서 출근하는 차로 아이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여전히 방사능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그래도 비가 그치고 나니 당장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은 덜한 것 같다.
나에게는 이번 지진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내가 도덕적 감성이 유달리 풍부해서 그런 건 아니고, 친구가 가족이랑 도쿄에 살고 있어서 남들보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했다.
지진이 있고 하루쯤 지나 그곳 사정을 물었더니 난리 났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걱정하는 사람 생각해서 빈말로라도 괜찮다고 할 법한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가족은 안전하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당장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인 듯한데, 별탈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수컷이 짝을 부르는 소리인 듯싶다. 가만히 들어 보니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게 아니다. 소리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 계속 같은 소리만 내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한 마디를 부른 후 곧바로 다른 마디를 부르는가 하면 휴지부를 좀 길게 가져가기도 한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 부르는 노래일 게다. 조금 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 리듬이며 박자가 조금 전과는 다른 것이, 아마도 암컷이 수컷의 노래에 화답을 하는 모양이다. 아름답다. 내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사람들 몇이 내려온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산책로를 따라 여기까지 이른 모양이다. 느긋함이 몸에 밴 표정들이다. 문득 나도 저런 얼굴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주로 내려오면서 운전이 거칠어졌다. 2년 전, 진주에 막 내려왔을 때만 해도 차로 삼십 분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는 한 시간씩 차를 타고 다니는 일이 예사였으니까. 진주로 내려오기 직전에는 매일 두 시간 가까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강의를 다녔다. 그러니 삼십 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 외곽에 집을 마련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진주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학교까지 가는 게 점점 멀게 느껴지는 거였다. 이제는 왜 그렇게 멀리서 다니느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뜻일 거다. 운전이 거칠어진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출퇴근 시간을 줄여 심리적 거리를 줄이려는 심산.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진주에서 살았다. 몸과 마음이 자라는 시기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인데도 이곳 생활이 마냥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다. 왠지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이십 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서울 생활이 익숙해졌고, 그러면서 거기 맞는 어떤 리듬 같은 것이 생겼던가 보다. 그게 하도 자연스러워 거기서 멀리 떠나온 이곳에서도 여전히 나는 옛날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게 아닐지.
따지고 보면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 몸이었으니 어떻게 서울에 붙어 살 수 있었지만, 결혼하고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은 대부분을 경기도민으로 살았다. 학교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서울 주위의 도시들, 그러니까 부천, 부평, 의왕이 내가 살았던 곳이다.
부평이 행정구역상 인천에 속해 있음에도 그곳 사람들이 부평에 산다고 하지 인천에 산다고는 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버릇처럼 서울에서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갔다 올라가면서도 서울 간다고 하지 부천에 간다거나 의왕에 간다고 해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기묘한 말버릇이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대체로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병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앓고 있는 병.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천으로 이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소설가 梁貴子의 `원미동 사람들' 연작 가운데 멀고 아름다운 동네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건 주인공 부부가 부천으로 이사 가게 된 이유나 그 과정이 내 경우와 몹시도 비슷해서였다.
서울에서 거처를 마련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고, 지인의 소개로 부천이라는 곳에 가 보았더니 의외로 집값이 싸서 놀랐고, 그럼에도 부천으로 오기로 마음먹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 때문에 위축감을 느끼는 모습이 얼마나 생생하게 느껴지던지.
이사를 막 끝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요량으로 음식점 전단을 보고 전화를 하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그곳이 바로 서울이라는 생각에 지역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결이 됐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곳은 모두 서울 쪽의 가게였던 거다.
다음 날 근처를 들러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부천에 있는 가게들에는 하나같이 032라는 지역번호가 붙어 있는 반면 서울 쪽 가게들에는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는 게 아닌가. 書生의 눈에는 이게 허투루 보이지가 않았다. 거기에는 이른바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위상학이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지역번호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없는 숫자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면 지역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 요는 동일자들 사이에서는 지역번호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때 지역번호와 함께 가게 전화번호를 붙여 놓은 부천 쪽 상인들은 스스로를 타자로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적어도 서울 사람들의 입장에서 자기를 볼 줄 안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서울 상인들에게는 이런 감각이 아예 없다. 두 지역이 맞닿아 있기에, 자신을 타자로 바라볼 수 있을 만한 장소에 살고 있는데도 자기를 타자화할 줄 모른다. 그들에게 서울은 어떤 경우에도 타자화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던 게 아닐까.
시간이 웬만큼 지나고 다시 가게들을 둘러보았을 때는 상황이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서울 지역 가게들에도 02라는 지역번호를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된 거다. 모르기는 해도 지금쯤은 02가 붙은 번호가 더 많지 않을까. 이렇게 된 데는 핸드폰의 역할이 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려면 자기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지역번호를 눌러야 한다.
이건 서울 사람들이라고 예외가 허용되는 게 아니다. 일본의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책 `탐구'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유가 타국 생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핸드폰이 자신을 동일자의 바깥에 놓도록 강제했다고 말해 보면 어떨까. 동일자의 바깥에 서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핸드폰 때문에 일상적으로 이런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핸드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잠깐 숨을 고르고 시내 쪽을 바라본다. 도시의 정경이 아름답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길을 되짚어 학교로 내려간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였던가? 구불구불 길게 난 길을 따라 자전거가 움직이고 그걸 롱테이크로 잡은 엔딩 장면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가다 영화가 끝이 나고 자막이 올라와야 하는데 이게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거다. 자전거는 자꾸만 넘어지고. 그때는 그 장면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내가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고 싶다. 누군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면 몇 번씩 하품을 해야 할 만큼 지루하게 느껴지도록.

